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잠깐이지만 한때 작은 1인 출판사 창업을 꿈꾼 적이 있다. 회사 소속이 아니니 입맛대로 책을 만들 수 있고, 출판사는 면세사업이어서 부가가치세가 면세되다 보니 창업에 대한 부담도 덜하다. 그래서 막연히 언젠가는 판권에 펴낸이, 발행인으로 이름을 올려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물론 환상과 현실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하는 법. 꿈이 꿈에서 머무르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작은 출판사는 작가 섭외부터 편집, 마케팅, 유통, 서점 미팅 등 여럿이서 분업할 일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한다. 또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다 보니 그에 따른 리스크도 적지 않다.
'돈이 없으면 머리도 굳는다' '1인 출판사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 '사무실이 10평이면 창고는 100평' '왜 폐업이 어려울까?' '서점의 몰락이 이야기하는 책 생태계의 균열!' '독자는 줄고 저자는 늘어난다' 등등 책의 소목차만 봐도 그 고충을 엿볼 수 있다.
이 밖에도 열거하기 입 아플 정도로 현실적이 어려움이 많아서, 창업의 꿈은 그냥 로망으로 남겨둔 상태다. 작가는 창업과 폐업 등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30년 이상 출판의 길을 걸은 사람이다. 출판사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출판사의 현실을 속속들이 알려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출판사 창업을 꿈꾸거나 혹은 이제 막 출판사를 차린 사람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되는 책이다. 출판사를 운영하다 여러 번 실패를 경험한 그는 ‘출판은 콘크리트로 짓는 고층빌딩이 아니라 벽돌을 쌓아 올리는 단층집’임을 강조한다.
작가의 서해문집 출판사는 여전히 왕성히 양질의 책을 세상에 내놓고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은 강하다는 것. 2025년 6월 9일 기준 6월에 1권의 책이 나왔고, 저번 달에도 1권의 신간이 나왔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출판사다. 우리 회사가 있는 건물 4층에는 여러 1인 출판사와 소규모 출판사들이 모여 있다. 임대료 절감을 위해 하나의 사무실 공간을 칸막이로 나눠서 쓰기도 한다. 8년여간 이곳을 다니면서 얼마나 많은 출판사가 새롭게 생기고 사라지고를 반복했던가?
다시 말하지만 많이 팔기 위해서지 많이 팔릴 것이기 때문이 아니다. 많이 팔고 싶지만 팔릴지 안 팔릴지는 알 수 없다. _23쪽
인쇄업계도 좁아서 지불이 좋지 않은 출판사 명단은 두루 공유한다. _212쪽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다. 돈에 쪼들리면 머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출판사를 처음 시작하고 경제적으로 쪼들리기 시작하자 거짓말처럼 머리가 돌지 않았다. _43~44쪽
솔직히 말해서 '나도 할 수 있다!' 하는 용기를 얻고 싶어서 이 책을 골랐다면 크게 실망할 수 있다. 책의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면 '소명의식 없이는 섣불리 도전하지 말자'이기 때문이다. 지속가능한 1인 출판사라는 건 유니콘에 가깝다. 미화 없이 담담하게 현실을 써내려가다 보니 '너 정말 출판사 차릴 거야?' '너 정말 할 수 있겠어?' '다시 생각해보는 게 어때?' 끊임없이 독자들을 시험한다.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고 고민의 과정이 필요한지 깨닫게 해주는 고마운 책인 동시에, 지름길과 왕도는 없음을 깨닫게 해주는 따끔한 책이다.
"얼마나 오랫동안 출판을 하실 예정인가?"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 책의 뒷면에 적힌 이 카피가 굉장히 다르게 다가온다. 출판업계에서 잔뼈 굵은 장인에게 뼈 때리는 조언을 구하고 싶다면 일독을 권한다.
평생 즐기고 앞으로도 즐길 요소라면 첫 손가락에 꼽힐 책을 마다하고 다른 일을 할 수도 없다. 아니, 책을 읽고 만드는 일보다 더 기쁜 일을 찾지 못했다. _2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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