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기를 10년 넘게 써 온 사람이다. 일요일이면 교회에 가서 다이어리를 펴놓고 한 주의 계획을 정리하고 기도로 준비하던 사람이란말이다. 그런 내가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예방접종을 놓쳐버렸다.
엄마, 나 어떡해
첫 예방접종은 B형간염 2차였다. 아직도 그날이 생생하다. 그 날은 아이가 30일 되는 날이었고 조리원 퇴소 후 첫 외출이었다. 한겨울이었기 때문에 아기가 찬바람을 맞지않도록 온 가족이 다 뛰어나와 발을 동동굴렀다. 애타는 그 정성이 무색하게도 아이는 새벽내내 접종열을 앓았다. 비명에 가까운 그 울음에 나도 끅끅대며 아이를 끌어안고 울었다. 호되게 치룬 첫 예방접종이었다.
그리고 폐렴구균 접종차례를 맞이했다. 엄마들 사이에서 공포의 폐구균이라고 불릴만큼 접종열이 잦고 고되다고 소문이 자자했다. 나는 딴에 머리를 쓴답시고 최대한 늦게 가자는 전략을 썼다. 하루라도 더 크면 아기가 잘 이겨낼 수 있을것만 같았다. 그 전략이 통했는지 결론적으로 아이는 공포의 폐구균을 해열제 없이 이겨냈다.
안중에도 없던 문제가 있다는걸 소아과 접수데스크에서 알았다.
예방접종을 못한다구요?
어머니, 날짜가 지나서 해드리고 싶어도 못해드려요
보통 폐구균하고 같이 시작하는 접종이 있다. 필수가 아니기 때문에 국가지원이 안되고 주사맞으라고 문자도 안온다. 그래도 어린이집 입소시에 접종여부를 제출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서 필수접종이나 다름없는 접종, 로타바이러스다. 2회 혹은 3회 실시해야하는데 14주 6일이 지나서 접종하면 효과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날짜가 지나면 접종을 안해준다. 나는 오늘이 15주가 되는 날 인 줄 모르고 병원에 간거다.
>너 애기 주수 몰라?
씻지도 못하고 잠도 못자고 사는데 그걸 어떻게 기억해.
>너는 애엄마 맞냐?
자초지종을 들은 친정엄마가 경멸의 눈빛으로 나를 두드려팼다. 폐구균 접종열을 피해보겠다고 잔머리를 쓰다가 초가삼간을 다 태워먹게 생겼다.
>필수접종도 아니구요. 일부러 안하시는 어머님들도 많으세요. 선택이죠 선택. 일단 오늘은 폐구균만 맞으실게요.
머리가 하얘진 나는 똑부러지는 간호사선생님의 말을 듣고 어느정도 설득이 됐다. '그래 선택이라잖아 안하는 부모들도 많다잖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쇼파에 앉았는데 아무래도 이건 아닌거 같다는 느낌이 명치부터 치고 올라왔다. 안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하늘과 땅차이었다. 나는 온동네 소아과에 전화를 돌리기시작했다. 그 시각 오후3시였다.
아기가 15준데 혹시 접종 안될까요?
젖동냥을 하는 기분이었다.내 말이 끝나면 그게 무슨 소린지 이해가 안된다는 듯한 잠깐의 침묵이 돌아왔다. 너무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땅으로 푹 꺼져버리고 싶었다. 대부분 안된다며 전화를 끊었다.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이렇게 중요한 것도 못챙기는 멍청한 엄마라서 미안해."주저앉아 엉엉 울고싶었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한군데라도 더 전화해봐야했다.
어머니 애기 생일이 언제라구요?
더 전화해볼 수 있는곳이 두군데 정도 남았을때였다. 나는 간호사님께 아기 생일을 말해드렸다. "어머니 오늘 15주가 아니고 14주6일 인데요?"나오려던 눈물이 쏙들어갔다. 오늘까지니까 지금 당장 오시라는 그말에 애를 들쳐업고 뛰어나갔다.
그날밤 나는 자책과 반성의 시간을 보내느라 잠들 수 없었다. 그리고 달력에 남은 접종종류와 날짜를 헤아려 표시했다. 아주 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