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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승민 ASM Dec 21. 2022

30. 비브르 사 비 (1962)

사랑이란 단어와 사랑한다는 것의 차이

감독. 장 뤽 고다르

출연. 안나 카리나, 사디 르보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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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브르 사 비>는 장 뤽 고다르 감독의 1962년 작품으로, 누벨바그를 대표하는 여배우인 안나 카리나가 출연한다. 이 작품은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서사극 이론에서 ‘낯설게 하기’ 장치가 효과적으로 도입된 영화로 유명하다. 브레히트는 연극의 사회 비판적인 기능을 강조하였다. 낯설게 하기, 혹은 소격 효과는 배우들이 자신의 배역에서 이탈하거나 스크린으로 상황을 설명하는 등 극작품의 연출에서 관객의 감정이입을 막기 위한 방법인데, 이를 통해 관객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현실과 다름을 인지하고 이를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게 된다는 이론이다. 몇 년전 이 영화를 처음 감상했을 때나 이번에 다시 감상했을 때나 모두 동일하게 어딘가 불쾌하고 불편한 감정을 느꼈던 것은 감독의 의도적인 연출로 인한 자연스러운 현상인 것이다. 보편적인 영화의 특징은 관객을 몰입하게 하는 연기를 통하여 작품에 이입하게 만드는 것인데, 고다르 감독은 새로운 시도를 통해 영화를 통해 진짜 현실과 그 속의 모순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영화의 대표적인 특징은 12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각 장마다 설명과 함께 해당 장에 관한 고유의 제목이 존재하고 대부분이 앞 장면과 인과관계가 뚜렷하지 않은 독립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이 또한 할리우드 영화의 끊김 없이 촘촘한 극 구성과는 명확히 대비되는 구조로 관객이 오로지 자신이 보고 있는 현재의 장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비브르 사 비’ 는 자신의 뜻대로 산다는 의미로, 관객은 위와 같은 흐름을 통해 정말 주인공 나나가 자신이 생각한 대로 살아가는지 분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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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는 영화배우를 꿈꾸는 가난한 여자로, 음반 가게에서 일하지만 어려운 형편에 힘들어한다. 그러던 중에 포주인 라울을 만나 성매매 일을 시작하게 된다. 하지만 엄격한 규칙으로 통제된 삶을 살아야만 했고, 자유로운 인생과는 거리가 먼 삶이 계속되자 불행해진다. 결국 라울은 규칙을 어겼다는 이유로 나나를 갱단에 팔아버리려 하기도 한다. 이 작품은 시작부터 기존 영화의 규칙이 아무 쓸모가 없음을 직접적으로 드러낸다. 인물을 소개해야하는 첫 장에서 나나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여 측면과 정면을 오가는 쇼트를 구성하고, 같이 등장하는 남자와 대화하는 장면에서도 일절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채 카메라는 좌우로만 움직이며 뒷모습만 보여준다. 또한 장엄한 음악이 흐르다 끊기기를 반복하고 같은 대사를 톤을 다르게 하여 3번 반복하기도 한다. 불친절하지만 나나의 불안한 심리를 효과적으로 드러냈던 연출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영화관에서 <잔 다르크의 수난> 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순교를 통한 구원을 외치는 잔 다르크의 이미지는 영화 초반부터 자신의 삶을 직접적으로 책임지려 하지만 현실의 벽 앞에서 어려움을 겪는 나나의 상황과 일치한다. 이토록 삶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던 나나는 성매매 일을 시작한 후로 자유를 잃은 채 그저 고객이 시키는 대로 행하여야 하는 삶을 살게 된다. 9장에서 당구대 주위를 돌며 춤을 추던 나나의 즐거워하는 모습이 그녀의 현실과 구분되어 굉장히 슬펐다. 급작스럽게 바뀌는 음악과 더불어 풍선 부는 아이의 모습을 우스꽝스럽게 흉내내는 남자 또한 마치 광대와 같이 느껴져 이 장면이 끝난 후 더 큰 허무함을 느낄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빠른 템포의 유연한 분위기의 영화에서 가장 직관적이고 탄력적이었던 부분은 성매매와 관련된 정보를 나열하던 장이다. 나나와 어떤 남성의 질의응답 형식을 통하여 성매매의 역사와 법, 수치와 같은 다양한 정보를 전달한다. 성매매와 상관없는 이미지를 보여주며 전달하는 이 부분은 관객에게 성매매를 그저 영화의 한 요소로 보지 말고 사회비판적으로 바라볼 것을 호소하는 듯 한 태도를 취한다. 또한 불행한 현실 속에서 나나가 마주해야 하는 또 다른 족쇄의 갑갑함이 잘 느껴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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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한 남자와 대화하는 장면 또한 기억에 남는다. “말이 많을수록 의미는 적어져요” 라고 말하며 단어라는 것은 단지 하고 싶은 얘기를 표현하는 것이라는 나나에게 플라톤의 사례를 들며 말을 통해서 우리는 자기를 표현할 수 있고, 생각을 해야하기 때문에 단어가 필요한 것이라고 말한다. 생각하는 인생을 산다는 것은 매일 죽어야 함을 존재로 한다면서 사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나나에게 사랑하는 것과 함께 완전하게 되려면 성숙, 즉 탐구해야 함이 인생의 진리라고 말한다. 지금껏 사랑이 진리라고 믿은 채 살아왔던 나나는 사랑이라는 단어와 사랑한다는 것 사이의 괴리를 깨달은 걸까, 갑자기 카메라를 쳐다보는 부분에서 관객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듯하여 숨이 멎을 뻔 했다.


남자와의 대화 후 나나의 삶은 이전과는 분명 다른 성격을 띈다. 마지막 챕터에서 고다르 감독의 목소리로 애드가 앨런 포의 소설을 읽는 장면 또한 소격 효과를 의도한 부분이다. 나나는 주체적인 삶으로의 도약을 꿈꾸지만 결국 소설에서 그림에서 최고의 완성도를 느낀 순간 죽어있는 연인을 본 화가와 같이 그녀 또한 갱단에 의해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녀의 죽음은 짧고 뭉툭하게 연출되어 더 허무하고 충격적이었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불행한 삶을 살아왔는지, 영화는 우리에게 현실은 과연 진실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곳인지 고민해 볼 여지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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