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궁금해서 만난 #1 흑심 (땅별 메들리)
‘브랜드는 어떻게 팬을 만들까?’
최근 가장 많이 하는 고민이다. 활동하는 유저의 성격이 확연히 다른 두 크라우드 펀딩 플랫폼에서 각각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 질문은 더 깊어졌다. 그래서 우리가 팬인 브랜드에 물어보기로 했다. ‘우리가 궁금해서’ 시리즈 첫 시작은 연필로 팬들과 소통하는 브랜드 ‘흑심’과 함께했다.
*흑심의 광고에 돈 나갈까, 클릭 한 번에도 고민하는 그런 팬이다. 우리가. 핳. :)
“잊혀가는 연필을 모으고, 소개해주는 브랜드 흑심입니다.”
리빙 디자인 페어에서 흑심을 처음 만났다. 심플한 부스들 사이에서 목재로 짠 연필 진열장을 가득 채운 연필이 눈길을 끄는 부스였다. 처음엔 연륜 있는 수집가의 컬렉션이라 생각해 선뜻 다가가기 어려웠는데, 이후 젊은 두 대표님을 보고 갑자기 친근하게 느껴졌다. 반적 매력이랄까. 이후 꾸준히 디자인 페어와 SNS를 통해 소식을 접하며, 자연스럽게 지인들에게 꼭 선물하는 브랜드 중 하나가 되었다. 정돈된 소개만큼 그 안에 브랜드 흑심의 에너지가 가득 담겼다. 연필 그 자체!
*처음엔 소품이나 파우치를 만들거나 문구를 모으는 것으로 시작했다. 흑심은 연필 외에도 좀 더 열려있다.
“처음에 콜렉팅으로 시작하신 뒤 숍을 해야겠다고 생각하신 이유가 있으신가요?”
“우연이긴 한데, 저희가 처음 시작한 건 구로 구청에서 청년을 대상으로 창업 공간(가게)를 지원해 주셔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작은 공간이라 작은 제품 위주로 채워야 했고, 연필이 가장 적합해서 그 위주로 진열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겠네요! 아, 그리고 처음에는 매장에 계속 있을 수 없어서 문 앞에서 무전기로 저희한테 연락을 주시면, 저희가 가서 열어 드리고 그때서야 음악도 좀 틀고, 인사드리는 걸로 했었습니다! 딱 4개월 정도만 있어서, 아시는 분들은 많이 안 계실 거예요. :)”
“그럼 그 당시에 오셨던 분들이 이번 매장에도 오시고 하셨나요?!”
“편지도 써주시고, 개인 소장하시던 연필 패키지도 많이 선물해 주셨어요ㅠ”
우연적이라고 간주되는 것은 필연성이 감추어져 있는 형식이다.
-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엥겔스
흑심과 브랜드 그리고 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 중 하나는 ‘우연’이다. 브랜드에 대한 두 대표님의 태도를 가장 잘 표현해주는 단어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그 우연이 만들어지기까지 이들의 꾸준한 노력이 아직까지 무전기를 기억해주시는 팬분과 지금의 흑심을 만들지 않았을까. 연필의 스토리를 온전히 설명할 수 있기 전까지는 팔지 않고, 매장의 목재 가구를 공방 선생님과 함께 만들어 사용하는 이들에게 ‘우연’은 브랜드에 대한 겸손한 태도이자 팬에 대한 감사일 것이다.
“어떻게 연필을 가져오시고, 관련 상품을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시나요?”
“되게 오래된 문방구에 가서 보물 찾기처럼 찾는 거죠! 다만, 지금은 이미 많이 털렸을 거예요ㅠ 최근 근처 문방구에 갔었는데, ‘왕자 파스’ 제품을 공수했습니다! :) 이렇게 국내에서는 진짜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연필 덕후가 해외에는 더 많아서, 해외에서는 더 치열해요! 또, 연필을 고를 때는 오래된 연필을 선호하고, 단종되거나 없어진 브랜드를 고르되 사용할 수 있는 정도의 퀄리티를 꼭 체크합니다.”
빈티지라고 허투루 고르는 법이 없다. 연필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그 에너지에 홀려서 우리 집에 빈티지 연필이 있었다면 꼭 드렸을 것 같다. 이래서 팬이 생기나 보다. 경매에서 가져오신 제품도 보여주셨는데, 제품을 제조하는 우리와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라 신선했다. 경매 방법이 너무 궁금해서 물어봤으나 비밀인 듯하다. :) 우리 제품도 경매에서 팔릴 수 있는 클래식이 될 수 있을까.
“연필 덕후분들께서 흑심이 생겼을 때, 엄청 반갑게 생각해 주셨겠어요!? 흑심은 어떤 분들이 오시나요?”
“저희도 이렇게 좋아해 주실지 몰랐어요. 10대부터 60대분들까지 찾아오시는 걸 보면, 특정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매장에 와서 연필을 사게 만드는 흑심이 신경 쓰는 포인트는 어떤 건가요?”
“저희가 가장 노력하는 부분은 숨겨진 스토리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정보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 브랜드 로고의 미세한 변화에 따라 생산 시기를 추정하는 경우도 있고, 전쟁처럼 특정 시기에 나오는 연필의 특징에서 스토리를 찾아내 연구하고 알려 드릴 수 있는 스토리로 만드는 것에 많은 에너지를 쏟습니다!”
나이를 가리지 않는 아이템이 부럽기도 했고, 60대 손님의 방문은 놀랍기도 했다. 간판도 없는 3층 매장에 이렇게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것은 SNS를 통해서 혹은 연필을 구매할 때마다 두 대표님이 들려주는 연필 이야기가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연필의 형태와 디테일의 차이에 대한 이야기, 그 유래 등의 이야기는 묘한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는데, 연필도 휴대용이 따로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걸 안 살 수 있을까.
빈티지 연필은 한 자루가 일반 연필에 비해 비싼 편인데, 매장에 찾아주시는 분들께서 이 부분에 아쉬움이 없도록 연필에 담긴 이야기를 꼭 해드린다고 하셨다. 우리 제품도 가격이 있는 편이라 구매해 주시는 분들이 어떻게 아쉬움이 없을지 고민하는데, 두 대표님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만 알고 있는 제품의 이야기(과정)을 전달하는 것도 확실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더 해볼 수 있었다. 마침 공간을 통해 우리 제품을 보여드리려고 준비 중인데, 제품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도 전달될 수 있는 것에 신경 써야지!
두 대표님의 손길이 닿은 공간, 제품 그리고 팬을 생각해 고민하고 준비한 이야기의 조화가 연필로 팬을 만든 방법일 것이지 싶다.
*지금은 입간판과 창문 스티커 간판이 생겼다!
“흑심을 서 있게 하는 심은 무엇인가요? (나름 라임)”
“일단은 연필, 저희도 아직 모으고 싶은 연필이 많아요. 좀 더 모아서 보여 드리고 싶은 자랑! 저희도 아직 낯선 브랜드도 많고, 매장에 혼자 오셔서 오래 계시는 분들도 많은데, 앞으로 1시간을 계셔도 계속 새로움을 발견하실 수 있도록 많은 애장품으로 공간이 채워졌으면 좋겠습니다.”
북한 연필을 꼭 모으고 싶다고 하셨을 때 마음 깊이 응원했고, 호돌이 연필을 미국에서 구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마치 내 일처럼 기뻤다. 팬으로서, 브랜드는 어떻게 팬을 만들지 궁금했던 것을 두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힌트를 얻었다. 디자이너끼리 모인 팀이 할 수 있는 또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봐야지. 그렇게 또 우연히 우리의 팬 한 분 한 분을 만나 뵙게 되기를 바라본다.
흔쾌히 시간을 내주신 흑심의 박지희, 백유나 두 대표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부록]
모아 그리고 흑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