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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 Apr 15. 2021

3. 힘이 들땐 힘든 일을 더 만들어 보세요.

서류 통과하셨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세상을 다 가진 것과 같은 기분이 드는 것과 동시에 불안함에 사로잡혔습니다. 정말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지금 미국에 코로나가 한창인데 애들 데리고 미국 가는 것 괜찮을까? 남편은 어떻게 하지? 그런데 면접에 합격한다는 보장도 없는데 합격하는 것이 먼저가 아닌가? 그런데 합격하면 바로 가는 건데 집은 어쩌지? 지금 살고 있는 집 너무 좋은데, 애들 학교는 어떻게 하지? 첫째는 겁이 많은데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둘째는 아직 한국어도 완벽하지 않은데, 괜히 나중에 한국어를 못하게 되는 것 아닌가? 나는 어떻게 하지, 지금껏 한 팀에 쭉 있어서 편하게 살았는데 새로운 곳에 가도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그런데 면접 준비 어떻게 하지? 떨어지면 어쩌지? 등등 백만 개 정도의 질문이 저의 머릿속에 떠올랐고 꼬리의 꼬리를 물어서 무한대로 증가하였습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얘기할 수도 없었습니다. 회사 사람들에게는 인사 관련 일이라 최종 발표 전까지 말을 할 수 없었고, 말을 한다한들 상대가 들었을 때는 '어쩌라고'라고 할 것이기에 아무에게 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비밀이란 없습니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 찰나에 지나가던 주변 사람들이 벌써부터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미국 간다며 축하해!"


'나는 지원했다는 얘기도 안 했는데 어떻게 알지'라는 생각과 동시 또 다른 불안감이 찾아왔습니다. 다들 '쟤 곧 미국가'라고 생각하고 있을 텐데 안 가게 되면 얼굴 들고 못 다니겠구나, 부끄럽겠구나라는 걱정이 추가가 되었습니다.


물론 이 모든 생각들이 부질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머릿속에서 진행되는 생각들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나에 대해 더 알게 되었습니다. 

1) 내가 세상을 너무 쉽게만 살아왔다

서류가 통과하고, 면접을 기다리는 상황은 행복한 고민입니다. 그런데 그 기간 동안 무엇을 해도 안 빠지던 살이 빠졌고, 거의 한 달을 잠을 제대로 못 잤습니다. 

이유를 고민해 보니, 첫째 미국에 가는 꿈은 오랫동안 제가 꿈꿔왔던 꿈이었습니다. 그랬는데 이렇게 갑자기 이렇게 쉽게 기회가 나에게 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어른들이 얘기하던 '기회는 언제가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라는 말이 정말 사실이라는 것이 놀라우면서도 무서웠습니다. 어른들 말 틀린말이 없구나이 느껴지며 '그런데 내가 준비되지 않아서 이 기회를 날려 버리면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이 앞섰던 것입니다. 이것만큼은 절대 놓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가 없었습니다. 

둘째, 내가 마지막에 했던 도전은 무엇인가. 대학 입시, 회사 입사 이후 내가 무언가 도전한 것이 언제인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물론 소소하게 도전은 했었겠지만 이렇게 간절히 바라는 일은 처음이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떨어짐에 대해 압박이 더 크게 왔습니다. 

 

2) 내가 생각이 너무 많구나

평소에도 내가 생각이 많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큰 변화를 앞두고 보니 나도 놀랄 만큼 너무나 많은 생각의 나무가 뻗어지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저의 생각은 심지어 미국에 갔다 한국에 돌아오는 것까지도 여러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었습니다. 현실은 갈지 말지도 결정이 안된 상황인데, 내 머릿속은 다녀와서 집 구하고, 아이들 새로운 한국학교에 적응시키며 힘들어하는 나의 모습이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황당한가요. 이걸 멈추고 싶었으나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집중을 할 수가 없어서 보지 않았고, 그나마 퍼즐 맞추기 같은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는 단순한 스마트폰 게임을 할 때는 생각을 멈출 수 있어서 그것에 빠져서 밤을 새우며 보냈습니다. 


3) 멀티태스킹은 어렵구나

여자들이 멀티태스킹이 잘 된다고 하는데, 저는 멀티태스킹에 무척 약합니다. 물론 단순한 일은 할 수 있지만 복잡한 일은 절대 안 됩니다. 그때는 우선순위를 정해서 제일 중요한 업무에만 집중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알게 된 것은 '내가 남에 대한 불만이나, 연예인이나 정치에 대한 관심은 내 삶에 여유가 있을 때 생기는 것이구나, 반대로 내가 남에 대해 불만을 하고 있다는 것은 내 삶이 충분히 바쁘지 않다는 것이구나'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특히 육아에 대해서도 평소 같으면 크게 걱정했을 문제들이 그때는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졌고, 시간이 흐르니 정말 아무것도 아니게 끝났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스트레스받으며 면접 날짜를 기다리는데,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1달 안에 면접을 하겠다고 했는데, 언제 면접을 하겠다는 연락 조차 그 1달이 지날 때까지 없는 것입니다. 그때 또 많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사실은 더 이상 이 자리에 TO 가 없다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나 말고 다른 사람이 벌써 된 것 아닌가' 등의 쓸 데 없는 걱정에 심한 스트레스가 왔고, 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오는 안면 마비까지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누군가 이런 얘기를 해 주었습니다. 

그럴 땐 힘든 일을 더 만들어 보세요. 

 

그리고 그분이 추천해 줬던 '마녀 체력'이란 책에 이런 문구가 있었습니다. 

뭔가 잘 못해서 겁이 나고 두려운 사람은
익숙해질 때까지 연습하는 것만이 벗어나는 길이다. 


그래서 바쁘게 살다 보니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기다림에 지쳐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때 즈음 면접 관련 메일이 왔습니다. 


다음 주 수요일 10시 면접 준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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