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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EL Dec 14. 2022

누군가를 취향저격한다는 건 [작은 글쓰기 모임]

본 편지는 “작은 글쓰기 모임”의 첫 프로젝트 <끝글 잇기: 릴레이 글쓰기> 활동의 일환입니다.
[글로자, 산책요정, 온고래, 피터, DAEL, 순수]


To. 순수님 (https://m.blog.naver.com/min_hh)

    순수님, 안녕하세요? 어느새 한겨울이 되었어요. 추운 날씨에도 건강하게 지내고 계시죠? 평소에도 창 밖 풍경 바라보는 걸 좋아하는데, 오늘처럼 눈이 휘날리는 풍경이 펼쳐지는 날이면 특히나 제 마음이 풍성해집니다. 비록 전투복을 입고 제설작전을 지휘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주변에서 넉가래를 밀며 하늘에서 떨어지는 쓰레기라고 투덜거려도, 저는 눈 위를 걸을 때마다 나는 뽀득뽀득 소리와 눈 덮힌 새하얀 세상이 너무 좋아요. 내가 하는 일과 관계없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 그것이 나의 취향이고 본 모습입니다. 피터님이 제게 써주신 편지에서 저를 저답게 만들어주는 틀에 박힌 취향을 물어보셨는데, 군인 신분임에도 눈을 사랑하는 저의 지독한 감성 우선주의와 취향이 피터님의 질문에 대한 답이 되겠네요. 군대와 취향, 두 단어를 엮어보니 글로자님이 첫 편지에서 취향이 사라지는 순간을 언급하셨던 것도 기억이 나네요.


    순수님은 ‘취향저격’이라는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모 아이돌 그룹의 노래 제목이기도 한 이 말은 본인의 취향에 부합하는 대상을 이를 때 사용하는 말이지요.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감성 가득한 공간을 발견했을 때, 처음 들어간 카페에서 내려준 커피가 내 취향일 때, 연인이 선물해 준 옷이 나의 스타일과 잘 맞을 때 취향저격이라고 표현할 수 있죠. 군인 입장에서 ‘취향저격’이라는 말은 너무 잘 만든 말입니다. ‘사격’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니 ‘저격’의 과정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죠. 표적을 찾고 바람의 방향과 속도, 표적과의 거리를 고려해 신중하게 조준 하고나면, 배에 70% 정도 공기를 채운 채 숨을 참고 천천히 검지손가락으로 방아쇠를 잡아당겨 격발합니다. 이때 움켜쥐는 손에 너무 힘이 들어가서도 안됩니다. 몸을 내려치는듯한 반동, ‘펑!’ 소리와 함께 탄환은 총구를 빠져나와 음속의 배를 넘는 속도로 공기를 찢으며 표적을 향해 날아갑니다. 표적을 맞추고 나서야 참았던 숨을 몰아쉬지요.


    이 세상에 우연한 명중이 하나 없듯, 취향저격 또한 그냥 일어나는 일은 아닐겁니다. 나를 위해 취향저격 선물을 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얼마나 숨을 참고 고민했을지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어떤 공간이 너무 취향저격이라면, 그 공간을 만든 사람이 얼마나 공들여 꾸몄을지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나의 마음을 울리는 말이 있다면, 단어를 고르고 골라 써내려갔을 작가의 고뇌를 짐작해 볼 수 있지요. 커피가 나의 취향이다? 수많은 원두를 고르고, 로스팅하고, 그라인딩하고, 물의 압력과 양과 온도를 조절하며 맛과 향을 찾은 바리스타의 긴긴밤을 떠올려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순수님이 아주 우연히 길을 지나가다가 예상치 못한 취향저격을 당했다면, 누군가가 은밀하게 순수님을 기다리며 순수님의 취향을 겨냥하고 있었다는 의미일거에요.


    한발, 한발, 신중하게 사격을 즐기듯, 저는 취향저격의 장대한 서사를 온전히 경험하는 걸 좋아합니다. 나만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긴장과 행복이잖아요. 취향저격에 성공했을 때 상대방의 반응을 보며 느낄 수 있는 성취감도 너무 좋아요. 혹여 과녁을 놓쳐도 좌절하지 않아요. 상대방의 취향을 이해하고 그 매력을 알아가는 과정조차도 너무 재밌거든요. 오히려 상대방에게 ‘당신의 취향은 이것이요!’라고 설득하기도 해요. 무엇보다 상대방의 취향을 알아갈수록 저의 취향도 선명해지고 다채로워진달까요. 취향저격이 그냥 ‘저격’과 다른 점이 바로 이 부분이에요. ‘저격’은 상대를 죽이지만, ‘취향저격’은 상대와 나를 다양한 색으로 물들어가는 과정이니까요.


    얼마 전, 순수님이 쓰신 자작곡 ‘신기해’를 듣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재즈 화성을 너무 좋아하는데 순수님의 자작곡을 듣는 순간 취향저격 당했습니다. 순수님은 훌륭한 저격수이신 것 같아요. '신기해'를 들으면 들을수록 취향에 대한 순수님만의 이야기, 누군가를 취향저격해서 행복했던 이야기가 더욱 궁금해지네요. 눈 내리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마음으로 다음 글을 기다려봅니다. 행복을 백발백중하는 하루 보내시길 바라며 인사드려요. 안녕!


From. DAEL(https://brunch.co.kr/tsu01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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