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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투병일기-13

마지막을 앞두고

by 멜로드라마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어제저녁에는 피곤했는지 8시에 잠들어 다음 날 7시에 일어났었다. 오늘 잠이 오지 않는 이유는 내일이 방사선치료 마지막이라서 그런 거 같다. 내일이 모든 치료의 끝이라 여겨진다. 긴 시간이었다. 작년 추석연휴쯤 암일 것 같다는 초음파선생님의 말을 들었고, 조직검사를 기다리고 대학병원진료를 시작한 게 11월이었다. 그 사이 상피내암일 거란 1차 소견과 달리 12월 수술 후 조직검사결과 침윤성 암진단으로 병기가 바뀌게 되었다. 그때의 충격, 그것도 항암밖에 치료방법이 없던 삼중음성.


생각해 보니 난 쉽게 무언가를 얻은 적이 없었다. 큰아이를 낳고도 장애아 오진판정으로 조리원 퇴소와 동시 암울의 시간을 보냈었다. 자격증 시험을 보더라도 늘 한 번에 붙지를 않았다. 운전면허는 한 번에 붙었지만. 면접시험을 보러 갈 때는 늘 차가 막힌다거나, 중요한 약속이 있을 때 감기에 걸리거나, 코로나 백신을 맞을 때도 늘 미열이 나서 여러 번 뒤늦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해냈다는 것. 나 자신이 꼼꼼하지 못했던 성격 탓인 문제도 있고, 환경이 따라주지 않는 운이라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며 힘든 과정 뒤에는 긍정적인 결과가 있었다.


내가 아팠던 8개월간의 시간에 아이들은 잘 자랐으며, 나 또한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다. 특히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어떻게 살아왔으며, 큰 문제를 겪었을 때 과거에 미숙했던 나의 단점을 발견하였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이미지는 아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앞으로도 꼭 모두에게 좋은 사람은 안 돼도 된다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진리이며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은,

하나님은 살아계신다라는 것. 배우 최수종이 상을 받으며 수상소감을 했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거 당연한 게 없었습니다. 모두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 당시 온전히 느끼지 못했지만 지금 나는 알 수 있다. 내가 해왔던 모든 일들 그 과정 속에 하나님은 늘 나와 동행하셨음을. 그나마 그래서 내가 이 정도인 것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지 않았다면, 난 더 부정적이고 나약하고 나 자신의 굴레에 싸여 벗어나지 못한 인간이 되었을 것이다. 내 안의 수많은 죄의 싹들이 하루에도 수백 개씩 돋아나고 있음을 느껴 무섭기도 하다.

이제 모든 치료가 끝이지만 난 암이란 녀석과

늘 동행해야 한다.

잘 지내보자, 그렇지만 넌 작고 더 작아져야 해. 언젠가 또 내게 찾아온다 해도

난 더 단단해져 있어서, 널 두려워하지 않을 테니.

2024.10월의 어느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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