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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래 Feb 07. 2023

29주, 심심한 하루

29주
왼: 코 짜부짜부 / 오: 포도는 1.47kg


일을 그만두고 나니 처음엔 그저 모든 게 신났다. 출근준비를 하지 않아도 되니, 아침시간이 여유로웠고, 그만큼 아인이에게 너그러워졌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다는 자유로움도 좋았다. 그런데 2주 차부터는 특별한 일정이 없는 하루하루가 지루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건 사람들과의 교류가 줄었다는 것. 일하면서 만나는 동료 선생님들, 등하원 때 엄마들과 한두 마디씩 나누었던 시간들이 나에겐 아주 적당한 인간관계의 폭이었던가 보다. 그것 마저 사라지니 공동체에서 도태되는 기분마저 들었다.


우울한 감정에 자꾸 빠지려고 해서 아침 산책을 시작했다. 아인이를 등원시키고 곧장 근처 산책로로 가 30분 정도를 걷는다. 첫날엔 우울한 감정이 너무 심해서 걷다가 괜히 눈물이 찔끔 날 것 같았는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마음이 어느 정도 괜찮아지는 걸 느꼈다. 날씨가 너무 춥지만 않으면 꾸준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1주일 정도 하다 보니, 나름 하루의 루틴이 생겼다. 산책 후, 집으로 돌아와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 점심을 먹고, 하원 전까지의 시간은 집안일을 하거나, 그냥 쉬거나, 글을 쓰는 것. 이제 포도를 만날 날이 2달 남짓 남았다. 언제 또 이런 여유를 누릴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심심한 마음이 감사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껏 아이가 주수보다 1주 정도 크니, 체중조절을 하라는 말을 들어왔는데, 29주 검사에서 아이가 주수에 맞게 크고 있다며 체중조절을 잘한 것 같다는 이야길 들었다. 사실 평소처럼 잘 먹고 지내서 찔리긴 했지만, 포도가 잘 자라고 있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좋은 소식이다. 진료를 마치고 예진실에서 후기 임산부 교육이 있었다. 이제 굵직한 검사들은 다 끝났다는 말이 안심이 되었다. 좋은 소식이 많았던 하루.


내 작품 ㅋㅋㅋ


임신 후기로 들어서서 그런지 시도 때도 없이 졸리다. 이상하게 밤엔 잠이 안 오고 낮이나 초저녁에 엄청 졸린데, 나는 이게 그저 일을 그만두니 하루의 리듬이 깨져서 그런 걸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최근에 출산한 아는 동생이 그건 출산일이 다가오면서 신생아의 하루 리듬에 몸이 맞춰지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소오름! 아무튼 나는 긴긴밤을 프랑스 자수를 하며 보내고 있다. 손만 움직이면 원하는 모양이 나오는 이 작업이 너무 마음에 든다. 포도가 태어나기 전에 부지런히 해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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