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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유 Sep 20. 2020

세 번째 쿠바행, 아웃 티켓이 발목 잡을 뻔

쿠바에 못 갈 뻔했던 그 날


쿠바, 꿈에나 내가 쿠바에서 이렇게 긴 시간을 살 줄 알았을까? 2015년 첫 쿠바 여행에서 단물 쓴물 짠물을 다 경험하고 다시 쿠바에 올 일이 있을까 싶었던 나였다. 2019년 1월, 쿠바가 얼마나 변했을지 궁금하기도 했고 친한 언니의 쿠바 여행에 동행자가 되어 며칠 있다가 쿠바 살사나 배우자는 생각으로 다시 갔었다. 그리고 두어 달이 지나 나에게 처음으로 살사에 대한 열정을 안겨준 애정 하던 콜롬비아를 떠나 쿠바로 향했다.


사람 몇 달 논다고 어떻게 안된다!


이런 자기 합리화적인 생각을 내뱉으며 그 몇 달이 일 년을 넘길 줄 그때는 몰랐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복합적으로 얽힌 것 같은 쿠바는 여전 여전했다. 다만, 내 첫 쿠바 여행은 오롯이 여행만 했고 내 두 번째 쿠바 여행은 지인과의 짧지만 즐거운 여행 후 아바나에 머무르며 살사를 추고 클럽을 가고 그렇게 3주를 보냈다. 이번 세 번째 쿠바는 여행이 아닌 삶이다. 콜롬비아 칼리처럼 몇 달 살아보며 살사도 배울 생각으로 떠났다.




쿠바로 가는 날,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긴박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콜롬비아 보고타 공항에서 체크인을 위한 긴 줄을 기다린 후, 40분 만에 체크인을 하고 있었다.


“아웃 티켓 있어?”

“응 여기.”


남미 여행을 하는 많은 여행자들이 아웃 티켓을 요구할 때 쓰는 코파항공 예약 24시간 후 결제 티켓을 보여줬다. 속으로는 ‘미리 해두길 잘했다’ 하며 가슴 쓸고 있었다. 보통 섬나라로 여행할 경우 특히 아웃 티켓을 많이 요구하는데 아웃 티켓 없이 출발했다가 도착국에서 입국 거부를 하게 되면 아웃 티켓을 확인 안 한 항공사가 책임져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간혹 아웃 티켓 없이 출국할 경우 항공사에서 “본인이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라고 각서까지 받는 경우도 있다.


“아니 이거 말고 이티켓 보여줘.”

“이거 말고? 이티켓? 이거 아니야?”

“예약번호 있는 티켓 말이야. 그거 없으면 너 못가.”


그 직원은 손바닥 보듯 모든 것을 훤히 알고 있는 것처럼 예약만 걸어둔 24시간 후 결제 티켓을 무시했다. 결제가 안 된 티켓인 것도 아는 것 같았고 결제 후 받는 이티켓의 예약번호를 요구하고 있었다. 어떻게 이 상황을 극복할 것인가 머리는 빠른 속도로 회전했다.


“난 결제를 했는데 펜딩(미결제)된 상태야. 그래서 네가 말한 이티켓을 못 받았어. 한국 시간이 밤이라 그래. 지금 은행 점검 시간인데 내가 쿠바 도착하면 모든 게 다 결제되고 티켓도 받을 수 있어. 이해해줘. 이건 카드사 은행 문제야. 난 결제를 했다고!”


그래도 안된다며 콜롬비아산 철옹성을 유지하던 그녀에게 난 수십 번의 “뽀르 빠보르 (Por favor, 스페인어로 제발)”을 외쳐댔다. 평생 말할 “뽀르 빠보르”를 다 쓴 기분이 들 즈음, 그녀는 상관으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전화하여 내 상황 설명을 하고는 그녀의 오케이를 받고 나서야 나의 체크인을 도와주었다.


에에?????


수하물을 무게 재는 곳에 올려놓은 후 그녀의 반응은 두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놀란 상태였다. 수하물 무게가 26kg. 쿠바행 항공사는 윙고 에어라는 저가항공이었는데 수하물이 최대 20kg까지만 된다. 이래저래 봐준다고 해도 22kg 정도까지만 가능하다. 난 무려 4kg를 오버한 셈이었다.


어젯밤에 분명 23kg였는데 뭔가 체중계에 문제가 있었나? 너무 무거워서 캐리어 들 때 내 몸에 기대었나? 젠장!!


그녀가 내 체크인으로 바쁜 와중에 난 이미 무게를 확인한 후라 어떻게든 다른 곳으로 관심을 끌어보려고 했으나 실패. 그녀에게 표시되는 화면은 내가 보는 화면의 5배는 컸다.


“추가 요금 80달러 내던지, 아니면 짐 빼야 해”

“응 알았어”


항공권 요금이 수하물 1개 포함 200달러인데 추가 80달러라니! 캐리어를 열어서 우선 봉지째 뺄 수 있는 옷 봉지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선선한 보고타에서는 입을 수 있는 긴 옷들을 꺼내고 닫았다. 24kg.


“더 빼”

“응 알았어”


뭘 뺐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손에 잡히는 무거워 보이는 것 중 액체류가 아닌 것을 뺐다. 겨우 23kg 초반을 맞췄다. 마지못해 넘어가 주는 그녀에게 방금 뺀 것 중 렌즈보존액을 다시 넣어도 되냐 하니 넣으란다. “무챠스 그라시아스!”


이미 온몸이 땀범벅이었다. 긴 옷을 계속 들고 있을 수 없어 입은 상태에서 긴장을 했고 짐 빼느라 땀을 흘렸더니 한증막이 따로 없었다. 핸드캐리(기내 반입 가방)가 10kg에 개인 소지품 가방이 6kg까지 가능할 정도로 넉넉한 편이지만 이미 내 배낭은 12kg가 넘었고 보조가방에 이것저것 가득 담아 6kg가 꽉 찬 상태에다가 돈과 중요물품이 들은 작은 크로스백도 있었다. 여기에 짐이 더 생긴 셈이었다. 아웃 티켓 때문에 시간이 지체되어 빨리 게이트로 가야 하는 상황인 데다 온몸이 짊어지고 들고 가는 짐만 거의 20kg가 넘으니 진정 죽을 맛이었다.


그렇게 힘겹게 면세구역까지 들어가 바로 면세점으로 향했다. 핸드캐리가 많아 캐리어에서 꺼낸 짐들을 면세품으로 둔갑시켜야 했다. 봉지를 하나 달라고 하니 흔쾌히 주는 콜롬비아 면세점 직원. 부랴부랴 짐들을 봉지에 넣으니 그제야 마음이 편해졌다. 비록 내 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손가락은 봉지의 무게로 인해 찢겨 나갈 것 같았지만.


그렇게 땀복 상태에서 걸으며 뛰며 항공기 탑승 게이트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줄을 선 와중에 아무래도 내 핸드캐리가 너무 많아 문제가 될 것 같았다. 큰 배낭, 보조가방, 면세점 봉지, 그리고 작은 크로스백까지. 핸드캐리 무게도 그렇지만 개수로 문제 삼는 저가항공사가 많다 보니 대처가 필요했다. 아이와 함께 있는 승객을 스캔하기 시작. 가방 하나 정도를 게이트 앞에서 통과할 때만 맡아줄 사람이 필요했다. 보통 아이에게는 짐이 없으니까. 그리하여 혼자 딸을 데리고 탑승하는 아빠가 보여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핸드캐리가 많아서 그런데 게이트만 통과하게 도와주실 수 있나요?”

“안될 것 같은데... 인당 하나 아닌가요?”


순간 주변에 있던 아줌마들이 우리의 대화를 듣고 인당 두 개라며 가능하다고 말해주셨다. 애 아빠는 그제야 흔쾌히 오케이. 가장 덜 무거운 돈과 중요 물품이 든 작은 크로스백을 부탁했다. 나머지는 너무 크기도 하고 무겁기도 한 데다가 딸을 데리고 타는 분께 부탁하긴 무리였다. 그렇게 해서 무사히 탑승을 마치고 아빠와 딸 자리로 가서 크로스백을 잘 받았다.


어찌나 감사하던지.
이제 수하물 무게 1kg는 여유 있게 가야지...
민폐도 민폐지만 내 몸이 죽어나는 줄...


아디오스 콜롬비아


항공기는 곧 출발했고 추가 비용으로 사 먹을 수 있는 간식 및 기내식 제공 시간이 다가왔다. 아까 신세를 진 아빠와 딸에게 뭐라도 사주고 싶어서 다가갔다. 한사코 괜찮다고 하는 아빠. 그럼 딸아이에게 줄 망고주스만이라도 받아달라며 주스 하나를 얼른 사서 드리고 왔다. 나중에 보니 그는 가장 비싼 기내식 세트를 먹고 있더라는. 난 마지막으로 콜롬비아 맥주와 인사를 하고 싶어 남은 콜롬비아 돈으로 맥주와 주전부리를 샀다. 옆 옆자리 남자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꺼내 미리 사온 땅콩 주전부리를 나에게 조금 건넸다. 먹거리 나눔 훈훈하네.


윙고에어에서 먹은 콜롬비아 맥주와 과자들


복도석을 좋아하는 내게 자동으로 배정된 좌석은 창가 자리였다. 그나마 좀 어렸을 때는 창가 자리를 좋아했는데 허리가 안 좋아지면서 일어났다 앉았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복도석이 더 좋더라. 게다가 창가 자리는 일어날 때마다 민폐 끼치는 느낌이 들어서 점점 기피하게 되었다. 그리고 여행을 많이 하면서 비행 횟수가 잦아지면서 나도 모르게 이륙 시 약간의 무서움을 느끼게 되었다. 호랑나비 춤추듯 좌우로 흔들리는 비행기와 자유 낙하하던 비행기 등 몇 번의 기억에 남는 비행 이후로 더 그랬던 것 같다.


콜롬비아 산안드레스로 추정되는 섬을 지날때


께 린도!!!! (너무 예쁘다)


갑자기 옆자리 여자가 “께 린도”를 연발하며 창가를 바라본다. 바다색이 참 예뻤다. 아무래도 산안드레스 위를 지나고 있는 것 같았다. 바다는 산안드레스라고 생각될 정도로 그 어느 바다보다 아름다운 콜롬비아의 섬이다. 여행의 설렘이 가득해 보였던 그녀의 리액션이 참 귀여웠다.


나도 한 때는 저랬는데... 여행을 너무 많이 다녀서 뭔가에 홀딱 반하거나 너무 아름답거나 이런 것도 이젠 시들해졌다.


옆 자리의 두 남녀는 일행은 아니었다. 쿠바로 가는 하늘 길 어딘가에서 쿠바 입국 시 필요한 투어리스트 카드를 작성하고 있었는데 내 옆자리 여자가 큰 리액션을 보여주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어머! 나랑 생일이 같아!!


허 참 신기하네??!! 그녀는 나보다 3살 어렸지만 생일은 같았다. 자긴 생일 같은 사람 만나서 신기하단다.


나도 신기한데 너만큼 리액션이 안 나온다.


원래 어딜 가도 누굴 오랜만에 만나도 누구의 말을 듣는 중에도 큰 리액션이 잘 안 나오는 편이다. 그렇게 옆좌석의 두 사람들과 이야기를 살짝 나눴다. 그녀는 콜롬비아 사람이었는데 가족들과 같이 여행한단다. 까사가 아닌 호텔을 예약한 상태였는데 들어보니 세미 패키지여행 정도 되는 것 같았다. 다른 남자는 쿠바 사람인데 콜롬비아 메데진에서 일하고 있단다. 남자와 난 시내로 가는 택시를 같이 타기로 했다. 그렇게 우린 급 사진까지 찍으며 쿠바로 향했다.


나의 세 번째 쿠바.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까지 쿠바에서의 일 년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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