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을 분해하고 결합하는 해체주의는 느슨함을 용납하지 않는 현대인들에게 배척당할 운명인가 보다. 그렇다면, 밀집을 추구하는 혼동의 세상에서 복잡하게 엉킨 매듭을 풀 것은 일탈로 초대하는 新초현실주의인 걸까. 지난달과 이번달. 옷을 만들 일은 없지만 습관처럼 2005 S/S 4대 컬렉션에 시선을 박았다. 절제된 화려함으로 행진하는 명품의 전시장. 차세대 디자이너들의 실험장으로 변한 캣워크. 사적인 일이 진행되면서 옷을 보는 눈이 바뀌어 버렸다. 구매욕뿐만이 아니라 제작 욕구도 상실되고 책을 보듯 옷을 읽고 있다.
따분한 입맛을 건드린 것은 파리 컬렉션(Paris Collection)의 준 타카하시. 취향과는 한참 거리를 보이는 그의 옷은 불가사리 한 영상을 접목시킨 흥미로운 장치가 얽혀있었다. 늘어진 가시덩굴이 산발한 페인트로 솎아져 모델의 몸에 정상적인 피팅조차 거부한 난해함이 얀 슈반크마예르(Jan Švankmajer)에게 바치는 오마주라니, 파리의 허용은 어디까지일까? 실용적이고 미적인 밀란(Milan)이 마음에 들지만, 다양한 작업을 결합하는 구성원까지 포용하는 파리(Paris)는 골난 시선도 없을 테니 한동안 거주지로 선택하여 머물러봐도 좋겠다.
동화적 상상력의 도구로 사용되는 애니메이션 속에 질겁하도록 무한한 상상을 펼치는 얀은 진흙의 뭉개짐과 병따개의 얽힘, 각종 생활 도구들의 난투를 인형의 세계에 접목시킴으로써 다단계적인 방식으로 인간성을 유린해 온 사회를 질퍽한 강도로 뭉개 버리는 방식을 취한다. 상실된 자아와 소통이 두절된 거짓의 관계, 구조적으로 상대방의 인정을 탈취해 온 병폐만이 아니라 타인을 정히 인정하지 않은 채, 자신도 놓아버리고 매몰되는 사회에 박혀버린 사람들 또한 지적한다.
동구권의 냉혈하고 시린 바람 때문인지 서유럽 애니메이션과는 확실히 작업적인 방식이나 표현구도가 다르다. 다양한 토질의 역동을 질겁하게 만드는 기이한 구토감은 번들대는 점토가 아니고선 힘들 것이다. 진시황의 진흙 군단처럼 복종의 서열 안에서 하나의 특질로 몰개성화되는 현대인의 비극이 대중 미디어와 군집화된 문화 구획 내에서 진행되어 왔음을 말해주는 작품들을 보며 바둥거리는 발악만 크지 고정된 핀셋의 역할을 벗어날 수 없는 스스로의 모습에 대해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잘못된 원인을 알고 있지만 쉽게 단독으로 처리할 수 없는 것은 혼자에게만 소속되어 있지 않은 복잡한 인간관계 특성인가? 아님, 분열된 조직 속으로 흡수되어 버린 천형의 틀 때문인가?
떠도는 맨발의 달림과 다를 바 없는 되돌이표 생활이다. 얀의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으니 돌림판이나 다름없는 공간에서 진정한 소통은 없단 생각이 든다. 스스로의 것이 없다면 말이다. 무엇이 자신의 진정한 배경이 되는지를 잊은 이들이 많다. 그렇다고 해서 자각만이 최선은 아닐 텐데, 밀려오는 생각들을 어떻게 그려볼까? 의식은 정착에서 해체로 넘어가는 가운데 몸은 떠돌지 못하고 고정되어 있으니 모순된 사실만 절감할 뿐, 상념은 어둠을 향하고 해야 할 것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많은 것을 빼앗기고 또 찾기 위해 몸부림을 치면서 삶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던 한 해, 끝나지 않을 사건들 때문에 푸석한 읊조림의 틀은 내년에도 반복되겠지만 뒤틀린 심사라도 덜어낼 안주거리를 찾아봐야겠다. 푸성귀를 씹어먹은 속은 어둠의 자식에게 귀속했는지 불편스럽도록 여간 지저분하지 않다.
2004. 12.31. FRIDAY
시간이 흐르고 다시 제작에 몰두하면서 바라보는 전시용이 아닌 실용적인 대상에 집중하게 되었다. 쓸모 있고 가치 있는 작업물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사물의 멋은 기본이고 그 내용물을 담는 의미와 용도에 대해 고민해 봤을 것이다. 요즘 직업적 포지션은 전방위 제작자이다. 상상을 구체화시키면서 사물의 형태와 쓰임에 대해 연구하고 실행하는 사람인 프로듀서는 계획이 가득한 디자이너보다 포괄적인 실행을 요구한다. 글이 필요하면 글을 쓰고 이미지를 만들어야 하면 영상을 찍고 그림을 그려야 하면 그림을 그리고 옷을 만들어야 하면 옷을 만들고 회계가 필요할 땐 숫자를 셈하고 기획이 필요하면 설계를 하고 영업이 필요하면 몸으로 뛰고 멀리 가야 하면 운전을 하고 배고플 땐 밥 한 끼를 만들어낸다. 계속적으로 제작 바퀴가 회전할 수 있도록 금전 감각을 유지해서 제작 중단이 없도록 조절하는 통합 능력과 시의를 가리는 추진력이 중요하다. 직업 뒤에 붙는 직함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 만드는 일이 나의 본업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