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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승민 ASM Jun 19. 2023

42. 봄 이야기 (1990)

에릭 로메르, 사계절 이야기 - 1

감독. 에릭 로메르

출연. 앤 테이세드레, 플로렌스 다렐, 위그 케스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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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초반 잔느는 어느 도시의 건물에서 나와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린다. 카메라는 차창 밖의 주변 환경을 비추며 저물어가는 겨울 나무와 새 잎을 돋우는 봄 나무를 반복해서 보여준다. 겨울에서 봄으로의 이동, 계절이 바뀌며 동식물 가리지 않고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봄의 모습을 차분히 보여주며 영화는 시작된다. <봄 이야기>는 에릭 로메르 감독의 사계절 시리즈 연작의 첫 작품으로, 봄의 아름다움과 사랑에 대한 열정을 섬세하게 담아낸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다. 특히 사람에 관한 남녀의 상반된 시각을 보여주며 느긋하고 잔잔한 리듬으로 흥미롭지만 조금은 불편한 이야기가 물 흐르듯 진행되는 특징이 있다. 이 작품에서 로메르 감독은 인간의 외로움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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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느는 어딘가 슬픔에 잠긴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도 없는 집을 정리하며 짐을 챙겨 다른 곳으로 떠난다. 나선형 구조의 계단을 내려가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깊은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다. 그녀가 향한 곳은 그녀의 다른 집으로, 지금은 사촌에게 잠시 빌려준 상태이다. 이윽고 친구 코린의 초대로 파티에 가게 되지만, 아는 사람 없이 혼자 소파에 앉아있는데, 그녀의 곁으로 나타샤가 나타난다. 나타샤 역시 파티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잔느와 동질감을 느낀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타샤는 잔느가 집이 있어도 갈 곳이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알고는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다.


나타샤의 부모님은 집 인테리어를 이유로 이혼한 상태이고, 아버지는 나타샤 또래의 애인이 있다. 나타샤는 예술가 지원 협회의 회장으로 여러가지 글을 쓰는데, 아버지의 애인인 에브가 아버지의 아이디어를 훔쳐서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일만 한다는 이유로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타샤는 반대로 아버지 또래의 애인이 있다. 나타샤는 집에 자주 오지 않는 아버지의 방에 잔느를 재운다.


다음 날, 집에 혼자 남은 잔느가 씻고 있는 도중에 나타샤의 아버지가 나타난다. 둘 사이에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는 않지만 긴장감 넘치는 연출로 묘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타샤는 잔느와 가족 별장을 방문하여 그곳에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함께 에브에 대한 적개심을 다시 한 번 드러낸다. 자신이 아끼는 목걸이가 없어져 에브를 범인으로 의심하는 나타샤를 잔느는 이해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이윽고 잔느는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지만, 나가기로 했던 사촌이 1주일 더 머물게 되면서 다시 나타샤의 집에 신세를 지게 된다. 여기서 잔느는 남자친구의 곁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모호한 이유를 대며 그를 회피한다.


목요일, 아버지가 에브와 함께 집으로 다시 돌아와서 넷은 함께 식사를 하게 된다.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며 에브와 나타샤는 서로에게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며 대립한다. 또한 별장에 갈 계획을 세우지만 에브는 가지 않겠다고 말한다. 아버지와 에브가 떠난 후 나타샤는 아버지가 잔느를 보는 눈빛에 대해 이야기하며 못마땅한 에브 보다는 잔느가 아버지와 어울린다고 털어놓지만, 잔느는 정색한다. 이 때 카메라는 잔느를 클로즈업 하여 감정을 극대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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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별장에 도착한 둘은 예상을 깨고 아버지와 함께 별장에 놀러 온 에브를 보게 된다. 음식을 준비하며 에브와 불필요한 다툼을 벌이는 나타샤가 불편했던 잔느는 에브의 편을 들기도 한다. 화난 에브는 별장을 떠나게 되고, 때마침 나타샤의 남자친구 윌리엄이 놀러와서 별장에는 아버지와 잔느만 남게 된다. 저녁이 되고, 별장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나타샤의 전화가 걸려 온다. 잔느도 별장을 떠나려 하지만 아버지는 잔느를 붙잡고는 둘은 깊은 대화를 하게 된다. 잔느는 목걸이에 대한 얘기를 꺼내며 에브에 대한 나타샤의 우려를 전하지만, 아버지는 정작 에브와 멀어지려고 하고 있었고, 나이 얘기를 하며 잔느를 꼬시지만 잔느는 완강하게 거부한다. 잔느는 남자친구와 나타샤의 아버지를 비교하며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 후 별장을 떠난다. 다음 날, 나타샤는 자신이 의도적으로 별장을 떠났다고 생각하여 화가 난 잔느에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윌리엄조차 자신을 믿어주지 않고 있는 현실에 슬퍼 뛰쳐나간다. 그 후 옷장을 정리하다가 신발 안에서 목걸이를 찾은 잔느는 그 동안의 해프닝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믿고자 한다며 울면서 나타샤에게 사과한다. 영화는 남자친구의 집으로 돌아온 잔느가 화분에 꽃을 갈아 끼우며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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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섬세하고도 객관적인 입장에서 등장인물을 예의주시한다. 로메르 감독 영화의 특성 상 인물 사이의 대화가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이 영화에서도 대화 사이 감정을 드러내거나 숨기는 잔느의 모습이 잘 드러나서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며 대화에 참여하고 있을지 고민하며 감사할 수 있어 좋았다. 또한 봄이라는 주제에 맞는 꽃과 풀내음이 가득한 미장센도 인상적이었다. 특히 별장 장면에서, 혼자 마당 테이블에서 책을 읽고 있는 잔느를 담은 장면은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다.


나타샤의 아버지는 별장에서 잔느에게 자신은 미칠듯한 사랑을 하는 뜨거운 사람이라고 어필한다. 잔느는 남자친구와 아버지를 비교하며 자신은 그런 뜨겁고 신경질적인 사랑을 선호하지 않음을 드러낸다. 어쩌면 모든 생명이 피어나는 봄이라는 따뜻한 계절과는 반대 성향인 잔느가, 마지막 장면에서 집에 새로운 꽃을 가져다 놓음으로써 나타샤와 보낸 시간 속에서 심정에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무심한 듯 변화를 주는 모습이지만 많은 의미를 담아낸 결말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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