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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카 May 30. 2021

스위스 융프라우요흐_코로나 시대

With Eiger Express

2021년 5월.


융프라우요흐에 다녀왔다. 사실 어릴 때 배낭여행을 할 때도, 스위스를 가끔 올 때도, 작년에 그린델발트에 갔을 때도 융프라우요흐에 올라갈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비싸기도 하고, Top of Europe'이라는 수식어로 외국사람들에게 마케팅을 영리하게 잘해서 유명세를 타는 것도 같다. 무엇보다 내 주변의 스위스 사람들 중에는 거기 가 본 사람이 없고, 갈 생각도 없는 듯하다. 


하지만, 엄마가 오셨고, 한국 관광객들에게 융프라우요흐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하니 이참에 가보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하길, 스위스 관광은 날씨가 반이 넘는다고 하는데 그 말에 완전히 동의한다. 나 역시 스위스에 살게 되면서 날씨에 대한 집착이 많아졌다. 원래 5월은 날씨가 그렇게 나쁘지 않은 편인데, 지난 3월과 4월이 봄 날씨 답지 않게 따뜻하고 햇빛이 많이 나더니 올해 5월이 되니 춥고 비가 많이 온다. 그래서 융프라우 지역에서 1주일을 머물렀는데, 햇빛이 쨍하게 났던 건 단 하루뿐이었다.


나는 흐린 날씨에 전망대에 가는 것은 돈 낭비라 생각하기 때문에, 날씨가 좋지 않다면 1인당 왕복 100 프랑(그것도 스위스 철도 반값 할인카드 적용)은 쓸 마음이 없었다. 스위스 친구들에게 이번에 융프라우요흐를 가볼까 한다고 하니, 그 비싼 걸 왜 굳이 타고 가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차라리 등산을 해서 뮈렌이나 맨리헨에 가면 융프라우를 더 잘 볼 수 있다면서. 그래서 라우터브루넨에 머물던 1주일 내내 날씨와 웹캠을 실시간으로 보면서 좋은 시기를 기다렸다.


아랫동네인 라우터브루넨에는 여전히 잔뜩 흐렸지만 웹캠으로 3400미터 전망대를 보니 믿기 어렵게도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했다. 스위스 사람들이 겨울에 아랫동네 날씨가 흐리면 산에 올라가서 푸른 하늘을 본다고 말하더니 정말이었다. 주무시는 엄마를 급하게 깨워서 융프라우 가는 8시 37분 첫 기차를 탔다. 

라우터브루넨에서 벵엔 넘어가는 길. 하늘이 흐리다. 


융프라우 가는 길은 그린델발트에서 클라이네 샤이덱으로 올라가는 기차와 라우터브루넨에서 벵엔을 거쳐 클라이네 샤이덱으로 올라가는 기차 그리고 작년 12월에 새로 개통했다는 새로운 아이거 익스프레스 곤돌라 이렇게 세 가지가 있다. 나는 라우터브루넨에 숙소를 잡았고 고령이신 엄마가 고도에 천천히 적응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라우터브루넨에서 기차를 탔다. 작년 여름에는 사람으로 꽉 찼던 기차가 올라갈 때는 탄 승객이 10명 정도밖에 없었다. 그나마 클라이네 샤이덱에서 다른 승객들은 내리고 융프라우 가는 기차를 타는 사람은 엄마와 나 그리고 꼬맹이 둘이 있는 스위스 가족 4명뿐이었다. 원래는 올라가는 풍경이 설산과 녹지 그리고 큰 나무들로 예술인데 흐린 날씨와 아직도 녹지 않고 쌓인 눈 탓에 볼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클라이네 샤이덱에서 다시 기차를 타고- 2량의 기차가 단 6명 만을 태우고 출발했다- 아이거글레쳐로 5분 정도 이동했다. 그리고 나니 융프라우요흐로 가는 기차로 환승할 수 있었고, 그린델발트에서 아이거글레쳐까지 바로 곤돌라를 타고 온 사람들과 합류했다. 

클라이네 샤이덱 가는 길. 5월인데 눈이 많이 쌓여 있었다. 


성수기 때는 좌석 예약비를 내야 할 만큼 인기라고 하더니, 평일 첫 융프라우요흐 기차는 그리 붐비지는 않았다. 25분 정도 긴 터널을 지나니- 사실 나는 바깥 풍경을 볼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유로스타처럼 검은 터널만 지나갔다- 융프라우요흐에 도착했다. 첫 차여서 우리가 도착하니 전망대도 막 문을 여는 듯했다. 

융프라우요흐는 전망대만 있는 게 아니라 안에 영상물이나 얼음 조각이 있는 얼음터널, 아기자기한 전시물도 있어서 혹여 날씨가 안 좋아서 설산을 볼 수 없다고 해도 사람들이 비싼 돈을 올라오게 만들고 내가 'Top of Europe'에 왔다는 인증숏을 찍을 수 있는 무궁무진한 기회가 있었다. 왜 이 곳이 특히 아시아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지 이해가 되었다. 


전망대로 나가니 구름 한 점 없는 눈부신 새파란 하늘이 보였고, 설산은 웅장한 위용을 자랑했다. 잘 아는 풍경이지만 그래도 압도적이었다. 밖의 날씨가 영하 10도나 되어서 오래 있을 수는 없었지만, 이렇게 쉽게, 편하게 단숨에 3400미터까지 올라와서 아이거, 묀히, 융프라우를 본다는 게 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또 관광객들이 많은 성수기에는 줄 서서 기다려 들어간다던 전시관 그리고 전망대 역시 사람이 거의 없어서 무서울 정도로 한산하기만 했다. 사람들이 많이 이야기하는 신라면 컵라면 역시, 12프랑 (만 오천 원 정도) 한다는 가격표는 있었지만 가게는 문을 닫았다. 


2시간 정도 천천히 여유 있게 구경을 하고, 내려갈 때는 그렇게 광고를 많이 하던 아이거 익스프레스 곤돌라를 타 보기로 했다. 실제로 지금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곤돌라를 타고 오고 가는 듯했다. 곤돌라는 아이거글레처에서 그린델발트까지 20분 만에 한 번에 내려가니, 기차를 2번 갈아타고 1시간 넘게 걸리는 기존 루트에 비해서는 확실히 시간 절약이 되고, 풍경을 파노라마 롤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 듯했다. (가격은 기차와 거의 비슷하다. 할인받아서 편도 46프랑 정도)


30인승 곤돌라이고 좌석번호까지 적혀 있었지만, 사람이 없어서 그 큰 곤돌라는 5명이 타고 내려왔다. 조금 더 기다리면 엄마와 둘이 타고 내려올 수도 있지만 오히려 그건 좀 무서웠다. 속도가 정말 빠르고 기차와는 다른 풍경을 볼 수 있어서 좋기는 했다. 시간적 여유가 없는 관광객들에게는 꽤나 매력적인 옵션이 될 것 같다. 나는 그래도 덜덜거리면서 천천히 올라가는 톱니바퀴 기차를 더 좋아하지만 말이다. 

작년에 맨리헨 갈 때만 해도 공사판이었던 그린델발트 터미널은 지금 새롭게 단장을 해서 상점과 식당도 입점한 근사한 터미널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관광객들을 기대하고 이렇게 막대한 투자를 했는데, 코로나 때문에 거의 개점휴업 상태니 좀 안타깝기도 했다. 


절대 갈 일이 없을 거라던 융프라우요흐도 코로나 덕분에 또 엄마 덕분에 가보게 되고, 조용하고 여유 있게 둘러볼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산의 위용만 본다면 나는 여전히 마터호른이 더 좋지만 그래도 한 번은 가 볼만한 곳인 듯하다. 하지만, 아름다운 설산을 보는 게 목적이라면 비싼 돈을 들여 융프라요흐를 가기보다는 뮈렌이나 맨리헨 정도에서 보는 게 풍경을 감상하면서 걸을 수 있어서 더 나은 선택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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