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공간 속, 다른 물의 결로 살아가는 우리

피에트로 마스카니 -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인터메초

by 이제이

사람의 생이 전주곡 없이 시작된다면,
그 마음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언제나 인터메초처럼 스며든다.



이 곡을 좋아하게 된 건
단지 멜로디가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어느 날 우연히,
이 곡을 만든 마스카니의 삶을 알게 되면서
그 감정의 실체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그의 삶은 낭만이나 찬란함보다는
오히려 유영하는 듯한 생에 가까웠다.
흘러가되 머물고,
기대되다 돌아서며,
벼랑 끝에서 피어난 음악이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 곡에 이토록 끌린 이유는
음악이 나를 알아본 것이었구나.
그의 영혼과 내 영혼이
언젠가 스친 적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피에트로 마스카니, 전형에서 벗어난 생

마스카니는 1863년 이탈리아 리보르노에서 태어났다.
법관이 되길 바랐던 아버지를 피해
몰래 음악학교에 입학할 만큼,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오직 단 하나의 작품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로
모든 것을 이루어냈다.
하지만 성공 이후에도
단단하게 뿌리내린 사람은 아니었다.

그의 인생은 오히려
바람 따라 물결치듯 움직이는,
움직이는 삶이었다.
때로는 음악 외적인 일로 비판받기도 했고,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길을 잃기도 했다.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았다.
늘 결로 살아갔다.
같은 공간, 다른 물의 결.
누군가는 앞으로 나아가는 밀물이었다면
마음은 썰물이었다.
멀어지는 듯하면서도
언젠가 꼭 닿는 파도였다.



인터메초, 사랑도 분노도 지나간 뒤의 고요한 눈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는 시칠리아의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치정과 복수, 운명의 덫 속에 갇힌 인간 군상의 이야기다.
그 중심에 흐르는 인터메초는
오페라의 중심이 아닌, 사이에 있다.
사이에서 모든 감정을 잠시 내려놓고
오직 하늘만 바라보는 고백 같은 곡이다.

이 곡은 말하지 않는다.
오직 연주로 울게 한다.
분노, 질투, 회환, 죄책, 용서
모든 감정이 지나가고 난 뒤
한 여인이, 한 사내가
홀로 남은 정적 속에서
자신을 마주하는 순간을 떠올리게 한다.



음악과 삶, 그리고 이야기

마스카니는 러시아 여성과의 사랑도,
국가적 정세의 부침도 겪었다.
그의 음악은 항상 시대와 나란히 숨을 쉬었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자의 고독을 품고 있었다.

파시스트 정권 아래에서 일정 부분 타협했지만
어떤 권력도 그의 음악만큼은 꺾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곡은 언제나 내면으로 향한다.
사랑도, 분노도, 역사의 소용돌이도
모두 지나간 후의 깊은 침묵으로.

어릴 적,
사람들이 말 많은 삶을 살며
그 속에 길을 잃어가는 걸 보았다.
그리고,
침묵 속에 더 많은 말이 있다는 걸
이 곡을 통해 배웠다.

처음 이 곡을 들은 날,
아무 일도 없던 날이었는데
눈물이 났다.
누군가를 잃은 것도,
무엇이 잘못된 것도 아닌데
그저 음악이 내 안의 무언가를 건드린 것이다.

지금도, 이 곡을 들으면
그날의 나를 다시 만나게 된다.
아직 아무 말도 할 줄 모르는 나.
하지만 세상의 모든 말을 알고 있는 듯한 나.




울돌목

종종 이런 상상을 한다.
이순신 장군의 울돌목.
그 좁고 거센 물살 속,
같은 공간에서조차
다른 방향으로 부딪치며 흐르는
수많은 물의 결들.

늘 모든 것과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아도 좋다.
누구나 지금은 밀물이다 말할 때에도
마음이 썰물을 원한다면
그 방향으로 흐르는 물이 되고 싶다.

삶이라는 파도는 매번 몰고 가지만
적어도 단 한두 번쯤은
원하는 삶의 결로
살아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오늘도 이 음악을 듣는다.
인터메초.
되고 싶은 물의 마음을 닮은 음악.



마지막 문장

음악은 텔레파시가 맞다.
말하지 않아도
이미 마음을 안다는 듯,
먼저 흐르는 물결이 되어 다가오니까.



추천 감상링크

https://youtu.be/9Rt7EAmZ62c?si=t-TwZY5SbZ1tbbW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