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기억력이 좋은 편이다 학교 다닐 때도
수학, 영어를 못해서 그렇지 암기과목은
자신 있었다
라테는 말이야~ 시내에 전화부스가 있
었고 부스마다 전화번호부 책이 걸려 있
었는데 가끔 심심하면 전화번호부 책도
암기할 정도의 기억력을 지녔었다
결혼해서도 7남매인 애아빠네 24번 돼
는 제사와 형내외, 누나내외와 조카 들까
지 22명 되는 시댁식구들 생일도 다 외
우고 기념일 때마다 작게라도 다 책임하
며 너무 애쓰며 살았다
내 나이 48에 완경 오고 그때부터 시작
된 갱년기로 인해서인지 기억력이 조
금씩 쇠퇴해 가더니 이런 불상사가 ㅠ
어젠 우리의 24년 결혼기념일이었다
특별한 날에는 몇 주 전부터 달력에 당
구장 표시를 해 놓고 잘 보이는 곳에
둬서 모를 수가 없게끔 두는 나,
사랑한다면 몸이든 마음이든 물질이든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나이다
꿀 먹은 벙어리인가! 말을 안 하는데 어떻
게 알 것이며 표현을 안 하는데
"당신이 날 사랑하는지 안 하는지 텔레파
시라도 우리 집 어디 있나!"
남자 셋 여자 하나, 내가 꽃인 관계로 난
먼저 늘 표현도 해 주고 또 받고 싶어 한
다 오늘은 망했다
나 요새 왜 그러지? 혹시 초록 치매라도
왔나 싶다
아침이 지나고 오후가 되어서야 카카오
에서 알림 문자 와서 알게 된 <결혼 기념
일> 허걱~
시치미 뚝 떼고 가족톡방에
"다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시는 분
찾습니다" 하고 문자 투척 했더니...
생각지도 못하게 시크보이 큰아들이 제
일 먼저 문자가 왔다
"부모님 결혼기념일이네, 축하"
하고... 작은 아들은 군대에서 핸드폰을
아직 못 받았는지 반응이 없다
나의 그 남자는 읽씹이다 이건 나의 실수
이다 아침부터 당구장 표시 해 둔 달력을
화장대 앞에 세워 두지 못한 죄이다
큰아들이 케이크 쿠폰을 보내왔다 역시
장남은 다르다
그나저나 나의 그 녀석은 몇 시간이 지나도
답장이 없다
5시가 지나서야 전화 왔다
"나도 깜빡했네 저녁에 외식이나 할까?"
"그래~ 근데 난 점심을 좀 늦게 먹어서 늦게
먹고 싶은데.."
"뭐 먹을지 생각해 봐"
딱 그 말만 하고 끊는다 낭만이 없다
첨엔 여행 다니는 것도 좋아하는 것 같고
하여 낭만이 있는 줄 알았는데 살다 보니 낭
만이 0.1% 도 없으신 분이었다
나이 51에 소녀 감성이 넘치는 나라도 그냐
마 낭만이 있으니,, 한 사람이라도 있으니
좋은 거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퇴근하신 나의 그
분이다 주전부리를 너무 좋아하시는...
자꾸 오자마자 이것저것 흡입하신다
그때부터 조금 싸하긴 했다 ㅉㅉ
7시에 외식하기로 해 놓고 배부르시단다
착한 내가 참는다
"뭐 할 수 없지 다른 날 사 줘 그럼,, 아들
이 보내 준 케이크라도 우리의 특별한
날을 기념합시다"
센스 있게 24개의 초를 넣어 보낸 아들
"24년 동안 함께 열심히 살아 줘서 고맙소"
ㅎㅎ 그 말 한마디에 금방 풀린다
친정엄마가 늘 그랬다
"품 안에 자식이라고 애들 어릴 때 그때가
제일 행복했다고"
그땐 2살 차이, 사내 녀석들 키우느라 정신
없어 몰랐는데 24살 큰아들 독립하고 22살
작은 아들 군대 가니 허전하다
애아빠가 거의 늦게 오는 날이 많다 보니
집 지키는 반려견 신세~
애들 있을 땐 빨래에 치이고 삼시 세끼에
간식에, 애들 챙김 하느라 힘들었는데
막상 빨래지옥에서 해방되고 끼니 챙김 할
필요 없게 되니 마음이 허전한 게 마치 독거
노인이 된 듯하네 ㅠㅠ
근교에 사시는 친정엄마가 딸,, 애들 없어
적적해한다고 결혼기념일 축하 겸 해 보내
온 꽃선물
애들이 곁에 있을 땐 4인 식탁이 늘 꽉 찬
느낌이었는데 오늘 식탁에 둘만 있으니 함
께하는 것만으로 얼마나 행복했었나 싶다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이 종종 있다
가족이 그러하다
함께 있을 땐 알지 못한다 함께 있어서 그
편함과 익숙함에 젖어 표현도 안 하고 살 때
가 많다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가족끼리 그러는 거 아니야!
애아빠 단골 멘트다
아니, 가족끼리 안 하면 누구랑 하냐고?
말을 안 해 주는 데 내가 신도 아니고 자기
속을 어찌 아냐고? 한다 난 늘...
고마워~
미안해~
사랑해~ 돈도 안 드는 공짜 멘트 좀 우리 많
이 하고 살자
"큰아들, 케이크 쿠폰 고마워!"
"엄마, 꽃 선물 감사해요~ 사랑합니다"
작은 아들한테 문자 왔다
"엄마, 아빠 축하해요 미안해요"
"여보야, 나한테 뭐 하고 싶은 말 없어?"
"... "
엄마가 사주신 꽃선물~
아들이 사 준 케이크~
그림 그리기 좋아하는 난.. 결혼기념일 선물로 유화를
그려서 선물한다 애아빠 회사 책상에 좋은 그림 보고
힐링하라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