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투자 경험이 긴 편이다. 대학교 1학년 겨울방학, 1년 동안 번 과외비를 모아 처음으로 주식을 매수 한 이후,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투자해 왔다. 없어도 문제 될 것 없는 소액으로만.
생활비와 적금을 제외하고 남은몇 만 원에서 몇 십만 원을 투자하여, 수익이 나면 헌금하고, 맛있는 것 사 먹고, 좋아하는 가수의콘서트장에 가기도 했다. 그중 가장 뿌듯했던 쓰임은 15년 전, 외할머니의 주택담보대출금 1,000만 원 중 500만 원을 주식 수익으로 갚아드렸던 일이었다. 하여튼 20여 년간 즐겁게 벌고 의미 있게 썼다.
물론 늘 수익이 난 것은 아니다. 학부시절 경제학, 경영학을 공부한 덕에 도움을 받긴 했으나, 사실 거의 '감'으로 투자하여 운이 좋아 벌 때도 있었지만 잃을 때도 많았다.
큰돈으로 제대로 투자하는 건 올해가 처음이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 몇 년 동안 투자에 대해 공부를 하였다. 무조건 부정적이었던 코인에 대해 알아갔고, 거래한 적 없던 채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 결과 우리 자산의 포트폴리오를 채권(미국 장기채 etf) 55 : 주식 20 : 코인 12.5 : 현금 12.5로 구성하게 되었다.
9월 중순까지는 제법 괜찮았다. 8월 초 주식이 크게 출렁일 때도 채권이 방어해 주어 오히려 자산은 증가했고, 미 중앙은행(Fed)의 기준금리 인하를 앞둔 9월 중순까지는 채권금리가 연일 떨어져(채권금리가 떨어진다=채권가격이 오른다) 계좌를 열어볼 때마다 싱글벙글하였다. 코스탈라니의 달걀이론을 떠올리며,적어도 금리가 떨어질 2년간 채권은 오르기만 할 거라고 단순하게 생각하였다.
달걀이론_현시점 B1, 채권 매수기라며요?
이론과 현실은 다르고, 시장이 늘 합리적인 것은 아니라는 진리를 잊었다. 9월 빅컷 금리인하 이후 날아갈 줄 알았던 채권가는 반대로 지속적으로 떨어졌다. 11월 0.25% 추가 금리인하에도 '트럼프 트레이딩'을 더 크게 우려하는 시장분위기에, 기준금리가 떨어지는데 채권금리는 오르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우리 채권투자금은? 말해 뭐 하나, 물렸다. ㅠㅜ
그나마 코인 수익액이 채권 손실액을 커버해 주어 다행이다. 그래도 포트폴리오상 가장 큰 비중을 둔 게 채권이라, 파란색으로 표시되는 마이너스 금액을 볼 때면 한숨이 나온다. 내년 관세정책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우려와 그로 인해 금리 인하가 더딜 거라는 전망엔 마음이 무거워진다.
"시장을 예측하지 말라했는데, 보기 좋게 틀렸네. 우리 채권 etf 어쩌지?"
나의 걱정에 남편은 대답한다.
"지금 우리가 할 것은 단 하나. 투자생각 안 날 정도로 정신없이 바쁘고 즐겁게 보내자."
시간을 두 달 전으로 돌릴 수 있다면 채권 일부라도 매도할 텐데... 가장 어리석으면서 쓸데없는 염원을 해 본다. 그러나 생각을 달리하면, 불과 두 달 전과 현재의 상황이 이렇게 달라졌듯, 앞으로 두 달 후가 어떻게 변할지 그 누구도 모른다는 점이 위로가 된다.
어쩌면 남편의 대답이 현명하다는 생각이 든다. 온 신경이 결핍에 집중되는 바람에 채움에 대한 감사가 덜해진다.당분간 주식계좌는 덜 보고 코인 움직임을 주시하며 이 시간을 바쁘고 즐겁게보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