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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EL Mar 20. 2022

여행, 다시 리셋 가능할까요

그 당시에 행복하긴 했지. 하지만 더 성장한 나로 다시 가보고 싶어

운 좋게도 나는 20대 초반, 정말 많은 국가를 여행하며 다녔다. 다녀본 국가를 나열해보면 다음 리스트가 나온다.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이탈리아, 터키

카타르(1년 살이), 아랍 에미레이트(두바이, 아부다비)

싱가포르(교환학생)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

미국

탄자니아

어렸을 때 살았었던 남아프리카 공화국, 너무 어릴 때 가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국가들까지 하면 대략 20개 나라를 방문해보기도, 살아보기도 하였다. 참 감사한 일이다.

이런 곳에서 자랑해보지 어디가서 자랑해보나.


그런데 최근 아주 양질의 유튜브 컨텐츠까지 시청하게 되면서 각 나라의 문화와 역사, 배경, 지리/기후 환경, 주변국과의 관계 등등을 쉽게 소개받을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거기에 매주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려 읽는 습관이 생겼는데, 관련된 책들을 접하고 더 심층적인 내용을 깊게 파고 들어가곤 한다. 그러면서 너무 아쉬운 것은, 모든 것의 배경을 미리 공부하고 갔더라면 여행의 질이 아예 다른 차원으로 달라졌을텐데. 


가장 대표적인 예는 문화와 역사가 깊은 이탈리아를 방문했을 때였다.


누나와 함께 피렌체를 방문했을 때 누나는 영화 '열정과 냉정 사이'에 감정이입했고,(나는 누나에게 남자친구랑 오지 왜 나랑 왔냐고 투덜거렸다.) 나는 건물의 아름다움과 두오모의 웅장함에 매료되어 도시 구석구석을 걸었다. 그리고 소위 유명하다는 관광지만 돌아보며 사진만 열심히 찍었다.


방문했던 장소 중 한 곳이 우피치 미술관이었다. 메디치 가문이 가문의 영광으로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역작들을 모아놓은 미술관이다. 하지만 13년도에 방문했을 나는 당시 감명도 없었고 작품들의 의미도 몰랐으며, 이 작품들이 누가 왜, 어떻게 모았는지도 몰랐다. 건축학적인 요소들을 보는 눈도 없었고, 심지어 피렌체의 역사와 도시국가로서 가진 문화적 유니크함과 밀라노, 베네치아와 같은 북이탈리아 도시들간의 차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심지어 도시 간 언어도 다를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미술관 사진도 이런 사진 밖에 없다...이유도 모르고 그냥 유명하니까 간 것이 분명하다.

왜 두오모 성당을 짓는데 수백년이 걸렸을까. 두오모 앞에 왜 광장이 생겼을까. 왜 피렌체의 두오모는 둥근 돔의 형태이고 밀라노 두오모는 뾰족한 삼각형의 형태일까. 왜 피렌체 건물들의 지붕은 다 비슷한 적갈색일까. 베네치아는 어떻게 수상도시가 되었고 도시 건설 과정은 어땠을까. 이처럼 건축과 관련해서도 수많은 질문들을 던져볼 수 있는데 왜 나는 그런 질문을 답하려고 하지도, 질문하지도 않았을까.


모를 수도 있지. 알아봐야 그게 무슨 의미를 가지냐고 묻는다면, 나에게 있어서 그 '의미'라는 것이 여행을 가는 이유 전부이기 때문이다. 여행을 가는 것이 인스타그램이나 개인 소셜 계정에 자랑하기 위한 행위라면 나는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런 자랑으로 자존감을 채우는 사람도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여행을 통해 책으로만 알고 있던 지식을 가슴 깊이 현장에서 느끼고, 더 깊은 문화적 소양을 기르는 것이 훨씬 내 자존감과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데에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깨닫고 나니 이전에 갔던 여행들이 너무 아쉽게 느껴진다. 내가 방문하려는 나라와 도시에 대한 책이라도 한권 읽고 갔다면 어땠을까. 특히 알랭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이나 김영하 작가님의 ‘여행의 이유’와 같은 수필이나 여행 작가들의 책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가진 관찰과 여행에 대한 시각을 배우고,  당시 느꼈던 감정과 사건들을 생생하게 기록하기 위해 여행 중에 글을 쓰는 습관을 길렀다면? 작은 것도 질문해보고 스스로 답을 내려보는 습관을 가졌다면? 지역 사람들과  가깝게 지내고 현지인들과 소통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다면? 사진기를 내려놓고  그리는 그림이라도 그려보며 사물과 사람들을 자세하게 관찰해보았다면?


더 성장한 지금의 나로, 더 성숙한 삶에 대한 태도로 다시 가보고 싶다.

과거 나 자신의 최선을 존중하는 것과 별개로 성장에 대한 나의 욕심은 끊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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