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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래 Feb 15. 2023

31주 1편, 행복한 토요일

31주


나른한 토요일 오후였다. 점심 먹고 뒹굴거리고 있는데, 남편이 밖에 나가자고 했다. 딱히 가고 싶은 곳도, 가야 할 곳도 없어서 근처 카페에 갔다. 아인이는 일주일에 한 번 포켓몬고를 하는 날이라 핸드폰 보느라 정신이 없고, 나는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같은 이야기도 집이 아닌 곳에서 하면 더 재미있다. 그러다 이제 슬슬 일어날까? 라고 누군가 말했고, 나갈 채비를 했다. 아인이는 카페에서 나가면 포켓몬고도 끝이기 때문에 늘 아쉬워하면서 짜증을 낸다. 그런 아인이를 달래려 남편이 안산 자락길에 가자고 했지만 짜증은 가라앉지 않았다. 갑자기 눈오리집게가 생각난 나는 그럼 안산에 가서 눈오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조금 수그러든 아인.



마침 눈오리집게가 3개나 있어서 하나씩 들고 만들기 시작했다. 눈이 온 지 며칠이 지난 상태라 전부 푸슬푸슬한 상태였지만, 그 와중에도 남편은 눈오리를 척척 만들어냈다. 아인이는 눈오리가 잘 만들어지지 않자, 아빠를 도와 눈을 여기저기서 모아다 주었다. 속상해할 줄 알았는데, 그것만으로도 재미있어한다.


안산자락길을 조금 걷다 보면 작은 연못이 나온다. 추운 날씨 탓인지 연못이 온통 꽝꽝 얼어있었다. 눈오리를 만들다 조금 지루해졌는지, 남편이 얼음 위로 발을 디뎌본다. 깜짝 놀라서 얼른 나오라고 했지만 들은 채도 안 하는 남편. 아인이도 뒤따라 들어갔다. 나랑 아인이만 있었다면 절대 시도해보지 않았을 일. 걱정 없는 남편 덕분에 아인이가 얼음도 밟아보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추운 날은 아니었는데, 밖에서 오래 있었더니 몸이 으슬으슬했다. 우리 모두 따뜻한 국물을 먹고 싶다는 데 뜻을 모았다. 이렇게나 빨리 메뉴가 정해지다니! 이런 날은 흔치 않다. 대충 검색을 해서 근처 우동집에 갔고, 그렇게 맛있는 우동이 아니었음에도 너무나 맛있게 잘 먹었다.


식당을 나와 새로 생긴 마트에 갔다. 나는 요즘 즐겨 먹는 딸기를 싼 가격에 샀고, 아인이는 핼러윈 때 그렇게 갖고 싶어 했던 호박바구니 젤리를 샀다. 쇼핑을 좋아하는 나는 장보기로 하루가 마무리되어서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요즘은 셋이 함께 하는 시간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아인이와 남편이 즐겁게 노는 모습도, 그걸 지켜보면서 웃고 있는 내 모습도 너무나 좋다. 이제 두 달 남짓 남았다. 포도가 태어나기 전에 우리 셋이서 좀 더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금의 기억들이 신생아를 키워야 할 나에게, 지금보다 육아에 더 참여해야 하는 남편에게, 동생에게 자꾸만 질투가 나는 아인이에게, 힘이 되어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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