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다른 데서 할 때는 치료가 빨리 끝났던 것 같은데, 요즘은 왜 이렇게 오래 걸려요?"
불평이라기보단 의아함에 가까운 말투였지만, 그 말이 유독 마음에 남았다. 큰일도 아니었는데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끓어 넘친 국처럼 결국 집에 와서 남편과 저녁을 먹으며 슬쩍 그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다.
"왜 자꾸 저런 식으로 말하지? 나한테만 유독 까다롭게 구는 것 같아."
사실 집에 오는 길에도 몇 번이나 떠올렸던 말이다.
"예전엔 빨리 끝났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오래 걸리냐고."
영화 메멘토의 주인공처럼 그 순간의 대사를 다시 불러내고, 당시의 상황을 곱씹었다.
'내가 왜 그때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있었을까.'
명탐정 코난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머리가 돌아간다.
'혹시 나를 만만하게 본 건가?'
하나둘 단서들이 머릿속에 모이더니, 퍼즐이 맞춰진다. 드디어 결론에 다다랐다.
셜록 홈스와 소년탐정 김전일에 버금가는 나의 추리력에 감탄하던 사이, 지난주 들었던 강의의 내용이 문득 떠올랐다.
여러분은 제정신이 아닙니다. 그러나 정말 제정신이 아니려면 멀었어요.
듣던 당시에는 무슨 뜻인지 잘 몰랐지만, 오늘따라 그 말이 유독 선명하게 들린다.
이 감정이 진짜일까?
이 생각이 정말 맞을까?
환자에게 서운했던 걸까, 아니면 스스로에게 실망했던 걸까?
천천히 돌이켜보니,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는 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아마 환자는 이미 그 대화를 잊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 말을 붙잡고 계속 곱씹으며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다.
‘자기 생각의 독재’라는 표현이 머릿속에 스쳤다. 누군가의 말에 휘둘리며 나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있었다.그것도 모르고 마치 독재자의 명령에 순종하는 군인처럼, 내 생각이 내 감정을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었다니.알고 보니 화난 이유는 단순했다. 상대가 아니라, 아무 말도 못 했던 내 모습이 못마땅했던 거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게 그렇게까지 큰일인가 싶었다. 스스로에게 화내고 있는 내 모습이 우습게 느껴졌다.
점쟁이 뺨친다 생각했던 독심술도, 모두를 만족시키고 싶다는 신념도, 가만히 있어서 손해 봤다는 생각도 모두 틀렸다.내 삶을 살아내는 사람은 나 자신이다. 누군가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장막을 걷어내는 건 오로지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