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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Mar 05. 2024

그날의 육아일기

2년 전 오늘과 1년 전 오늘의 육아일기


22년 오늘의 육아일기


오전부터 나가서 종일 놀았다. 꿀벌나라에 구경을 갔다가 카페에 가서 유튜브도 보고 그림도 그렸다. 여름이가 좋아하는 순두부집에서 외식을 하고, 집 앞까지 왔다가 차를 돌려 키즈카페에도 다녀왔다. 정말 실컷 놀았더니 집에 오는 길에 두 번이나 큰 소리로 말했다.

"엄마! 오늘도 재미있는 하루였어!"

"엄마! 오늘은 즐거운 하루였어!"

네가 웃으면 나도 좋아. 피곤하지만 여름이가 많이 웃었으니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저녁상에서 본인의 김을 한 장 집어먹자

"엄마! 내 김 먹지 마!"

접시 위에 있는 김을 야무지게 손으로 가리는 너.

아까는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다더니...

좋은 건 좋은 거고 김은 김이구나.

볼 통통


23년 오늘의 육아일기


아픈 할머니를 보러 시골집에 갔다. 여름이는 할아버지와 나란히 돌소파에 편하게 누워 넷플릭스를 보았다. 점심때 약속한 시간이 되어 티브이를 껐는데 여름이는 울며불며 소리를 쳤다. "더 보고 싶다고! 텔레비전 보고 싶어어!! 아까 동물 나오는 거 더 보고 싶어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떼를 쓰는 난리에 어리둥절. 나랑 둘이 있을 때는 거의 하지 않는 행동이다. 할머니 집에 왔으니 더 보여주겠지 하는 마음과 스토리 중간에서 끊어진 영상에 대한 아쉬움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소리를 치는 와중에도 안아 달라고 하다가 너무 세게 안았다고 더 화를 내고(진정시키고 싶어서 꽉 안았는데 통하지 않았다) 난리였다. 목청도 얼마나 큰지... 다시 영상을 틀어줄 수도 없고 결국은 무서운 말투로 "소리 지르지 마!" 하고 말았다.


울면서도 "달래줘! 부드럽게 말해줘!" 하며 소리 지르기를 멈추지 않는 아이에게 "네가 그렇게 크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데 내가 어떻게 다정하게 말하겠냐." 했더니 벌건 얼굴로 대답했다.


"그래도 달래줘. 무섭게 말하지 마."


나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릴 적부터 자주 들은 이야기가 있다. 외할머니집 골목에서 끝없이 악을 쓰며 울어대는 나를 놔두고 어른들이 집에 쏙 들어가 버렸더니 잠시 후에 울음을 뚝 그치더라는 이야기. 외할머니가 나와서 "왜 안 우노? 더 울지?" 하니 나는 "달래줘야 울지." 했다고.


무서워. 달래줘. 하는 여름이를 안아서 달래주었다. 나중에 영상 뒷부분을 보여주마 약속하고 겨우 밥상에 앉혔다. 밥 안 먹는다던 아이는 어디 간 건지, 소고기와 소시지 반찬으로 밥을 두 주걱이나 먹었다.

"고기에 간장을 찍으면 너무 맛있어."


배불리 먹은 여름이는 넷플릭스고 영상이고 잊어버리고 작은방 침대에서 앰버통통이(짐볼 비슷한)와 오래오래 상황극을 하며 놀았다. 나는 냄비에서 썩어가는 무언가와 프라이팬들의 기름 찌꺼기와 밀폐용기의 상한 반찬들을 버리고 설거지를 했다. 바닥에 걸레질을 하고 빨래를 널도록 여름이는 나를 찾지도 않았다. 마트에 가서 간식을 사고, 동네 할아버지에게 용돈도 받은 아이는 즐거워 보였다.


다진 마늘과 소고기와 갈치를 챙겨서 집으로 돌아왔다. 눈부신 주황색 해가 커다랗게 보였다. 이만하면 괜찮은 날이었다.

속상한 여름

그리고 24년 오늘


7세 반으로 등원한 오늘, 울며불며 등원하던 시절이 벌써 까마득하다. 블로그에서 일러주는 지난 일기를 읽으면 남의 일처럼 우습기도 하고, 언제 이렇게 아이가 자라 버렸나 하며 아기 시절 여름이를 그리워하기도 한다.(마침내 나에게도 육아집중기간을  미소 짓으며 회상하는 날이 왔다)


그때는 미쳐버릴 것 같아서, 아이에게 못된 소리를 잔뜩 퍼붓고 반성조차 안 하는 사람이 될지 모르는 내가 무서워서 울면서 쓰는 일기를 쓰는 날이 많았다. 요즘도 늘 동영상 보는 문제나 장난감 사는 일, 어딘가에 놀러 가자고 조르는 문제로 다정하게만 지낼 수는 없지만, 지나간 일기들을 읽으며 그때와 오늘을 보면 안도감이 든다.


내년에 입학하면 또 새롭게 펼쳐질 고민과 문제들이 있겠지. 올해는 너도나도 마지막 유치원 생활을 즐겨보자.


ㅡ요즘 여름이가 아무 맥락 없이 자주 하는 말

"엄마 좋아!"

ㅡ깊은 새벽에 한 번씩 깨서

"엄마, 옆에 있어줘. 엄마, 안아줘."

손가락이 긴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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