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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그린 May 05. 2024

영어를 못해도 괜찮았지만!

괌에서 영어 못해도 관광은 할 수 있지만 말이야.


 우리보다 몇 달 먼저 결혼한 남편의 지인이 권한다는 이유로 신혼여행지는 괌으로 정했다. 둘 다 해외여행 경험과 의욕적인 모험심도 없어 추천받은 여행사의 패키지여행코스를 그대로 따르게 되었다. 예전부터 일본에 한 번 가보고 싶긴 했지만, 잘 모르는 상황에서 내 의견을 내세우다가 문제가 생기면 내 탓이 될까 봐 남편이 하자는 대로 하기로 했다. 괌에 다녀온 친구에게 쇼핑과 맛집 정보를 물어보고 난생처음 비키니를 사면서 설레는 여행을 준비했다.


 결혼식날 하객들을 또렷이 보고 싶어서 안 끼던 렌즈를 낀 것이 문제였다. 이전에도 원데이 소프트렌즈를 몇 번 착용한 적 있었는데, 예식 후 급하게 김해공항까지 가는 길에 들른 휴게소에서 왼쪽 렌즈가 유난히 빠지지 않았다. 하필 비행기가 몇 시간이나 연착되었고, 제주공항에 들러서 비행기에 무언가를 더 실어야 하는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괌. 가이드를 만나 호텔에 짐을 풀었을 때는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승무원에게 빌린 인공눈물을 아무리 넣어도 왼쪽 눈동자는 뻣뻣한 느낌이었고, 눈에 들러붙은 건지 눈알 뒤로 넘어간 건지 렌즈는 보이지 않았다.


 남편은 렌즈가 이미 빠진 것 아니냐며 차분하다 못해 무심한 반응을 보였다. 거울에 비친 시뻘게진 눈을 보는 나의 불안과 공포는 한도를 넘어섰다. 일단 호텔 로비로 가서 '병원에 가야겠다. 택시가 필요하다.'는 말을 더듬대며 전하자 호텔 직원이 어디론가 전화 연결을 해주었다. 내가 일본 호텔에 온 동양 여자라서 그랬는지, 친절한 일본인 여성이 전화를 받았다. 호텔에서 운영하는 콜센터였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일본어가 영어보다는 잘 들려서 다행이었다. 일본인이냐는 질문에 한국인이지만 일본어는 대충 안다는 대답을 했다. 렌즈가 눈에 붙은 것 같으니 병원에 가야겠다는 말을 어찌어찌 전하고, 어떻게 소통했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지만 호텔에서 택시를 불러주었다.

호텔 앞 해변

 밤새 잠도 거의 못 자고 휴양지에서 우리가 처음으로 간 곳은 종합 병원 비슷한 이었다. 병원 직원이 가져온 서류를 나름대로 채워 넣었지만,  짚코드를 쓰지 못했다. 한국 주소를 써야 하는 것인지 호텔 주소를 쓰라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호텔도 쓰고 주소도 썼지만 병원에서는 짚코드를 반드시 쓰라고 했다. 대체 뭘 쓰라는 거야! 나는 짚코드가 우편번호라는 것을 그때 몰랐다. 울 것 같은 심정으로 서류파일을 들고 있는 나에게 한 아주머니가 다가왔다.


 귀인이었다. 괌에 있는 미국 사람과 결혼해서 살고 있는 한국인 아주머니, 이름은 써니 쿠퍼! (나중에 들었지만 나 또래의 자식이 있는데 결혼을 안 해서 고민이라고) 내 상황 설명을 들은 써니 아주머니가 자기 차로 안과에 데려다주었다. 아주머니는 안과에 가서도 채워야 하는 두꺼운 서류를 다 읽고 체크해 주었으며, 간호사에게 내 상태도 설명해 주고 함께 진료실에도 들어가 주었다. 나이가 지긋하고 인상이 좋은 의사가 눈을 들여다보더니 말했다. "렌즈는 빠지고 없고, 계속 손으로 눈을 긁어서 상처가 생겼다. 안약을 처방해 줄 테니 넣어라. 결혼 축하한다."

의사를 만나고 나서 차분해진 내가 스스로 상황 정리를 할 수 있겠다 싶을 때 써니 아주머니는 약속에 늦었다며 일어났다. "이제 할 수 있죠?" 나는 고맙다고 몇 번이나 말하며 전화번호를 물었다. 내일이나 모레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약속했다.


 약국에서 한 세월을 기다리고(나중에 생각하니 일부러 내 안약을 늦게 준 것 같기도 한데 인종차별적 경험인지 아닌지 정확히 모르겠다), 아침에 만난 택시 기사님이 다시 와서 약을 대신 받아주었다. 이 모든 소동을 겪고 호텔로 돌아왔을 때 남편과 나는 평생 다시는 렌즈를 끼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10년이 지나도록 나는 렌즈를 끼지 않고 있다. 아마 앞으로도 굳이 끼지 않겠지. 보험이 되지 않아, 안과 진료와 안약 처방에 30여 만원이 들었지 싶다. 진료비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안약이 13만 몇 천 원이었다. 아무튼 안약을 넣고 항생제 알약 같은 것도 먹고 떨린 가슴을 진정시켰다. 잠깐 눈을 붙이고 일어나서 가이드 선생님과 관광지를 돌고, 다음날 써니 아주머니와 점심 약속을 잡았다.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에 있는 중식당이 좋으니 이쪽으로 오겠다고 했다.


 다음날 오전에 별모양 모래가 있다는 바닷가를 구경하고 호텔 꼭대기에 있는 중식당에 갔다. 통창 밖으로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묵직한 테이블과 의자가 멋스러웠다. 철판과 웍에서 자글자글 구워지고 튀겨지는 음식 냄새에 군침이 돌았다. 가이드 관광에서 간 현지 식당과 한식당보다 훨씬 좋은 식당이었다.(남편은 내가 알아온 식당에 전혀 가지 않았고, 가이드가 알려주는 부대찌개 집 같은 곳에 가자고만 했으니 써니 아주머니가 아니었다면 멋진 식당에 한 번도 못 갔을 터였다)

써니 아주머니

 운동과 햇빛으로 다부진 체격의 써니 아주머니는 60대 이고, 남편이 괌에 일하는 미국 사람이며, 취미로 골프를 친다고 했다. 남편과 나는 연이어 고맙다는 말을 하고, 많이 드시라고 했다. 음식이 모두 맛있어서 실컷 먹었다. 아주머니는 막 결혼한 우리에게 다정한 축복의 말을 건네주었다. 참으로 감사한 인연이었다. 오후에는 또 각자 일정이 바빠서 그대로 작별인사를 했다. 한국에 들어가면 연락하겠다, 나도 괌에 다시 오면 연락하겠다는 인사를 주고받았다. 다음 해 명절까지 안부 카톡을 주고받았고, 써니 아주머니가 한국에 와서 단풍 사진을 보내준 가을에도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그 후로는 흐지부지, 다른 인연들처럼 지나간 사람이 되었다.


 안약 덕분에 부은 눈은 곧 가라앉았다. 괌의 바다는 선명하게 반짝였고 호텔에서 보는 석양은 꿈처럼 아름다웠다. 아침저녁 내리는 비가 그치면 당연한 듯 떠오르는 무지개가 있었고, 관광지 사람들은 모두 친절했다. 그렇지만 괌을 떠올리는 마음이 마냥 좋지 않다. 안과를 찾느라 고생한 경험, 결혼하자마자 남편과 싸운 기억과 기껏 렌트한 차로 쇼핑센터나 돌아다닌 순간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나도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데, 입을 꾹 다물고 멀찌감치서 따라오기만 하던 남편을 보며 '왜 괌에 오자고 했니?'라고 묻지 못했던 갑갑함.


 영어로 말할 수 있어야겠다고 굳게 다짐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결심은 사라졌다. 몇 년 후 아이가 태어났을 때 타일러가 광고하는 영어 프로그램을 결제했지만, 헬스장처럼 몇 번 접속하고 하지 않았다. 마음 한 구석에 있는 영어는 사라지지 않았고 속 편히 영어를 내려놓지도 못했다. 빅뱅이론과 크레이지엑스걸프렌드를 영어자막으로 보면서, 귀에 영어가 쏙쏙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잊을 만하면 한 권씩 사는 원서를 다 읽지는 못해도 이번 달 북클럽에 맞춰서 '드링킹' 원서를 읽기 시작했다. 잘 맞는 방법은 모르겠지만 듣고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면 영어를 지금보다는 잘하게 되겠지.

그 때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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