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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mebody Jan 23. 2023

‘기레기’라 부르는 이들에게

관심도 없던 이들이 욕하는 데엔 열심이다

언론을 비판하는 일은 쉽다. 한국언론은 많은 문제를 갖고 있다. 다른 선진국과 달리 모두에 인정받는 유력지가 없고 기사를 상품처럼 ‘거래’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현장기자들은 데스크의 성화에 못 이겨 저널리즘보다 광고 실적을 중요시한 지 오래다.


이들을 ‘기레기’라 통칭하며 구분 짓는 일은 ‘나’와 ‘언론’을 분리하는 사고방식이다. 기레기를 입에 달고 사는 이들은 ‘나’는 기레기들과 다른 ‘고고한 존재’라는 전제를 담고 있다. 과연 그럴까.


한국언론의 문제는 구조적이다. 모두에 사회적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대중은 네이버를 언론사라고 생각한다. 기사를 읽을 때 어떤 언론사의 기사인지 확인하지 않는다. 네이버가 만든 경쟁 구조 속에서 각 언론은 아등바등 관심받기 위해 발버둥 친다. 그렇게 자극적인 제목과 선정적인 내용으로 네이버가 시혜를 베풀 듯 나눠주는 광고비를 성수처럼 받아먹는다. 그렇게 해도 기자들의 인건비를 주면 남는 게 없다.


대중은 한국언론에 돈을 쓰지 않는다. 신문을 구독하지 않고 후원하지 않는다. 데스크가 현장기자에 요구하는 광고 실적은 언론사에겐 ‘사활’이 걸린 문제다. 특히 지역신문에 그렇다. 포털 알고리즘에 따라 쏟아지는 기사를 대중은 각자의 방식으로 ‘처리’한다. 기사를 찾아보는 이들이 ‘별종’으로 취급받는 시대다. 언론이 쓰레기라서 대중이 외면했을까. 아니면 대중이 외면해서 언론이 쓰레기가 됐을까.


언론을 비판할 수 있고 기자를 비난할 수 있다. 공적 성격이 있는 곳에는 그만한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언론 발전에 관심조차 주지 않던 자들이 ‘기레기’라고 비난하는 일에 열심인 모습을 볼 때면 기분이 나쁘다. 이들의 비판은 대부분 별로 생산적이지 않다. 비판을 위한 비판이기 때문이다. ‘기레기’라고 비난하는 그들의 손가락이 혹시 자신을 가리키고 있지는 않을지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지금의 언론은 그들과 상호작용하며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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