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는 '아름다운' 맛집이 많다. 근처 직장인들 덕인지, 그릇에 예쁘게 담긴 음식들이 깨끗한 식탁에 잘 차려진 집들이 많다.
수육을 즐겨 찾는 나로서는 주로 깔끔하고 정갈한 집보다는 상대적으로 어수선하고 오래된 집들을 찾아다니게 된다. 너저분하게 늘어져있는 집, 식탁이 오래된 집, 그릇에 어설프게 담겨있는 집들. 하지만 그래도 맛은 보장되는 곳.
하지만 보쌈도 정갈하게 담길 수 있다. 깨끗한 그릇에 깔끔하게 담긴 보쌈. 상상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꽤 그런 집들이 있다. 락희옥도 그렇고 지금은 없어진 압구정의 모락관 같은 곳.
그런 집이 광화문 언저리에도 있다. 광화문 중심지에서는 상당히 거리가 있지만, 근처 직장인들에게는 각광받는 곳 중 하나다.
이 집은 그나마 가까운 지하철역을 꼽자면 광화문역이다. 1번 출구로 나오면 되는데 거기서도 넉넉하게 10분은 걸어야 한다.
내수 근린공원 근처로 오다 보면 카페 Things I Made Today(TIMT)가 보인다. TIMT를 바라보고 정면으로 살짝 올라오다 보면 좌측에 하얀 주택이 하나 보이는데 그곳이 오늘 소개할 '아이노가든 키친'이다.
아이노가든 키친은 이름처럼 정원 안에 있는 느낌이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면 깔끔한 내부 공간이 펼쳐지는데,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2층으로 올라가면 식당이 나온다.
하지만 이 집은 쉽게 2층으로 갈 수 없다. 웨이팅이 심하기 때문이다. 직장인들이 몰리는 12시에는 상당히 긴 시간 웨이팅을 해야 한다. 이미 알려진 팁이겠지만, 캐치테이블을 이용하면 11시 반과 12시 반 타임은 예약이 가능하다. 가급적이면 예약을 하고 가는 게 낫다.
저녁 시간도 비슷하다. 6시는 예약이 불가능하고, 그 전후로 예약이 가능하다. 6시가 조금만 넘어가면 웨이팅이 생긴다. 그러면 2층으로 올라가기 전 계단이나, 1층과 2층 계단 사이에 앉아서 대기해야 한다.
계단을 올라가면 바로 좌측에 약간은 독립된 공간이 나오고, 정면에는 다수가 앉는 원형테이블과 키친, 그 맞은편에는 좌석들이 여러 개 놓여있다. 실외에도 공간이 있어서 날이 선선해질 때는 바깥도 선호하는 공간이다.
편한 자리에 앉으면 되는데, 원형테이블과 독립된 공간 모두 앉아본 경험으로 따지면 당연히 독립된 공간, 그중에서도 계단 올라오자마자 좌측 방이 조용하고 좋다. 다른 사람과 함께 둥그랗게 앉아야 하는 원형테이블은 옆사람과 거리가 상당히 가깝다. 한 번은 옆사람의 상추 털기에 당해 물이 튄 적도 있다.
자리에 앉으면 메뉴를 보고 결정해서 카운터로 가야 한다. 선불이기 때문이다. 메뉴는 크게 고기볶음 쌈 채소 정식과 통삼겹 쌈 채소 정식이다. 다른 메뉴들도 많은데, 여럿이 왔다면 정식을 시켜볼 만하다. 2인 이상 주문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육을 좋아하는 나는 당연히 통삼겹을 주문한다. 주문 후 자리에 앉으면 반찬이 차례로 세팅이 된다. 된장찌개와 (장맛이 나는 듯한) 겉절이, 샐러드, 쌈 등이 나온다. 그리고 곧이어 통삼겹이 채소와 함께 담겨 등장한다.
이제부터 고기의 시간이다.
서울 종로구 내수동 아이노가든기친 통삼겹 쌈 채소 정식
이 집의 고기는 부드럽지는 않다. 부드럽지 않다면 딱딱하다는 말인가? 그건 아니다.
수육이라기보다는 통으로 구워낸 바비큐 같기도 하다. 하지만 육즙을 가득 머금고 있기에 수육과 일맥상통한 느낌이 있다. 추측의 영역이지만, 아마 삶은 후 굽거나 튀기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부드럽지 않더라도 고기는 '맛있다'라고 느껴진다. 삼겹살 특유의 기름진 맛이 가득 다가온다.
이 집의 고기 향은 동파육과 비슷하다. 굴소스나 통후추로 맛을 낸 것 같다. 색깔도 갈색이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향이 강해서 못 먹을 정도는 아니다. 씹으면 씹을수록 육향이 강하게 다가온다.
단점은 오래 두고 먹으면 퍽퍽해질 수 있다는 점. 물에 오래 담겨있던 보통의 보쌈 고기와 다르게, 살짝은 푸석한 탓에 육즙이 금방 날아갈 수 있다.
하지만 금방 먹게 된다. 맛있기 때문.
채소와 함께 먹기에 적합하다. 고기의 육즙을 채소가 감싸고, 쌈에다가 싸 먹으면 구워 나온 삼겹살 먹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냄새 배는 걸 싫어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냄새 안 배고 구운 삼겹살과 비슷한 고기를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서울 종로구 내수동 아이노가든기친 통삼겹 쌈 채소 정식
이 집은 김치가 따로 없는데, 굳이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비슷한 류는 고기와 함께 나오는 미나리 무침 또는 반찬으로 나온 겉절이.
겉절이는 고추장 같은 장의 향이 살짝 나고 금방 무친 느낌이다. 오래 익은 느낌은 아니고 배추에다가 양념을 금방 해서 나온 느낌. 맛있다. 그리고 고기와 은근 잘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