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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 Jun 08. 2024

AND THE SPRING COMES

<입춘 立春>, 슬픔이여 안녕! Adieu, Tristesse!

[立春, And the Spring Comes]


당신에게 봄은 왔는가?

누군가가 묻는다면 대답은 하나.

Not yet.

어느 순간부터 아직은.


굳어진 빗장을 열고 달리고 싶었다.

한바탕 쏟아지는 빗줄기에 얼었던 마음을 녹이고 싶었다.

푸른 새벽, 녹슨 창가의 틀 위로 덩그러니 놓인 노란 파인애플 두 덩이와

물감 묻힌 손을 멋들어지게 부리는 청년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외로운 나는

신도 외면했던 고독을 되씹던 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로

"육체를 탐하는 편이 좋다"라고 말을 할 거야.    


외관은 진실을 외면한다.

우리는 어떤 모습을 사랑하는가?

칼을 댄 외모에 서슴없이 아름답다고 찬사를 보내는 사람들.

카랑카랑한 불을 꺼버리면

남는 건 걸러낼 수도 없는 먼지 낀 목소리지만

잠도 많은 우리는 짧은 백야를 갈망하고

빛이 부리는 사물의 농간에 반하고 만다.


숭상하는 정신은 없으되 숭배하는 육체는 있다.

당신의 일그러진 얼굴은

아름다운 목소리가 하잘 것이 없다며 잔인한 일침을 가하고

오늘도 피로한 눈을 달래며 말을 아끼는 사람은 참 드물었다고 말하리라.


현실에 깃댄 이기적인 사랑과

한 번도 사랑에 다가가지 못한 가면의 여자.

그 공식을 한 번이라도 벗어난 적이 있었던가?

동정에 의한 헌신은 건조한 현실에서

배반과 고통이라는 고단한 반복을 요구한다.

넝마가 된 마음이 울리는 소리를 듣는다면

세상의 무엇이 되겠다는 거대한 목표보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그대와 가벼운 생을 택하겠지.


그래서 봄이 오면,

잔인한 겨울이 지나고 내 마음에 봄이 오면,

거절만이 존재했던 날들에 불렀던 노래를

힘차게 불러보리라.


"슬픔이여, 안녕!"

"Adieu, Tristesse!"


2008. 6. 22. SUNDAY



단조로운 화면 속에 외젠 이오네스크(Eugène Ionesco)의 《대머리 여가수 La Cantatrice chauve에서 보일 법한 어색한 부조리 희곡이 불모(不毛)스럽게 들어있던 영화 <입춘 立春>은 "과연 봄이 왔을까?"의 의문사와 아니면, "정말 봄이 올까?"의 자조 어린 한숨이 뒤섞인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다. 회색빛 중국 내부의 이야기는 넓고 거친 땅 속의 비밀을 찾기도 힘들게 어둡고 무겁다. 잔인한 현실과 웃음 진 눈물도 어색하다.



북경대학교 백주년기념관에서 봤던 <입춘>. 진지한 시선이 무색하게 중국의 영양가 있는 젊은이들은 화면 속의 영상을 바라보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키득거렸다.


- 바보. 원래 인생은 말도 안 되는 싸구려 희극 같은 거라고!




중국에서 지내는 생활은 전환을 모색하는 시간 속에서 어린아이처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배움에 젖어들게 만들었다. 의식의 산책과도 같던 시간은 변화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당면한 압박을 가해왔지만, 온종일 시간이 나의 것이라는 흥분을 안겨주었다. 스쳐 지나가듯 흘러가는 사람들 사이로 누군가를 대변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이 밀려들었다. 스스로에 대해 어떤 설명도 요구되지 않는 공간 속에서 마음껏 방황한다는 자체는 설렘이었다.


사합원을 펼쳐놓은 듯한 커다란 정원과 표면이 반짝이는 호수, 사색이 흐르는 거리,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교실, 문화적 향기가 가득한 널찍한 학교는 고즈넉한 옛 도시를 거니는 기분을 선사했다. 기숙사에 살면서도 시간을 아끼기 위해 학교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과 달리, 학교까지 왕복 매일 3-4시간이 되는 거리를 버스를 타고 갔다. 다들 먼 곳에 사는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당시 나는 여행자의 신분으로서 학교 가는 것도 여행이었다.


북경대학교 백주년기념관(北京大学百周年纪念讲堂 | 북경대학교백주년기념강당)에서는 매주 다양한 문화예술공연 있었다. 최신 영화를 틀어주거나, 전통 경극과 연주회, 무용극이나 전통극같은 참신하고 신선한 프로그램학생할인을 받아 저렴한 가격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밤에는 집에서 옌징맥주(燕京啤酒)에 오향으로 볶은 땅콩이나 매운 고추기름 땅콩을 먹으며 보고 싶은 영화 CD를 틀었다. 주중북경한국문화원에서 빌려온 책들도 간간히 읽었다. 새로운 거리를 정복해 보겠다고 북경 지도 하나 들고 모르는 길을 걸어 다녔다.


중국에서 살아보니, 한국보다는 사회관계정립 및 경제적인 실행면에서 실용적인 인프라가 풍부하다. 영미권만이 아니라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남미에서 새로운 시장을 꿈꾸는 기업이라면 기본적으로 생산처와 판매처로 중국을 염두에 둔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도 공들여서 중국을 가듯이 미국과 중국의 양강체제로 분리된 현대의 사회에서 중국은 필수로 이해해야 하는 나라가 되었다. 각국에 뿌려져 있던 엘리트 화교들도 다시 부모님의 나라로 기본을 배우러 왔다.


세계 대학랭킹(Quacquarelli Symonds)에서 한참 순위권에 밀려있는 학벌주의 한국, 스카이(SKY)에서도 하버드나 예일, 스탠퍼드, 옥스퍼드, MIT에서 온 최정예 외국 학생들은 보기 어렵다. 같은 동양권이어도 각 나라에서 내노라하는 공붓벌레들이 모인 유치원 같던 배움터는 다양한 생각을 제한 없이 펼치도록 만들어주었다. 삶의 시작점을 달리 보게 한 그곳에서 지식적인 것이야 언제든지 손을 뻗어 섭취할 수 있는 비타민과 같지만, 경험이 주는 연륜이나 사물에 대한 통찰은 평생을 공들여 쌓아 가야 할 사고 확장의 영역임을 깨닫게 됐다.


중국행에서 상해와 북경을 놓고 북경으로 행로를 정한 것은 포인트를 짚어내는 전력적 사고의 입장에서 결괏값이 어떻게 되든 간에 어디서든 중심을 공략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생각 때문일 것이다. 현재 나의 삶에서 유용한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삶에 대한 이해가 깊고 사상 심도가 있 철학적 사고의 의외성에 주목하게 된다. 지식적인 태도가 갖춰진 서양문화권 사람들이 아니면 일반인에게서 발견하지 못하는 치열한 삶의 쟁점이 일상의 평범함 속에 놓여있다는 점은 중국에 대한 호기심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인간관계상 끈적이지 않은 곳에서 삶에 대한 다양한 성찰을 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시간 가는 줄 모르겠다.


무릇 인생에서의 탐구란 스스로 관심 있는 분야를 연구할 때가 즐거운 동력을 가져오며 부담이 없다. 사계절이 깃들여진 삶의 한 자락에 앉아서 지난날을 돌아보면 형용하기 어려운 기분이 든다. 어두운 동굴을 통과했다는 기분이 들 때-어쩌면 그 안에 있을지 모르지만, 계절이 지나쳐갔거나 아직 오지 않았아도 기다릴 맛이 난다.  언젠가 마주칠 봄을 기다릴 수 있고 봄이 오기까지 기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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