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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연의 Feb 02. 2022

에세이와 자기계발서

에세이도 용기가 필요해


출간기획서의 항목 중 '분야'를 적는 칸이 있다. 인문, 자기계발서, 실용서, 소설, 등 내가 쓰려는 책의 장르를 규정하는 것이다. 시나 소설처럼 글의 성격이 명확하거나, 매뉴얼처럼 무엇인가를 가르쳐주는 실용서라면 고민할 여지가 없다. 한 분야에 오래 몸 담은 전문가가 설파하는 논리와 근거가 타당한 자기계발서도 헷갈릴 게 없다. 그 외에, 작가가 담담하게 풀어내는 자기 경험과 생각을 통해 독자들이 공감과 위안, 배움을 얻는 책이 에세이라는 장르다. 사람들의 삶이 저마다 다르듯 에세이의 소재도, 풀어내는 방식도 수천가지다. 독자라면 편견과 사심없이 읽으며 자신에게 울림을 주는 문장을 찾아 삶에 녹여내고, 작가라면 진심을 다해 자기 삶과 생각을 풀어내는 데에 집중하는 것이 에세이의 존재의 이유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에세이 작가'가 되고 싶으면서도 도무지 '에세이'라는 걸 쓸 줄 모르는 내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떠다니는 상념을 붙잡아 글로 적으면 다 에세이인 줄 알았다. 직장인의 희로애락, 워킹맘의 빡센 하루, 어디나 한명쯤 존재하는 소시오패스(사회 부적응자)의 어이없는 공격, 그럼에도 일상이 가져다주는 잔잔바리 행복을 두서없이 글로 적으며 나는 에세이를 쓰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마 살짝 착각을 했던 것 같다. '일상'을 소재로 하면 다 에세이인 것으로.


얼마 전 출판사 편집자님과 짧게 미팅을 했는데 그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다.

"처음에는 '에세이'로 기획하신 것 같은데 내용을 보니 '자기계발서'네요?"


아..! 문득 생각났다. 몇 년 전 글쓰기 수업을 함께한 문우들과 서로서로 피드백을 해주곤 했다. 그 때 내 글에 대해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진부함'이었다. 마치 팀 페리스의 '타이탄의 도구들'같은 느낌이라는 말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 책은 매우 훌륭한 책이지만 이 말의 뜻은 누구도 내용을 짐작할 수 있을 법한 뻔한 자기계발서 같다는 말이다. 이번에도 그 얘기를 들은 셈이다. 의도한 장르와 실제 쓰는 글이 다르다면 이건 작가로서 치명적인 결함, 아니, 자격 미달이다.


나는 에세이를 쓰는데 왜 사람들은 자기계발서 같은 진부함을 느낄까? 답은 간단했다. 나는 에세이를 쓴다고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자기계발서를 쓰고 있었다. 시작은 세상 담담한 일상 이야기였지만 끝은 항상 '이래야 한다'는 교훈으로 마무리하곤 했다. 좋은 문구라고 소개하는 책조차 자기계발서일 때가 많았다. 바쁜 시간을 쪼개 내게 열정을 불어넣는 책들이 그런 책들이었다. 훌륭한 리더가 되는 책, 부모의 마음가짐에 대한 책, 너무 뻔하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일상의 작은 습관들을 성공시키는 데에 집중하는 책. 어쩌면 내 삶 자체가 지나치게 성공과 성장을 향한 열망으로 뒤덮여, 마치 하나의 자기계발서같은 인생을 사느라 애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정석을 찾으며 바른 생활을 영위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내게는 독서와 글쓰기조차 그 일부였나보다. 그 삶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왠지 좀 가엾다. 온갖 '해야하는 것들'로 점철된 내 삶에는 순수하게 설레고 기쁘고 슬플 틈이 좀처럼 없었던 것 같아서, 들판에 핀 꽃 까지는 아니어도 잠든 아이의 긴 속눈썹과 보글보글 끓는 찌개를 바라보며 행복을 느낄 여유 정도는 내게도 있었을텐데. 그걸 글로 풀어낼 만큼의 '갬성'이 내게는 부족했던 걸까.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적는것보다 어떻게든 거기서 교훈을 찾아 성장의 고리로 엮어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는 왜 이렇게 피곤한 삶을 살고 있는 걸까. 에세이스트로서의 자격을 다시금 갖추려면 어디서부터 무엇을 다시금 쌓아야 할까.


고민 끝에 선택한 나다운 방법은 역시 공부다. MKYU에서 하는 '정여울의 에세이 수업'을 신청하고, 정여울 작가의 에세이를 무작정 사다 읽었다.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심리학을 공부한 작가의 성찰, 자신이 진정 사랑하는 대상(빈센트 반 고흐와 헤르만 헤세 등)에 대한 극도의 열정과 애정을 담은 글은 단 몇 권만 읽어도 정여울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인간적으로 좋아하게 만들었다. 자기계발서에서 삶의 열정을 불태우는 방법론을 배운다면, 에세이는 삶이라는 불꽃을 지그시 바라보며 그 순간에 완벽하게 몰입하게 해주는 것 같다. 적어도 정여울 작가의 에세이는 그런 느낌이었다.


에세이의 매력은 진솔한 나 자신과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에세이를 읽는 독자들이 가장 원하는 건 솔직한 작가의 이야기에서 시작되는 진솔한 고백의 힘이다. 마음이 따뜻해지는 에세이,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에세이의 특징은 바로 작가를 직접 눈앞에서 바라보는 듯한 생생한 현장감이다. 그 사람을 만나지 못했는데도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에세이의 감동은 내가 온갖 가면을 벗고 온전히 나 자신이 되는 순간에 시작된다. - 정여울 '끝까지 쓰는 용기'


이쯤에서 다시 물어야 한다. 나는 왜 에세이를 쓰고 싶은가? 자기계발서가 편하면 자기계발서를 쓰면 되는 거 아닌가? 아니다. 자기계발서는 아무나 쓰는 게 아니다. 팀 패리스의 이야기를 들으면 감동을 받지만, 엄마가 하라고 하면, 옆집 언니가 하라고 하면 하기 싫은 게 우리네 심보다. 단순히 '이래라 저래라' 한다고 다 자기계발서가 되는 게 아니다. 자기계발서는 행동을 촉구하는 책이다. 지금 당장 마인드를 바꾸고 몸을 움직여 변화를 꾀하라는 책이다.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려면 그만큼 타당한 근거와 행동할 수 밖에 없는 탄탄한 논리의 흐름이 필요하다. 이미 그 분야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가여야함은 물론이다.


언젠가 내가 그런 실력을 갖추게 되면 모를까, 지금은 내가 한 발 앞서, 반 보 앞서 걸어가며 보고 듣고 느낀 것에 대해 주섬주섬 담아놓은 그릇에 불과한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에세이 뿐이다. 그조차도 진짜 에세이답게 쓰려면 훈련이 필요하다. 나의 진정성에 한발 더 다가가 세심하게 귀를 기울이고 섬세하게 그려낼 수 있는 작가로서의 훈련이다. 정여울 작가 말처럼, 온갖 가면을 벗고 온전히 나 자신이 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에세이를 쓰고 싶지만, (심지어 에세이를 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에세이가 뭔지도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부끄러운 나로부터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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