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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Dec 10. 2024

나의 프라이팬 일지

글 쓰기 싫은 날 다람쥐 쳇바퀴에 대한 고찰

아, 진짜 글쓰기 싫은 날이다. 글은 왜 쓰겠다고 시작을 했는지 모르겠다. 갈수록 할 말이 없어지는 것 같고, 어휘가 조그맣게 사라져 버린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연결은 삐걱거리고, 이게 한국말인지 외국말인지 헷갈릴 정도의 배열 수준으로 내용을 툭툭 던져본다. 이렇게 타자를 치다 보면 언젠가는 연결이 되겠지 싶은 안일한 생각으로 말이다. 숙성회도 아니고 며칠 묵혀놨다가 영영 서랍 속에 저장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초조함 속에서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것은 물론이고, 브런치 제안 탭을 통해서 메일이 올까 봐 안 하던 메일 정리도 하고 매일 메일함을 열어보는 수고로움은 덤이다. 


스마트폰과 맞서 겨우겨우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을 쓰고, 퇴고도 해야 되는데,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타닥타닥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이래도 되나 모르겠다. 집안 정리도 안 되는데 글쓰기에서도 정리가 잘 안 된다. 쓸 때까지 어지러운 책상을 보다가, 귀여운 스티커도 한 번 쳐다보고 만지작 거렸다가, 덜 읽은 책이 생각나 다시 뒤적거리고 있으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있다. 도대체 이놈의 글은 언제 쓰냔 말이다. 이건 거의 절규에 가까운 말이다. 하소연만 하면 뭐 하나. 씻김굿 하듯 결국에는 써야지만 끝나는 신병 같은 일이란 걸 알고 있다. 



진득하게 앉아서 머리를 부여잡고 글을 쓸 수 있을까. 이렇게 아무 말 대잔치를 해도 되는가 싶은 와중에 최근 들었던 루나파크(홍인혜 작가)의 강연에서 반짝이는 팁을 얻을 수 있었다. 홍인혜 작가는 카피라이터이자 인스타툰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시인까지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어떻게 많은 일들을 다양하게 할 수 있었나라는 질문에 이른바 '프라이팬 이론'이란 걸 알려주었다. 소시지, 계란, 빵을 동시에 익히듯 나의 열정이 가 닿을 수 있게 다양한 일을 여기저기 모두 동시에 익히라는 것이다. 유레카. 탁하고 머리를 친다. 나의 프라이팬에 엄마, 치과의사, 글 쓰는 이를 담아 동시에 따끈하게 데우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소시지를 익히다 힘들면 계란으로 옮기고, 또 힘들면 빵으로, 다시 소시지로 옮겨 다니는 모습까지도. 


동그라미처럼 쳇바퀴를 도는 삶인가 한탄하던 적도 있었다. 이 글을 적고 있는 지금도 걱정의 꼬리를 물어 꼬리잡기 하듯 뱅글뱅글 돌고만 있나 걱정이 된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걷는다. 이 길이 어디로 이어질지, 어떤 모양인지도 모르면서 걷는다. 때로는 아무리 열심히 걸어도 원을 그리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런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내가 걸어온 길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을 때, 그제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조금씩 처음에 그린 원에서 비껴 나고 있었다는 것을. 원이 아니라 나선을 그리고 있었다는 것을.


 한수희 작가의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에 나오듯 동그랗게 도망치던 흔적들이 결국 나선을 그리며 올라갈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데굴데굴 돌면서 계속 제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선형으로 결국 성장하는 회오리처럼 말이다. 어지러운 세상 속에 오늘도 노트북 앞에 앉아 서랍 속에 들어갈 뻔한 글을 겨우 건져내 본다. 아침이면 아이들 등교 준비에 여느 때처럼 바쁠 것이고, 여지없이 위잉 소리와 함께 안경 사이로 튀기는 물을 맞아가며 일을 할 것이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나가는 모래인 줄 알았던 수많은 동그라미들이 매일 조금씩 쌓여 나라는 무지개를 만들고 있음을 새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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