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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끄적

2025.09.30

by 이제이

“자기(自己)” — 사랑의 또 다른 이름

우리는 흔히 연애할 때 연인을 “자기야”라고 부른다. 언뜻 보면 단순한 애칭처럼 들리지만, 사실 이 호칭에는 흥미로운 철학적 의미가 숨어 있다. “자기(自己)”라는 말은 본래 ‘나 자신’을 뜻한다. 그런데 연애에서 상대방을 “자기”라고 부른다는 건 곧 너를 나처럼 여기고, 나와 하나로 묶는 행위다.


이 호칭 속에는 ‘너와 내가 구분되지 않는다’는 감각, 그리고 ‘너를 내 일부처럼 소중히 여긴다’는 감정이 함께 담겨 있다. 그래서 “자기야”라는 두 글자는 단순한 호명(呼名)을 넘어, 사랑이 만들어낸 동질감의 언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정말 이만큼의 사랑을 할 줄 아는가. 상대를 나와 똑같은 존재로 받아들이고, 그 사람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그 사람의 상처를 나의 상처로 안아줄 수 있는가. 연애란 단순히 두 사람이 만나는 일이 아니다. 두 개의 ‘자기’가 서로를 비추며, 때론 충돌하고 때론 포용하면서 ‘우리’라는 새로운 자기를 빚어내는 과정이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 우리는 종종 사랑을 ‘내 욕구를 채워주는 관계’ 정도로 축소해 버린다. 그러다 보면 “자기야”라는 말은 그저 습관적인 호칭으로만 남고 만다. 하지만 진짜 사랑이라면, 이 호칭이 던지는 무게를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상대를 진정한 자기, 곧 나와 다르면서도 나와 맞닿아 있는 존재로 인정할 때, 비로소 사랑은 이름 그대로의 깊이를 가진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물음이 있다. 상대를 아끼고 사랑하면서도 나는 나를 버리지 않고 소중히 대하고 있는가.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루어 공존할 때 비로소 안정적이고 서로가 편안한 연애가 가능하다. ‘너와 나’가 하나로 융합되는 동시에, ‘너와 나’가 각자의 자리에서 존중받을 때, 사랑은 무너지지 않는 중심을 갖게 된다.


“자기야.” 이 말은 달콤한 애칭이자 동시에 묵직한 질문이다. 우리는 과연, 자기 자신을 아끼듯이, 그리고 자기 자신을 지키듯이, 그만큼의 사랑을 할 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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