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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 아저씨 Sep 27. 2023

도시(Urban) 남으로 변신

옷이 날개?


"자(나를 지칭)좋은 옷을 입어도 티가 안 나는데 질부는 뭘 입어도 테가 난다."


이미 세상을 떠나신 숙모님이 어느 날 느닷없이 나와 아내가 있는 자리에서 말씀하셨다.

결혼하고 몇 해 지난 후이니 지금부터 30년 전쯤으로 기억된다.

직계 가족 외에 다른 사람을 칭찬하는 것에 인색하셨던 분이 면전에서 갑자기 그런 말을 해서 놀랍기도 하고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아내에 대한 칭찬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과히 나쁘지  않았고 오히려 어깨가 으쓱했다.

그리고 나의 외모나 패션에 대해서는 스스로 Rural 하다고 쿨하게 인정하고 살았니까!!!.


시골남~변신 전


사람이 외적으로 멋스럽게 보이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본이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 조건은

몸매의 비율, 즉 한마디로 팔등신에 가까워야 한다.

거기에 더해 키까지 적당히 크면 금상첨화다.

잘 생기기로 소문난 연예인들을 직접 보면 얼굴은 차치하고 몸매의 비율이 좋다.

생각보다 키가 작은 연예인도 몸매비율이 좋아서 어떤 패션이라도 무난히 소화를 해 낸다.

물론 패션코디들이 연예인 개개인의 특성에 맞게 옷이나 신발, 헤어스타일을  잘 조합하겠지만 기본적인 뼈대, 즉 몸의 비율이 멋짐의 기본이다.


두 번째 조건은 피부.

피부미인이라는 말이 있듯이 좋은 피부를 가진 사람은 어디서든 돋 보인다.

사실 피부상태의 최고봉은 아기들 피부라고 할 수 있다.

맑고 뽀얀 아기피부.

어쩌면 투명한 한 것 같기도 하고 보드랍고 탱글탱글한 피부의 느낌은 세상의 어떤 감촉과도 비교할 수가 없다.

그리고 피부의 향은 어떠한가?

뭘 바르지 않아도 아기들은 몸 자체에 좋은 향기를 간직하고 있다.

모든 아기들이 귀엽고 예쁜 것은 그들만이 가질 수 있는 피부와 향기가 단연 으뜸이다.

그래서 고 티 없는 산소 같은 피부를 간직하기 위해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비용과 시간을 투자해 피부를 가꾼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수록 아무리 돈을 들여도 그 한계는 누구에게나 다가온다.


세 번째는 이목구비.

몸매 비율이 좋아 100미터 전방 미남, 미녀라 해도 가까이서 볼 때 얼굴의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조화가 잘 되어야 한다.

요즘은 개성을 강조하는 시대이니 인물평가에는 호불호가 엇갈리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사람에 대한 첫인상은 얼굴위주로 평가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예쁘다, 매력 있다, 못 생겼다, 착하다, 심지어 징그럽다 등 사람들에 대한 첫인상은 모두 얼굴 모습에서 나온다.


네 번째는 패션.

몸매와 피부가 좋고 얼굴이 예쁜 사람은 사실 어떤 패션을 해도 어울린다.

그렇지만 천부적으로 위의 세 가지 조건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들은 몸에 걸쳐지는 의상과 액세서리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그것이 전문적인 의상디자이너와 코디가 필요한 이유다.

때와 상황에 따른 적절한 의상선택은 그 사람의 이미지와 분위기를 확 바꿔준다.


마지막으로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

어쩌면 인공적인 멋짐을 만들어 내는 첫 단추다.

5개월 전 아들 결혼식날 아침, 헤어 스타일리스트가 집으로 왔다.

아내, 장모님 그리고 나 순서대로 메이크업과 머리 손질을 했다.

지금까지 딱 두 번 전문가로부터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 케어를 받아 봤다.

딸과 아들  결혼식 때.

33년 전 내가 결혼할 때도 메이크업 제의를 받았지만  당시만 해도 남자가 화장을 한다는 것이 내게는 무척 생소한 것으로 느껴졌다.

그 덕에 결혼사진에는 얼굴에 여드름이 잔뜩 난 송골매의 배 모 씨를 닮은 내가 있다.



결혼 당시 메이크업을 안 한 것이 내내 후회되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 이후 딸 결혼식에 처음으로 메이크업과 머리손질을 했다.

좀 어색한 기분은 들었지만 사진에 찍힌 내 모습은 만족, 그 이상이었다.

전문가의 손길이 나의 스타일을 도시남자로 탄생시킨 것이다.

이전에도 항상 나의 두상과 머릿결에 불만을 항상 갖고 있었다.

짧게 깎으면 머리카락이 뜨고 길면 떡 지듯이 가라앉는 머릿결이 싫었다.

파마도 해 봤지만 그다지 만족스럽지 않았고 관리하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헤어숍에서 디자이너가 커트를 한 후에도 늘 머리카락을 말리는 것으로 끝이었다.

"왁스나 젤리를 발라 헤어스타일을 만들어 볼까?" 생각을 해 보기는 했었다.

그렇지만 직업상 늘 안전모를 써야 했고 특히 땀이 많이 나는 체질이라 머리카락에 뭔가를 바른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중견 전문건설업체 대표이자 절친한 후배가 "형님 머리카락을 넘기고 이마를 드러내고 다니세요."

라고 조언을 해 주었다.

그러면 훨씬 멋있고 자신감도 있어 보일 거라는 것이었다.

솔깃하긴 했지만 반평생을 고수해 온 헤어스타일을 지금에 와서 바꾼다는 것이 쑥스럽고 왠지 자존심이 상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더구나 머리손질을 위해서 왁스. 스프레이, 빗 그리고 드라이기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너무 불편할 것으로 느껴졌다.


해 볼까? 말까?를 고민하던 중 한 번은 단골미용실에서 이발을 마친 후 헤어 디자이너가 스프레이를 뿌리고 머리손질을 하는 것을 그냥 내버려 뒀다.

"그냥 말려만 주세요!"란 말은 저 멀리 내 버린 채.

전문가의 손길로 스타일링을 한 머리가 처음에 어색하긴 했지만 싫진 않았다.

그 이후 아내의 도움을 얻어 집에서 스스로 머리손질을 시도했고 조금씩 자신감을 얻기 시작했다.

그 후 미용실에 다녀온 아내가 내게 이야기를 했다.


"미용실 디자이너가 요즘 당신 머리 손질을 너무 잘한데!"


그 한마디가 반평생을 착한 머리, 즉 직모스타일로 살아온 나를 세련(?) 스타일, 머리카락을 올리고 이마가 훤히 보이는 스타일로 바뀌게 했다.


50대가 넘어서 드디어 시골(rural) 남에서 도시(urban) 남으로 변신을  한 것이다.


도시남 1. ~ 변신 후


이제는 어딜 가든 머리손질 도구, 왁스나 스프레이 그리고  롤빗은 필수품이 되었다.


멋짐의 천부적인 조건들을 타고나진 못했지만 머리스타일 변신 하나로 왠지 멋있어 보이는 것은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겠다.


도시남.2

도시남으로의 변신에 단초를 제공해 준 후배님께 진심으로 감사한 심정이다.


내게는 옷이 아니라 헤어스타일이 날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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