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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벽세시공작소 Feb 19. 2022

전세 재계약, 그리고 행거 붕괴

소유욕과 미니멀리즘 사이 그 어디쯤

결국 전세계약을 2년 연장했다. 첫 번째 연장이라 집주인께서 전세금을 5%만 올리셔서, 행히 대비할 수 있을 정도의 금액으로 계약기간 연장했다. 지금으로선 이사가 어렵기도 하고, 이미 주변에 비슷한 의 전월세 시세는 아주 많이 올라있었다.


미니멀리스트를 '지향' 했었다

처음엔 이 집에서 짐을 늘리지 않을 생각으로 물건을 많이 안 샀기도 하고, 이사를 염두에 두고 물건들도 되도록 사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년 수을 기점으로 가구와 가전이 많이 늘어났다. 수술 후에 거동이 불편해져서 그런 것도 있고, 예상보다 이 집에서 오래 살게 되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래저래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니 집에 있는 물건들도 사용빈도가 높아졌다. 저가형 제품에 너무 많은 기대를 했던 걸까? 하나 둘 고장이 나고 부서지고 내구도가 훅훅 떨어지기 시작했다. 3만 원짜리 행거가 어느 날부터인가 서서히 앞으로 기울어지며 인사를 하기 시작해서, 반대방향으로 돌려주었더니 그다음엔 옆으로 눕다가 결국 무너져버렸다. 바야흐로 쇼핑의 시(時)가 온 것이다.

끝까지 잘 버텨줄 것만 같았던 3만 원짜리 행거는 시간이 흘러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청이더니 끝내 무너졌다.


대 집꾸(집 꾸미기) 시대

코로나 시대가 되면서 인테리어 앱 '오늘의 집'의 매출 크게 늘었다고 한다. 그것을 체감하는 게 가끔 친구들 집에 놀러 가면 오늘의 집이나 집 꾸미기, 혹은 인스타그램에서 튀어나올법한 과 소품들이 있다. 내가 사는 곳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과거에는 '자취'라는 단어의 이미지가 어쩐지 궁핍하고 쓸쓸한 것이었는데, 이제는 혼자 살더라도 내 개성대로, 그럴듯하게 사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 같다. 이런 현상은 어릴 때 유행했던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좀 더 커서는 심즈에서 게임 속 대저택을 지었고, 독립하고 난 뒤에는 내 소유의 집은 아니라도 자공간을 꾸미는 데 몰두하고 있다. 예전에는 '결혼하면 좋은 거 사고 자취할 때는 싼 거 사' 혹은 '나중에 집 사면 좋은 거 사' 하는 게 가능했다면, 지금은 더 이상 될지 말지도 모를 일에 행복을 유예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메타버스도 과거의 다이어리 꾸미기와 비슷한게 아닐까? (출처: 유투브 셜록현준)

하지만 예산과 공간은 한정적이다. 특히 전셋집이라면 더더욱.

오늘의 집을 설명하는 키워드는 '가성비'이다. 오늘의 집에서는 적당한 가격에 괜찮은 퀄리티의 물건을 살 수 있다. 문방구와 다이소를 누비던 우리는 대부분의 좋은 물건은 약간 비싸다는 것을 이해한다. 2년 더 살아야 한다면, 조금 더 투자해서 견고한 가구를 놓기로 했다. 저렴한 모듈 가구는 연약하다. 무너져버린 3만 원짜리 행거처럼.


더 이상 예의 바른 행거는 위험하다

이번엔 이케아로 눈을 돌렸다. 이 집엔 붙박이 옷장이 없다. 공간이 애매할 때는, 계획과 조립의 수고로움을 감수하고서라도 조립식 가구가 괜찮은 방법이 된다. 가구의 디자인과 가격폭이 다양하고 제품을 사용자의 용도에 맞게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은 이케아의 크나큰 강점이다. 고생은 좀 하겠지만 이사 갈 때도 해체해서 가져갈 수 있다.

철 소재의 행거가 튼튼해서 수납을 더 잘 할 수 있게 됐다. 강제로 옷정리도 하게 됐다.

오늘의 집과 달리 오프라인 매장 중심이었던 이케아는 코로나 초기에 오히려 적자가 났다고 한다. 지금은 흑자로 전환한 상태라고 하나, 이케아 제품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온라인 몰의 배송비가 비싸서 가성비의 경쟁력이 떨어진 것이 크다. 예전처럼 구매대행을 찾다가 이케아 공식 온라인 몰에 들어가 봤는데, 확실히 배송비는 예전에 비해 많이 저렴해졌다. 예전에는 작은 제품이라도 배송비가 5만 원씩 했었는데, 지금은 온라인 몰에서도 5천 원 정도 수준으로 주문이 가능해졌다. 다만 반품 정책은 아쉽다. 치수 계산을 실수해서 잘못 주문한 제품을 반품하려고 반품 신청을 했는데, 온라인에서 산 제품임에도 셀프로 이케아 매장에 가서 반품을 해야 한단다. 결국 차를 빌려 타고 이케아에 가야만 했다.

어찌 됐든, 조립할 때는 힘들었지만 튼튼한 행거로 교체하고 나니 훨씬 깔끔해지고 수납도 더 많이 하게 됐다.


재계약 한 김에, 주방

  정리하고 나니 주방도 신경이 쓰였다. 단차가 맞지 않는 싱크대에 간이 서랍을 올리고 인덕션을 사용했더니 요리할 때 자꾸 틈새로 음식물이나 물이 튀어서 서랍 밑의 싱크대가 녹이 슬고 지저분해지고 있었다. 게다가 스테인리스 상판은 아무리 물기를 닦아줘도 물자국이 너무 쉽게 생겼다. 이것도 '에이, 어차피 2년 더 살게 된 김에,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개선을 시작했다.

싱크대 상핀은 틈새의 물막이 테이프 외에는 특별히 고정한 것이 없다. 이사할 때는 그냥 테이프만 떼고 들어내면 된다.

서랍을 맞춤 제작해 단차를 맞춰주고, 이케아에서 싱크대와 크기가 비슷한 커다란 도마 2개를 얹고 3천 원짜리 다이소 물막이 테이프로 틈새를 막아주었다. 주방에 작업공간이 늘 부족했었는데, 단차가 없어지니 주방이 넓어진 느낌이 들었다. 색감이 통일되니 너저분한 느낌도 사라졌다.


좌식생활이 어려워진 나를 위해

거실에서 사용하던 식탁도 치웠다. 식사할 때 잘 활용하고 있었는데, 수술 후 좌식생활이 힘들어지면서 식탁에서 점점 많은 일을 하게 됐다. 그래서 밥도 먹고, 책도 보고, 컴퓨터도 하려고 접이식 식탁 대신 소파 앞에 좀 더 넓고 튼튼한 다이닝 테이블을 두었다. 일반 식탁은 높이가 75cm 정도 되는데, 소파에 맞는 다이닝 테이블은 높이가 60cm 정도 된다. 그래서 소파에 맞는 다이닝 테이블은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접이식 식탁은 당근 마켓에서 새로운 주인을 찾아주었고, 대신 소파 앞에 다이닝 테이블을 두었다.

식탁이 없어진 자리엔 용도가 애매했던 작은 테이블을 옮겨 싱크대에 있던 물건들 옮겨주었다. 버리는 날이 정해져 있어서 1주일씩 굴러다니던 재활용품을 타포린 백에 담아 테이블 아래 모아두니 깔끔해졌다.


언젠가는 떠날 집이지만

이번에는 가구를 구입할 때 가격대가 조금 있더라도 질을 고려했다. 재택근무를 하면서는 며칠 씩 집에만 있는 날들이 많아져 필요한 투자라고 생각했다. 나는 과연 언제쯤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을까? 적어도 가까운 미래는 아닐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살아내야 하니까. 새로운 시작을 도모하려면 지금이 어느 정도는 괜찮아야 한다. 그래야 딛고 일어날 수 있다. 일단 지금은 괜찮아지는데만 집중하자. 당분간은 그렇게 지내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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