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늘 나와 붙어있을 암. 그 암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두려워할까. 마지막 항암주사를 맞기 위해 순서를 기다리며 불현듯 '암'이 궁금해졌다.
사전에 검색하니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생체 조직 안에서 세포가 무제한으로 증식하여 악성 종양을 일으키는 병. 결국에는 주위의 조직을 침범하거나 다른 장기에 전이하여 생체를 죽음에 이르게 한다. 유전성 외에 물리적 자극, 화학적 자극, 바이러스 감염 따위가 원인이며 완치는 어려우나 외과 수술, 방사선 요법, 화학 요법으로 치료한다.
사전은 역시 명확하다. 내가 저런 암에 걸렸다. 그래도 1기니까 괜찮아,라고 나 자신을 위안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타인에게 특별한 대우를 받고 싶지도 않다. 다만 내 앞 날은 그 누구도 모른다는 사실을 실감했고, 인생은 각자 스스로의 몫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5월 2일, 마지막 항암주사를 다 맞고 병원을 나왔다. 남편을 기다렸다. 밖은 찬란히 환하고 밝았다. 나무는 푸릇푸릇 제 모습을 찾아가고 새들은 지저귀며 귀엽게 날아간다. 민들레꽃은 지고 꽃씨를 품고 있다. 씨앗 하나를 잘 날아가게 하려고 솜털들이 100여 개가 붙어있다니 놀랍다. 민들레꽃도 살려고 저렇게 애를 쓰고 있다. 기쁘게 감사하게 하루를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다가도 또 현실에 부딪히면 난 또 나약한 존재가 된다.
마지막 항암을 하면 다들 신난다는데 난 왠지 우울감이 생겼다. 앞으로 받을 방사선과 CT결과 때문일까.
종양내과 선생님은
"뼈스캔, CT결과 모두 통과해야 저랑도 졸업합니다."
라며 6월에 예약을 잡아주었다. 뒤돌아 서니 쭉 예약된 검사와 진료스케줄. 갑자기 현기증이 찾아왔다. 마지막 항암에서 자유로움을 느끼고 자축하고 싶던 마음에 찬물을 뒤집어쓴 기분이다.
게다가 5월 2일 오늘은 우리 부부의 15주년 결혼기념일이다. 새벽에 나오면서 서로 축하인사도 안 했던 게 마음에 걸린다. 저녁에 만나면
'수고했어! 앞으로도 잘 살아가자'라고 말해야겠다.
작년 결혼기념일에는 한껏 멋을 내고 일식집에서 오마카세도 즐기고, 꽃다발도 받았었다. 우리 부부는 기념일에는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며 해피엔딩만 꿈꿨었다. 그런데 내가 아프고 나니, 인생에는 반전이 있어야 행복도 느낄 수 있음을 깨달았다.
해피엔딩을 만들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치료 잘 받고, 하루하루 성실히 살아가는 것이다. 전에 즐겨 마시던 아이스아메리카노와 믹스커피, 아이스주스는 이제 다 끊었다. 지금은 설탕 넣지 않은 생과일주스나 우유 대신 두유나 오트밀을 넣은 라떼는 마신다. 제일 끊기 힘든 건 밀가루다. 면을 좋아하다 보니 끊는 게 쉽지는 않다. 조금씩 절제해야겠다.
큰 욕심은 부리지 않기로 다짐하지만 쉽지는 않다.
나는 오래 살기 위해 설탕이 들어간 먹거리는 전보다 줄이고 있다. 오늘도 오전 7시에 채혈을 했다. 9시 진료시간까지 2시간이 남았다. 어김없이 배에서 꼬르륵, 밥 먹자고 신호를 보낸다. 암에 걸리기 전이었다면, 아메리카노 한 잔과 빵을 먹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설탕 안 들어간 토마토 주스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다. 여전히 배에서는 뱃고동 소리처럼 크게 꼬르륵꼬르륵 요란하다.
채혈을 하고 8시에 도착접수 기계가 켜져야 진료 대기를 할 수 있다. 9시 진료 예약에 맞춰 키와 몸무게, 혈압을 재고 입력했다. 진료를 보고 항암낮병동에 올라가니, 난리도 아니었다. 환자가 밀려서 40번째 접수자인 나도 5시간 뒤에 주사를 맞는다는 것. 예상 시간은 오후 2시에병실이 나온단다. 휴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럼 그렇지. 마지막을 또 이렇게 끝내는구나. 뭐든 쉬운 건 없다.'
화가 났지만 주변에 할아버지들이 너무 많이 계셨다. 옆에 함께 계신 할머니 보호자에게 온갖 짜증을 내시는 할아버지들이 많으셨다. 병원에 화를 내고 싶은 것을 괜스레 할머니에게 소리치는 할아버지. 노인부부들을 보며 삶이 참 어렵다고 느껴졌다. 나는 대기실을 나와 약국을 미리 갔다. 천천히 걸으며 5 천보를 채웠다. 그리고 또 시간이 11시가 안 되었길래 식당에 가서 전주비빔밥을 야무지게 먹고 또 병원을 산책했다. 그래도 12시다. 편의점 쇼핑을 했다. 생수 한 병과 오사쯔(과자 이름)한 봉지를 샀다. 먹지도 않을 과자는 대리만족용이다.
이 날 이후 비빔밥에 꽂혀 집에 돌아와 비빔밥을 두 번이나 먹었다.
대기실, 내 이름이 전광판에 떴다. 아직도 더 기다려야 한다. 난 소파에 기대서 잠을 잤다, 눈을 뜨니 1시다. 진짜 2시가 되니 호실이 잡히고 드디어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아, 그래도 이제 살 것 같다.'
이제 2시간 20분 정도만 주사 맞음 항암 끝!이다. 포트에 주사를 꽂는데 오늘따라 많이 쓰라렸다. 그래도 참자.
첫 항암제는 꼭 술에 취한 느낌이다. 얼굴이 달아오르며 심장이 조금 쿵쾅, 쿵쾅. 그래도 호흡하는 데는 문제없이 통과, 나는 또 한 시간가량 술에 취한 듯 잠에 빠졌다. 그리고 한 시간 쉬었다가, 마지막으로 코 끝이 찡해지는 '도세탁셀' 항암제가 20분 정도 빠르게 들어갔다. 이제 정말 끝났다. 원래대로라면 마지막 항암날 포트제거수술을 했어야 했는데, 두 달 후에나 수술날짜가 잡혔다. 포트를 삽입한 채 방사선을 받아야 하니 신경 쓰인다.
그래도 항암낮병동과는 안녕이다. 간호사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복도 소파에 한참 기대 있었다.
병실 복도 통창으로 나뭇잎이 반갑게 흔들렸다. 마치 웃고 있는 느낌이었다. 따뜻한 햇살과 웃음. 우울했던 마음이 조금 풀렸다.
병원 1층에서 남편을 기다렸다. 1시간 후 남편의 차가 도착하고 미리 테이크아웃했던 아이스아메리카노를 건넸다. 남편의 최애 별다방 커피로 고마움을 대신했다. 남편은 뒷좌석에서 핑크장미 15송이를 꺼내 내 품에 안겨줬다. 그리고 따뜻하게 안아주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한동안 대답을 못하고 눈물만 나왔다.
꽃을 보니 기뻤다. 하루 종일 우울했던 감정이 눈물과 함께 사라졌다. 남편도 눈이 촉촉해지는 거 같아
"나도 고마워! 당신도 고생했다. 아프지 말고 오래 같이 살자!당신 진짜 15년 동안 아빠로 남편으로 가장으로 성실했어. 고마워!"
라고 말하며 손을 잡아줬다. 남편은
"15년이 진짜 빨리 지나갔다. 당신도 항암 6번 힘들었는데 빨리 지나갔잖아. 이제 방사선도 금방 지나갈 거야. 고생 많았어."
라고 위로의 말도 건넸다.
남편은 결혼 1주년부터 장미꽃 한 송이를 사주었고, 횟 수가 늘수록 장미꽃 수도 늘어났다. 우리는 몇 송이까지 함께 할 수 있을까. 그래도 최소 50송이까지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