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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타타 Jul 07. 2024

인터넷을 끊으니 넷플릭스가 재미있어졌다.

비디오 방에서 영화 하나 빌려오던 그때의 설렘을 다시 느껴보자.

어렸을 땐 뷔페를 참 좋아했다. 목구멍까지 꽉꽉 음식을 채워 넣어도 금세 배고팠던 성장기에, 뷔페는 천국이었다. 하지만, 성장기 버닝 이벤트가 종료되니 공깃밥 세공기는 기본이던 내가 어느새 한 공기만 먹게 되었다. 무조건 짜장면 곱빼기만 시켰던 내가, 많이 먹으면 속이 부대껴 일반 사이즈만 먹게 되었다.


과하게 먹으면 남는 것은 고통뿐이라는 것. 과식한 뒤 소화되지 않는 속을 부여잡고 이리저리 데굴데굴 몇 번 구르고 나니, 이제는 배부른 지점에서 멈출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자연스럽게 뷔페나 무한리필집도 시큰둥해졌다. 엄청 맛있는 음식도 무한정 제공이 되면 질려버린다. 게다가 뷔페나 무한리필집의 퀄리티가 엄청 좋을 가능성은 떨어지는 편이지 않는가.


이건 과연 음식에만 적용이 되는 것일까?


3년간의 계약직 공무원 생활을 마무리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부모님 집에 있으면서 잔소리 듣기가 죽기보다 싫어서 며칠 있다가 뛰쳐나왔다. 처음에는 에어비엔비를 잡아서 숙박하다가, 아는 형이 자기 원룸에서 지내도 된다는 호의를 베풀어줘서, 그 달의 월세를 내가 내는 조건으로 들어갔다.


그 방은 인터넷 설치가 되어있지 않은 방이었다. 직장을 구하기 전까지 임시로 사는 것이기 때문에 굳이 인터넷을 신청하지 않았다. 나는 알뜰폰 유저다. 한 달 17890원을 내고 LTE 52.5기가를 사용한다. 원래는 2.5기가만 쓸 수 있는데, 이벤트를 해서 2년간 50기가를 추가로 제공한다. 카드실적 30만 원을 채우면 12000원 할인까지 해준다. 엄청난 딜이 아닐 수 없다. 50기가 넘는 데이터가 있기에, 인터넷을 신청하지 않고 이걸로 버티기로 했다.


충분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내가 생각보다 데이터를 이렇게 많이 사용하는 줄은 몰랐다. 백수라서 데이터는 숨 쉬듯 필요한 산소와 같았다. 침대에 누워서 유튜브 보기만 해도 하루에 5기가 쓰기는 너무 쉬웠다. 열흘이면 데이터를 다 써버릴 수 있는 것이다! 데이터를 아끼기 위한 조치가 필요했다.


다운로드 기능을 적극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벅스를 갈 때, 그날 보고 싶은 영화를 넷플릭스나 왓챠 저장기능을 활용해 저장하고, 유튜브 프리미엄 기능을 활용해 보고 싶은 것들을 저장했다. 이 순간, 어릴 적 비디오 방에서 느꼈던 설렘이 다시 찾아왔다.


요즘 OTT 서비스를 볼 때 볼 것이 없다고 느끼는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넷플릭스와 같은 OTT 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콘텐츠는 예전만큼 소중한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넷플릭스에 볼 영화 드라마는 차고 넘치는데, 우리는 볼 게 없다며 미리보기만 몇 개 보다가 시큰둥해져 결국 아무것도 보지 않고 나와버릴 때가 많지 않은가? 풍요 속의 빈곤. 뷔페처럼 뭐든지 다 먹어도 된다고 양껏 차려놨는데, 막상 우리는 시큰둥해져 버렸다. 유튜브도 볼 게 없고, 넷플릭스도 볼 게 없다. 결국 인스타를 보거나 숏츠를 슥슥 넘기다 시간을 보내버린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 msg가 잔뜩 들어가 느끼한 음식을 먹었을 때처럼 뭔가 불쾌한 느낌이 남는다.


그런데 집에 인터넷이 없다는 '제한'이 걸려버리자, 다시 모든 것이 재미있어졌다. 나는 가장 저렴한 OTT 회원권을 쓰기에, 한 번에 저장할 수 있는 동영상의 개수가 5개밖에 되지 않았다. 지금 인터넷이 되는 스타벅스에서 잘 골라야, 원룸에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렇게 개수제한이 걸려버리자, 나는 초등학생시절 집 앞 비디오방에서 신중하게 영화를 고르던 그 시절로 돌아가버린 듯했다. 그 시절은 지금처럼 인터넷 무제한의 시대가 아닌 아날로그 시대였기에, 영화 한 편 한 편이 정말 소중했다. 작금의 넷플릭스 시대처럼 보다가 재미없으면 안 보고 하는 시절이 아니었다. '아, 이것도 뷔페 같은 것이었구나!' 제한이 걸려버리자, 나중에 무엇을 볼까 신중하게 고민하는 그 과정에 도파민이 펑펑 쏟아졌다.


유튜브도 마찬가지였다. 볼 게 없어 스크롤만 내리다가 숏츠로 빠져버리거나, 영상도 보다만 적이 많았다. 그런데 데이터를 아껴야 하는 상황이 되다 보니, 보고 싶은 영상이 갑자기 많이 생겼다. 데이터를 아껴야 하니 지금 당장은 보지 못한다. 나중에 스타벅스에 가서 유튜브 프리미엄에서 제공하는 기능을 활용해 다운로드할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지금의 시대는 모자람이 모자란 시대라고 생각한다. 예전과 비교하면 말이다. 결핍 그 자체였던 예전의 한국은 없다.


요리과학의 결정체, 감칠맛의 정수인 MSG는, 적재적소에 꼭 필요한 곳에만 쓰이면 정말 좋은 역할을 한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요즘 모든 음식에 과하게 쓰여 불쾌하고 느끼한 뒷맛을 남긴다. 다이소, 알리 같은 곳에서 양질의 물건을 싸게 팔다 보니 물건의 소중함을 모르고 함부로 막 버리는 경우도 생긴다. 과거와 비교했을 때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시절을 살고 있는 우리 세대이지만, 언제나 불평이 가득하다. 이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결핍이 아닐까? 무한리필 식당에서 배가 찢어질 때까지 먹고 불쾌함을 느끼는 것보다, 허기질 때까지 산책하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단출한 간장계란밥을 먹는 사람이 더 행복할 수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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