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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세시공작소 Aug 31. 2020

정남향의 집에서 에어컨 없이 여름 나기

나는 이 집에서 오래 살고 싶지 않았다.

덥다.

애초에 이 집에 오래 살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에어컨을 설치하지 않았다. 더 이상 복잡한 살림을 늘리고 싶지 않기도 했고, 에어컨은 기계값 보다도 해체 설치까다롭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나긴 장마와 함께 폭염이 찾아왔다. 다행히 낮에는 주로 회사에 있어서 버틸만했지만, 는 날 집에 있으면 정말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태양을 피하는 방법

요즘 아파트남서향이나 북동향으로많이 짓지만, 옛날 아파트는 정남향이 많다고 한다. 우리 집도 그렇다. 집 앞에는 초등학교가 있어서 조망을 가릴만한 높은 건물도 없다. 그래서인지 하루 종일 해가 길게 들어온다. 해가 잘 드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나는 해가 진 뒤에 귀가하는데도 집 안이 집 밖보다 더웠다. 여름이 더운 이유는 지구 자전축이 기울어져서 그렇다고 하지 않는가? 그렇다. 이 모든 것이 태양 때문이다. 낮에 들어오는 햇빛을 차단하기 위해 기존에 있던 커튼을 암막커튼으로 바꿨다.

암막 커튼으로 교체한 뒤에는 낮에도 조명을 켜야할 정도로 햇빛 차단 효과가 상당했다.

효과는 있었다. 확실히 낮에 커튼을 쳐 놓으니 덜 더웠다. 그러나 무거웠다. 에 3D 프린터로 출력해서 설치했던 커튼 걸이가 찢어지고 말았다.

밤에 자다가 와장창 소리에 정말 놀랐다. 왜 늘 붙인 직후에 찢어지지 않고 가만히 잘 붙어있다가 한참 뒤에 이런일이 벌어지는걸까?

3D 프린터 필름의 소재를 바꿔서 출력해볼까 하다가 인터넷에서 못 없이 설치하는 제품을 주문했다. 이전에 찾았을 때는 새시의 폭이 좁아서 설치가 안됐었는데, 그  여러 가지 버전이 업데이트되어있었다. 찾고 또 찾은 끝에 맞는 제품을 찾아냈다. 이것도 몇 번 와장창을 반복한 끝에 적정한 하중 포인트와 지지력을 확보했다. 지금은 잘 버티고 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이 있었다.

잔광을 완전히 잡지는 못했다.

잔광이 도드라지게 된 것이다. 암막커튼 설치 전까지는 밤에도 불빛이 어느 정도 새어 들어왔기 때문에 이렇게 눈에 띄지는 않았었다. 분해해서 잔광 제거 콘덴서도 써보고 천장 소재가 철물이라 누전이 발생해서 그런 것인가 싶어 전기테이프도 이리저리 감아봤는데 해결이 쉽지는 않았다.


습도, 그리고 빨래

올해 장마는 정말 길었다. 그리고 빨래는 꿉꿉했다. 옷과 수건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비그칠 생각이 없는 듯하여 세탁이 끝난 빨래 모아 빨래방으로 향했다.

건조기를 힌 번 돌리는 데 드는 비용은 6천원. 퀄리티는 확실하지만 그리 쉬운 방법은 아니다.

비를 뚫고 카트에 빨래를 담아 코인 세탁소까지 가는 여정이 쉽진 않았다. 성공적으로 코인 세탁소에 도착한 후 건조기에 넣고 보니 빨래의 양이 너무 적게 느껴졌다. 6천 원씩이나 주고 20kg를 건조할 수 있는데 한 10kg도 못 채운듯한 느낌이랄까. 들고 갈 땐 정말 힘들었는데,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

왠지 아까운 마음이 들어서 그다음엔 집에 있는 드럼 세탁기의 건조 기능을 이용해보려고 했는데, 표준으로 놓고 건조 기능을 세팅하니 예상 건조 시간이 9시간이 나왔다. 세탁기 구조상 어쩔 수 없다지만, 왠지 시간과 전기세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1시간만 돌리고 식힌 뒤 꺼냈다. 와우. 뜨겁고 축축하다. 안 한 것보단 나았지만, 장마철엔 어쩔 수 없었다. 빨래는 그냥 그나마 날씨가 좋은 날을 골라서 재빨리 하고, 건조는 안 마르 부분적으로 돌리기로 했다.


그저 버티는 것이 최선일 때도 있

우리나라는 뚜렷한 계절 덕분에 많은 것들을 필요로 한다. 반바지와 롱 패딩, 에어컨과 보일러, 제습기와 가습기 같은 것들이 모두 필요하다. 물론 다 갖추고 살면 좋겠지만, 없을 수도 있다. 에는 더울 때 노트북을 들고 카페나 친구 집에 자주 갔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꼼짝없이 집에만 있으니 온갖 집안일만 눈에 들어다.

더위까지 먹으니 입맛도 떨어진다. 커피와 맥주대신 마시는 보리차.

일도 공부도 손에 안 잡히고, 사람들도 만나지 못해서 고통스러운데 이것이야말로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동안은 불편한 것이 있으면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했는데, 더위도, 태풍도, 코로나도,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버티는 수밖에 없다. 가끔은 그것이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처서가 지났다. 곧 가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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