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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브라이언 Jul 22. 2020

국경 없는 은행은 왜 필요할까

2016년 인도에서 벌어진 일, 우리가  비트코인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인도의 '가짜' 화폐개혁


2016년 11월 8일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의 인도 정부는 갑작스러운 발표를 한다. 가장 큰 화폐단위인 500 루피와 1,000 루피를 폐지할 테니 2016년 12월 30일까지 신종화폐로 교환하라는 것이다. 이는 당시 유통 중이던 인도 루피 통화 가치의 86%를 일거에 증발시키는 조치였다. 참고로 이때 인도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거래의 95% 가 현금으로 이뤄지고 있었으며, 인구의 40%는 은행계좌 조차도 없는 상태였다.


갑작스러운 조치에 따른 결과는 참혹했다. 국가 GDP의 2~4% 가 하루아침에 증발해 버린 것이다. 우선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직원들에게 월급을 주지 못하니 생산이 멈췄고, 국민들은 더 이상 식료품과 의료용품을 구입할 수 없었다. 나라 전체에서 ‘거래’가 실종되며 경제가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돈을 신권으로 교환하기 위해 은행으로 몰리는 인도 사람들


4년이 흐른 지금 놀랍게도 이 조치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제각각이다. 오히려 '잘했다'는 의견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현금을 주로 사용하던 소상공인과 농민들에게는 엄청난 혼란이 되었지만, 길게 보면 지하금융을 양성화하고 조세 기반이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모바일 결제가 활성화되는 등 긍정적인 효과도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이 인도의 경제성장률은 모디 총리가 집권한 후 1~2% 증가한 7%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한 꺼풀만 뒤집어보면 그늘이 보인다. 인도 청년들은 최악의 실업난에 신음하고 있다. 대학 졸업장이 무용지물이라며 한탄하는 공학도를 소개하는 보도가 현지에서 잇따른다고 한다. 인도의 양극화 지수는 발표할 때마다 역대 최대치를 뛰어넘고 있다. 결국 일부 부자들이 독식하는 지하금융을 일망타진하여 서민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던 모디 총리의 '가짜' 화폐개혁은, 역설적으로 부자들의 재산은 더욱 깊은 곳으로 은닉시키고 청년과 서민의 삶을 더욱 궁핍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다시 2016년 말로 돌아가 보자. 모디 총리의 화폐개혁이 발표되자 사람들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10억 명이 넘는 인구를 처리할 수 있는 금융 인프라가 애초에 없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단돈 몇만 원을 바꾸려 은행 앞에 장사진을 치기 시작했다. 수시로 고장 나는 ATM기 앞에서 줄을 서다가 허탈하게 집에 돌아가는 일도 많았다.


이때, 인도에서 거래되는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곧장 다른 나라에서 거래되는 가격 대비 무려 22%의 프리미엄까지 치솟은 비트코인 가격은, 얼마 후 인도 정부가 암호화폐 거래소들을 강제로 닫아버릴 때까지 연일 최고가를 갱신했다 (참고로 비트코인 시장에는 장 마감 시간도, 사이드 브레이크도, 상한가도 없다).


사실 비트코인의 가격이 오른 것이 아니라, 인도 루피화의 가치가 폭락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특정 국가가 통제하는 현대의 중앙 집권적 신용화폐는 이런 한계를 가지고 있다. 해당 국가가 더 이상 신뢰받지 못한다면 돈은 언제든 하루아침에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에는 2017년이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알려져 투자 광풍으로 이어졌던 비트코인은 사실상 이렇듯 인도에서 먼저 한번 강력한 소나기를 퍼부은 후 북상했다. 지금의 한국인들에게 심어진 비트코인의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겠지만, 당시 인도인들에게 비트코인은 안전 자산이었던 셈이다. 하루아침에 증발해버릴 수도 있는 나의 자산을 안전하게 보관할 수 있는 피난처, 바로 세이프 헤이븐이다.


우리나라는 상관없는 얘기?


한국인에게는 크게 체감되지 않을 수도 있으나, 한국의 법정통화인 원화는 달러나 엔화, 스위스프랑 등의 통화 대비 변동성이 큰 위험자산으로 분류된다. 그 이유는 원화의 가치가 연동된 한국 경제의 특수성 때문이다. 한국은 수출 주도 위주의 경제 구조를 지니고 있으며, 세계 경기와 무역량에 더 큰 영향을 받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이를 채찍 효과(Bullwhip effect)라고 한다.



따라서 세계 경기와 무역이 침체하거나 위협받을 경우(중국의 경제 위기, 미중 무역 갈등), 한국의 수출이 감소하거나 위협받을 경우(반도체, 자동차 수요 감소), 한국이 경제위기에 봉착할 경우(IMF, 서브프라임) 등의 상황에서 원화는 큰 가치 하락 현상이 발생한다.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반복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바로 ‘안전 자산’을 보유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안전 자산은 달러와 금이 있다. 이런 안전 자산은 원화자산의 가치가 급락할 때 상대적으로 높은 원화상 가치를 형성하여 자산 하락을 헷징 하며, 이를 통해 저평가된 원화자산을 매수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실제로 상당한 달러 자산을 보유하고 있던 이들은 IMF나 서브프라임 직후 큰 자산 증식을 이루기도 했다.


분산투자의 관점에서 건, 환차익을 위해서 건 안전 자산은 한국 투자자에게 필수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옵션이라고 할 수 있다. 더군다나 요즘은 직접 달러 뭉치나 골드바를 사서 집에 보관하지 않아도 된다. 은행과 증권사에 간접투자 상품이 많이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투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품들은 금리가 낮다. 원화 자산 하락을 헷징 하는 효과는 있지만 '돈이 일하지 않는' 투자인 셈이다. 현재 은행에서 제공하는 달러 예금이나 증권사에 있는 달러 RP는 겨우 연 2%대의 금리만 제공하고 있다.


디지털 금의 시대


그에 반해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의 디지털 자산은 수요공급의 원칙에 따라 높은 시장금리가 형성되어 있다. 앞서 소개한 인도의 화폐개혁은 단 하나의 예일뿐이다. 경제정책의 실패로, 전쟁으로, 독재정권의 폭거로 자국 통화가치가 속절없이 미끄러진 나라들은 인도 말고도 많다. 이 나라들에서 비트코인 수요는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와 레바논 등 자본규제로 외화를 손에 넣기 어려운 나라에서는 달러화를 대체할 자금 도피처로서 비트코인 구입이 줄을 잇는다고 한다.


미국은 금융과 IT 강국답게 벌써 디지털 자산을 예금으로 수취하고 이자를 지급하는 서비스들이 많이 생겨났다. 미국에 있는 대표적인 디지털 자산 은행 서비스 중 하나인 'Nexo'의 홈페이지에 접속하는 IP를 보면 대부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남미 국가들이다. 불안한 정치와 포퓰리즘으로 국가부도에 직면한 이 나라들의 국민들은 벌써 디지털 자산을 이용하여 자본 엑소더스를 감행하고 있다.


그동안 디지털 자산을 이용한 금융 서비스는 거래소가 유일했다. 증권사 HTS처럼 내가 매매하고 싶은 자산을 골라서 사고파는 행위만 할 수 있었다. 이제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고객 자산을 안전하게 보관해주고 (예금), 디지털 자산이 필요한 제삼자에게 빌려주어 (대출) 이들에게 받은 대출이자를 예금자들에게 예금이자로 지급하는 서비스들이 생겨나고 있다. 사실상 시중은행이 하는 일과 비슷하나 분권형 화폐인 디지털 자산을 다루기 때문에 decentralized finance (분권형 금융 서비스)라고 불리며, 앞글자를 따서 de-fi (디파이)라고도 부른다.


우리나라에도 필자의 회사를 비롯하여 디파이 서비스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러나 아직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 비트코인은 게임머니처럼 가상세계에만 존재하는 가짜 돈으로 인식되고 있어 그 수요가 많지 않다. 이제는 한국인들도 비트코인을 비롯한 디지털 자산을 본격적으로 공부해야 한다. 비트코인이 어떻게 '디지털 금'의 역할을 하는지 알면 자연스레 계란을 나눠 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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