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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Nov 28. 2024

누군가에겐 천사가 다른 누군가에겐 악마가 될 수도

거제 포로수용소를 다녀와서

거제에서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우동집 가는 길에는 ‘포로수용소’가 있다. 지나다니며 그곳을 궁금해하다 날이 추워지기 전에 다녀왔다.


6.25 전쟁 당시 북한군과 중국군 포로 17만 3천 명을 거제에서 수용한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전쟁 포로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짧은 영화를 보며 그들 입장에 대해 생각해 보기도 하고, 휴전 후 거제에서 살게 된 포로들과 그 후손의 삶에 구박과 편견은 없었을지 마음이 쓰이기도 하였다.

   

야외 관람 중 흥남 철수를 상징하는 배 모형과 동상 그리고 동상보다 더 큰 비석을 보았다.


동상은 한국전쟁 당시 흥남 철수 과정에서 반대하는 미군을 설득, 피란민 10만여 명을 배에 태워 거제로 탈출시킨 김백일 장군이었다. 동상 옆 비석은 ‘김백일친일행적단죄비’라는 글로 그가 친일파였음을 알리고 있었다.


사진출처 : 연합뉴스


포로수용소 유적공원에 김장군 동상을 세우자 시민단체 등이 친일파를 이유로 동상 철거를 주장하였고, 훗날 단죄비를 세웠단다. 결국 동상 철거 문제는 후손들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고, 현재처럼 동상과 비석이 나란히 있게 되었다고 한다.

     

김백일 장군은 누군가에겐 생명의 은인이었으나, 다른 누군가에겐 동족 탄압자였나 보다. 

     



김장군의 이야기를 듣다가, 나는 왜 전 직장의 K선배가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10년도 더 전의 일이다. 내가 R팀으로 인사 발령을 받자, 이전에 R팀에서 근무했던 남자 동기 S가 다가와 반가운 귀띔을 해주었다.

     

그 팀의 K차장님, 완전 천사야.”     


동기의 찬사로 눈에 콩깍지를 장착하고 만난 그녀였는데, 실망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K는 출근하면 함께 사는 본인 시어머니와 남편 흉을 30분 정도 늘어놓는 버릇이 있었다. 업무 시간에는 자신과 함께 일하는 여자 후배 B가 화장실만 가도 팀원들을 모아 놓고 B 험담을 심하게 했고, 팀 회식이나 야유회 날짜를 일부러 B가 참석하지 못하는 날짜로 잡는 등 B를 따돌렸다. 천사는커녕 사람으로서도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K는 B를 제외하면 팀 내 다른 사람들에겐 친절했기에 팀원들은 단체 가스라이팅이 되어갔다. K의 인성을 의심하기보단 B가 문제 있는 직원이라 받아들였다.   

  

B가 출산 휴가를 들어가자 그녀는 다음 미워할 대상이 필요했던 것 같다. 불행히도 팀 내 유일한 여자 후배인 내가 선택되었다. 그 후 약 2년은 지난 회사 생활 15~16년 중 가장 힘든 시간이 되다.

      

이번에도 그녀는 나를 제외하고 남자 직원들에겐 천사와 같은 미소로 친절하게 대했다. K의 양면성 간극이 커질수록 나는 더욱 문제 있는 직원이 되어 다.


누군가에겐 천사가 다른 누군가에겐 악마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아프게 경험했다.     




김 장군에서 시작된 생각의 칼날이 전 직장 선배를 거쳐 나를 향해 왔다.     


그럼, 나는?

난 ‘인간의 양면성’ 면에서 한 점 부끄러움이 없나?

아니, 아니. 그렇지 않다.     


오래 생각할 것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나야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라 그렇다 치자. 소위 말하는 훌륭한 사람들은 어떠했지?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교육론자였던 루소는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엉덩이를 까는 기이한 행동을 자주 했고, '비폭력' 투쟁의 대명사 간디는 질투심 때문에 아내 카스투르바를 채찍질하는 '폭력'을 휘둘렀다.


심지어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도 양면성을 보이는 예는 무수히 많다.


우리 중 그 누가 위 질문에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지난여름에 만난 전 직장 동기는, 뒤늦게 팀장으로 승진한 K와 일하며 본인이 n번째 희생양이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지간하다.

      

그녀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시기, K가 벌 받기를 바랐던 적도 있다. 그런데 어쩌면 K가 품는 미움 자체가, 그녀가 저지르는 가해이자 죗값의 형벌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래전 일이라 잊은 건지 조직을 나오며 해탈한 것인지, 나는 더 이상 K가 밉지 않다. 용서라 하기엔 거창하지만, 스스로 지옥을 만들고 벗어나지 못하는 그녀가 많이 아픈 사람이고 불쌍한 여자란 연민.     

     

보통 사람의 양면성으로 김백일 장군을 이해하며 그의 동상을 인정해야 한다 아니다를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


동족을 탄압하고 학살한 친일파 vs.

10만 명을 살린 애민 정신 투철한 장군


결론만 가지고 양쪽 의견을 좁히기에는 설명이 많이 필요하다.


장군에게 묻고 싶다. 왜 그랬던 건지.

그의 대답을 들으며 분노할 수도 있겠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겠지.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와, 나는?


난 언젠가 K선배의 진정한 선행 소식을 듣게 된다면 그녀를 용서할 것 같다. 직접 진심 어린 사과를 받을 리는 만무하고, 선행으로 악행이 덮이는 것은 아니. 하지만, 그녀도 좋은 면이 있는 사람이구나 깨달음으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질 것 같다.


어디 용서를 남 좋으라고 하는가? 나 좋자고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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