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고 싶어 질 때마다 비행기 티켓을 샀다
#산문집 #여행에세이 #에세이
> 평소 에세이를 좋아하지만 특히 여행에세이를 좋아한다. 작가가 쓴 여행에세이를 읽으면 나도 함께 여행을 떠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처음 가본 나라의 공기와 온도, 냄새마저 느껴진다. 이번에 내가 읽은 이 여행에세이는 일반적인 여행에세이완 조금 다르다. 여행의 설렘을 기록한 에세이가 아니라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와 순례길을 걸으며 겪은 고생들과 깨달음에 집중되어 있다. 제목 또한 인상 깊다. 다들 기내식을 기대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하늘 위에서 먹는 밥. 하지만 막상 먹고 나면 그저 그런 맛에 실망한다. 그럼에도 어김없이 다음여행에서 기내식을 기대한다. 여행도 마찬가지이다. 떠나기 전엔 다른 나라에 가면 내가 180도 변해있을 거란 기대를 안고 떠나지만 극적인 변화가 찾아오진 않는다. 실망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행을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 자신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비행기 티켓을 샀다. 그리고 비행기가 떠오르는 순간, 후회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한 것이다. 창문 너머 점점 작아지는 저 땅에 모든 것을 두고 떠나올 수 있었다. 나 자신만 빼고, 내가 나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서 떠난 여행이지만, 이제 나한테는 나 자신만 있다.
>> 내가 나로부터 도망치고 싶어 떠난 여행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외국에 나가면 믿을 사람이 나뿐이다.라는 말. 공감 간다. 나도 2년 전, 일상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한국에서의 나의 모습이 싫었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호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막상 호주에 도착하고 나니, 그렇게 싫었던 나를 내가 믿어야 하는 상황이 왔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나를 구원하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구원할 수없다.라는 사실을.
잡코리아나 알바몬에서 구한 단기 아르바이트로 장소를 바꿔가며 매번 다른 역할로 일하다 보면 삶이 연극 같았다. 외국의 낯선 도시에서 보내는 한 달이 진짜 삶 같고 한국에서의 삶이 여행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 생활을 YOLO 같은 단어로 멋지게 포장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은 삶이었고 그냥 '개고생'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나는 스스로 삶을 저버렸을 것이다. 숨이 막혀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냥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 가족들 얘기를 듣다 보면 의외로 나와 비슷한 사람이 집안마다 하나씩은 있는 것 같다.
도대체 인생에 계획이나 목표가 없는 것 같고, 결혼할 생각도 없는 것 같고,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돈을 모을 생각도 없는 것 같고, 자꾸 한국을 떠나서 외국을 돌아다니는. 남에게 딱히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지만 노후 대비 같은 건 전혀 없어 보여서 부모님과 형제자매를 걱정시키는 집안의 골칫거리. 집집마다 하나씩 있는 것 같은 그런 형제자매들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이렇 대답한다.
"걱정도 하지 말고 조언도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둬. 달리 방법이 없어서 그래. 그 사람은 그게 살길이야.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 있으려고 그러는 거야."
>> 각자 살아가는 뚜렷한 이유가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대부분 그냥 살다보니 살아지는 것이다.라고 할것이다. 그 과정에서 여행을 자주 다니는 것도 계속 살아가기 위한. 하나의 이유라고 생각한다. 워홀에서 만난 언니도 서른 살이 됨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뚜렷한 직장 없이 몇 년간 해외에서 지내는 중이었다. 처음엔 불안한 삶처럼 보였다. 하지만 언니는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아, 저 언니에겐 한국에서의 삶이 오히려 불안할 수 있겠구나. 외국에서 사는 게 숨통이 트인다면 그렇게 하면 되는 것이다. 억지로 맞지 않는 틀에 자신을 구겨 넣고 하루하루 '나는 왜 사는 거지?' 하며 우울해 할바에 해외에서 살아가는 이유를 만드는 것. 그것이 훨씬 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