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에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은 무엇일까? 아마 ‘아~하세요’ 아닐까. 이 말을 듣고는 모두들 자신이 벌릴 수 있는 최대한으로 입을 벌리게 된다. 그중에서 실제 아~ 하는 소리를 내는 귀여운 분이 계시기도 한다. 보통 안쪽에 있는 큰 어금니를 근관치료할 때면 시야가 가려 방해받기 마련이라, 그때마다 아 해보세요 말하는 게 겸연쩍고 미안하기도 하다. 이미 환자는 크게 벌리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여기서 더 어떻게 하란 말인가. 치료받고 있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의사가 원망스러울 것이다. 'Why so serious?' 입 가장자리가 바들바들 떨리다가 조커가 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한다.
술자 입장에서는 전동파일이나 기구가 들어가야 치료가 빨리 잘 진행되는데, 기구가 들어간 상태에서 입이라도 다물릴라치면 파절 될 수도 있는 절체절명의 긴급상황이 되기에 개구량이 부족한 환자일 경우 러버댐을 끼워도 전동 파일이 들어갈 때만 ‘아 하세요’ 하고 안 할 때는 조금 다무셔도 된다고 언제나 언질을 준다.
항상 러버댐을 끼워 수술 시야를 확보하려고 하나, 절대적인 개구량이 부족하면 어쩔 수가 없다. 야금야금 적절하게 치아를 삭제해서 파일 진입로를 만들어 본다. 여기가 승부처다. 더 이상 삭제하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환자에게 아 해보세요를 외치고는 파일을 최대한 구부려 근관 입구에 넣어본다. 근관의 길이까지 쟀다면 오케이, 중간이나 입구 쪽에서 걸리는 느낌이 들면 한 발 물러서서 다시 살살 그 주변을 갈아 정리해 본다.
아~ 너무 잘하고 계십니다. 지금 길이까지 재어 반 다 왔습니다. 정말 잘하고 계셔요.
반을 다 왔다는 게 무슨 문법 파괴의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10분만 더 가면 정상이에요.”라고 등산로에서 만났던 어른들의 인사와 비슷한 ‘곧 도착’ 효과를 준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만든다고 했던가. 이 문장 이후로 남의 칭찬에 인색하던 우리나라의 풍조는 꽤 많이 바뀌었다고 볼 수 있다. 칭찬은 환자를 입 벌리게 만든다. 점점 다물어지는 입이 보이면 치료 중간중간에 진행 상황에 대해 격려하기만 해도 하마입, 아니 악어입처럼 쩍! 더 힘을 내주어 환자분도 이 치료에 진심임을 표현한다. 우리의 마음이 통하는 순간이다.
어디 환자뿐이랴. 아이건 어른이건 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 칭찬과 인정에 고픈 호모 사피엔스 아니겠나. 작은 칭찬 하나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행동까지 변화시킨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정리를 잘하지 않는 우리 아이조차 작은 피규어 하나 주우려고 하면 “어머, 우리 금쪽이 정리 진짜 열심히 잘하네~”라고 폭풍 칭찬을 해준다. 그러면 그 칭찬 한마디가 마법처럼 작용해서 평소라면 꿈쩍도 하지 않을 아이들이 갑자기 우리 집 청소부로 빙의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아이들이 칭찬의 힘에 반응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 마법의 문장을 교육 철학에 나름 적극 반영하여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아뿔싸. 나 역시 그 칭찬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구독’, ‘좋아요’라는 현대판 칭찬에 기대어 브런치와 인스타, 여기저기를 떠돌며 누군가의 인정 한 마디를 갈구하는 내 모습이 어찌나 아이들과 닮았는지.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하고, 구독과 좋아요는 나를 타닥타닥 키보드 앞으로 이끌어 앉혀, 새로운 글을 쏟아내게 만든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크고 작은 형태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가진 존재들이다. 그 욕구가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글을 쓰게 하며, 아이들에게는 청소를 시키게 만든다. 긍정적인 피드백이 삶의 원동력이 된다는 걸 알고 나니, 이 욕구를 부정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다만 그것이 삶을 지나치게 휘두르지 않도록 적당히 조절하는 것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브런치에서 한 줄 한 줄 공들여 글을 써 내려가고 있는 지금,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여러분의 구독과 좋아요 부탁드린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