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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래 Jan 26. 2023

24주, 임산부의 마음

24주


원래 감정기복이 심한 편인데, 이맘때쯤 감정기복이 더욱 심해졌다. 몸이 점점 불편해지는 것도 감정기복에 어느 정도 기여를 하고 있다. 아침에 좌식테이블에서 아인이와 아침을 먹는데, 아인이가 우유를 더 달라고 했다. 앉았다 일어서는 일이 이제 나에겐 쉽지 않아서, 아인이에게 우유를 그만 먹는 게 어떠냐고 했더니 마음이 상한 아인이가 짜증을 냈다. 그 모습에 나도 화가 나서 같이 짜증을 냈다. 그렇게 그날 아침의 등원준비는 짜증으로 시작해 짜증으로 끝났다. 평소 같았으면 흔쾌히 우유를 가져다줬을 거고, 아인이가 짜증을 내도 침착하게 타일렀을 거다. 아인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니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요즘은 버스를 타도 괜히 짜증이 난다. 내가 자주 이용하는 버스는 평일 낮에도 사람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임산부석엔 대부분 누군가 앉아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대부분 임산부가 아닌 사람들이다. 10대부터 50대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는다. 버스가 만석일 경우엔 내가 임산부임을 밝히고 자리양보를 부탁한다. 하지만 다른 좌석이 비어있을 땐 임산부석을 차지하고 앉은 사람에게 괜히 화가 난다. 그냥 다른 자리에 앉으면 될 일인데, 나는 뚫어져라 그 사람을 쳐다보곤 한다. 한 번은 두 자리가 연결되어 있는 임산부석 창가에 앉아있는데, 옆에 젊은 남성이 앉았다. 그것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체격이 엄청 큰 남성이어서 내 팔을 최대한 몸에 붙여서 있는데도 팔이 저릴 지경이었다. 불편해서 계속 몸을 꿈틀거렸더니 그 남성도 기분이 나빴는지, 내리려고 일어서는데 다리를 옆으로 비켜주지도 않은 채로 꼿꼿이 앉아있었다. 이런 일에 기분이 상하는 내가 힘들었다.


요즘은 자꾸 두 가지 마음이 든다. 임산부라는 이유로 주변사람들에게 과한 도움을 받고 싶진 않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 누군가 나를 배려해주지 않으면 속상해한다. 이런 마음이 버스 안에선 너무나 크게 드러난다. 태아는 엄마의 감정을 다 느낀다던데, 왜 호르몬은 자꾸 내 감정을 건드리는 건지. 어쨌든 이런 나의 상태에 하루빨리 적응할 수 있길 바랄 뿐이다.


아인이 입체초음파
포도 입체초음파


지금껏 산부인과 검진은 늘 혼자 갔는데, 26주 검진에는 시간이 맞아 온 가족이 함께 병원에 갔다. 혼자 가는 것도 싫진 않았지만, 남편과 같이 온 산모들을 보면 괜히 부러운 마음이 들었던 터라 같이 병원에 가는 길이 신이 났다. 입체초음파를 했는데, 포도의 얼굴이 아인이가 뱃속에 있었을 때 얼굴과 묘하게 닮았다. 초음파실에서 나와 아인이에게 포도가 아인이랑 닮았다고 했더니, 정색을 한다. 남편은 옆에서 아인이가 초음파 화면을 보는 걸 어지러워했다면서 아인이를 챙기기 바빴다. 역시 내 예상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황씨들. 어쨌든 포도는 넘 귀엽다. 얼굴 잘 보여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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