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도 층간소음이 있다
쿠바에서 일 년 반, 코로나가 터지기 전 일 년간 난 3번의 이사를 했다. 첫 번째 집은 멋모르고 에어비앤비로 비싸게 예약했던 집으로 첫 한 달을 살았고 두 번째 집은 작년 초 쿠바 두 번째 여행 때 머물렀던 까사였는데 집주인이 통으로 렌트를 하려고 할 때 운 좋게 내가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해 여름, 집주인의 갑작스러운 통보로 힘들게 세 번째 집으로 이사를 했고 그 집에서 도둑을 맞은 후 옮긴 집이 바로 지금 가장 오래 살고 있는 이 집이다.
층간소음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첫 번째 두 번째 집은 층간소음이 뭐니? 할 정도로 모르고 살았고 세 번째 집은 노래하는 사람이 위에 살아서 간혹 발성하는 소리가 들렸던 것이 전부. 그러나 지금 사는 집은 층간소음이 한국만큼 장난이 아니다. 물론 층간소음이라는 말보다는 창문 소음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이사 온 지 며칠 안 되었을 때, 누군가 문 여는 소리에 깼던 적이 많았다. 테라스가 도로에 접해있고 방은 집의 뒤쪽에 있어 뒤쪽에 붙어있는 복도식 건물에 사는 사람들의 대화나 문 여는 소리에 곧잘 깼었다. 도둑맞은 경험이 있다 보니 누군가의 문 여는 소리에도 후다닥 문과 창문 등을 살펴보기 일쑤였다. 작은 소리에도 흠칫 놀라 몽둥이 할만한 거라도 들고 굵직한 목소리로 “누구야?!!” 하며 거실로 뛰쳐나갔다. 그 작은 소리들의 주범은 바로 윗집이었다.
건물 구조상 방과 화장실 사이에 네모난 공간이 있는데 그 공간은 아래층부터 꼭대기까지 굴뚝처럼 연결되어있는 구조다. 이 건물 자체가 창문이 유리가 아닌 블라인드처럼 생긴 빗살 모양의 나무로 되어있다 보니 창문만 열어도 그 굴뚝같은 공간을 통해 모든 소리가 전달되었다. 쿠바는 유리가 귀해서 창문을 블라인드처럼 나무로 만들거나 단순한 나무 창문인 경우가 많다. 나야 파리며 모기가 들어오는 것이 싫어 창문을 꼭 닫고 생활하지만 에어컨 없는 집도 많은 쿠바에서는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틀고 생활하는 집도 많으니 윗집 소리가 곧잘 들릴 수밖에 없었다. 신기한 것이 아랫집 소리는 안 들린다. 그럼 우리 집 소리는 아랫집에서 들린다는 것일 테지?
특히 윗집 남자는 거의 같이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말도 많고 노래도 자주 부르는 사람이다. 그렇다고 노래를 가수처럼 잘 부르는 것도 아닌데 샤워하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인지 뭔지 알 수가 없다. 윗집의 주된 소음은 화장실 창문을 통해서 나와 그 굴뚝같은 통로를 타고 우리 집 방 창문으로 들어온다. 윗집 남자는 1살 배기 아기 아빠다. 이사한 지 얼마 안 되었던 올해 초, 젊은 부부와 아장아장 걸어 다니던 너무나도 예쁘게 생긴 여자 아기를 봤었다. 그 아기 아빠가 바로 윗집 남자. 그가 가장 자주 말하는 사람을 흠칫 놀라게 만드는 단어.
까야떼 (닥쳐)
스페인어로 “닥쳐”라는 뜻인데 스페인어를 잘 못 하는 내가 이 단어를 알게 된 것도 작년 가을이었다. 알고 지내던 버릇없는 쿠바노(쿠바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던 와중에 무슨 일이냐고 대화에 끼려던 내 옆에 있던 지인에게 말했던 그 단어였다. 나야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으니 그냥 지나쳤고 스페인어 능통자였던 지인은 굉장히 화가 났었다. 그리고는 제삼자에게 “쿠바노가 자기에게 닥치라고 했는데도 걘 실실 대화만 하고 있더라”라고 말하여 나는 무례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사실 닥치라는 말을 쓸 일이 있어야 그전부터 알아뒀을 텐데. 아무튼 그때부터 확실히 기억하는 그 단어 “까야떼 (닥쳐)”
아장아장 걸어 다니는 아기에게 닥치라니.
윗집 아기는 한 번 울면 자지러지게 울었다. 아기가 울면 그가 여러 번 외쳐댔던 말이 “까야떼 (닥쳐)” 일반적인 상식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애가 뭘 안다고. 처음에는 왜 저렇게 애가 울지?
울 때마다 왜 애 아빠라는 사람은 닥치라고 하지?
그것도 애한테?
윗집의 거의 모든 소리의 진원지가 화장실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로는 합당한 추측이 가능했다. 아기는 물을 싫어하는 건지 씻는 것을 싫어했나 보다. 아기를 씻길 때마다 울어댔던 것이고 아기를 씻기던 애 아빠는 그때마다 닥치라고 했던 것.
“쿠바에서는 애한테 보통 저래?”
“아니, 저건 매우 나쁜 행동이야”
윗집 남자의 행동은 같은 쿠바 사람인 A에게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었나 보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도 모든 부모가 교과서적으로 상식선에서 아이를 키우진 않을게다. 부모가 자식에게 쌍욕 하는 집도 있을 테니. 간혹 A에게 한국사람들도 놀랄만한 뉴스인 나오는 계모가 의붓자식을 죽게 만들었다라던가 부모가 친자식을 때려죽였다라던가 그런 이야기를 해주면 엄청 놀라곤 했다. 윗집이 시끄러울 때 한국에서는 층간소음으로 간혹 살인도 난다고 했더니 눈이 땡그래지면서 놀라며 무서운 나라라고 하긴 했었다.
“너네 나라는 왜 뉴스에 사건 사고가 안 나와?”
“그런 게 있어도 안 나와. 여긴 그런 흉악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아무 문제없는 나라거든.”
반어법으로 이야기하던 A의 모습을 보며, 왜 쿠바의 텔레비전 뉴스에서 그런 사건 사고 흉악 범죄에 대한 것들이 안 나오나 했다. 물론, 재판매를 목적으로 물건을 빼돌리고 사재기를 해서 집 안에 엄청나게 물건을 쌓아두는 것은 뉴스에 나온다. 본보기를 보여 이런 범죄를 저지를 시 모든 재산이 몰수당하니 조심해라 라는 것을 경고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뉴스 말이다.
윗집 남자는 성악을 하는지 그렇게도 노래를 해댔다. 매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노래를 부르면 단연코 그밖에 없었다. 어찌나 크게 부르던지. 가끔 웃기기도 했는데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만큼 윗집의 층간소음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아기가 뛰어다니는 것이라던가 드륵드륵 거대한 문 여는 소리 등은 자주 있는 일도 아니고 간혹 있는 일이니까. 하지만 널어놓은 빨래에 담뱃재가 떨어져 있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 A에게 부탁하여 조심해 달라고 말해달라는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것.
쿠바에 코로나가 시작되고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니 윗집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된 것은 사실이다. 쿠바에 흔히 볼 수 있는 일하지 않는 남자, 즉 한량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집에 있는 시간이 많고 외국에 가족이 도와줘서 그런 것인지 전동스쿠터까지 보유하고 있으니 그리 어렵지 않은 삶을 사는 것 같았다. 그에게 매일 하는 일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밤 9시마다 테라스로 나와 박수를 치는 것.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코로나 때문에 지금 가장 힘들게 열심히 일하고 있는 쿠바의 의료진에게 보내는 박수다. 아바나에서는 밤 9시마다 드라마 남자 친구에서 송혜교가 박보검의 어깨에 기대었던 그 요새에서 대포를 쏜다. 그 대포 소리에 맞춰 많은 사람들이 집 안에서 또는 밖에서, 특히 테라스나 창문에 나와 박수를 치며 환호성까지 지른다. 난 거실에 있거나 방에 있거나 그때그때 다른데 반해 윗집 남자는 항상 9시 전부터 나와있는 것 같았다. 간혹 거실에 있을 때, 열과 성의를 다해 환호성과 함께 박수를 열렬히 치는 그의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2020년 9월 현재 저녁 7시부터 통행금지가 있어 모두 집에 있음)
신기한 것은 꼭 그 시간만 기다리던 사람처럼 테라스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박수를 친다. 박수 잘 친 사람 상 준다고 하면 단연코 그가 받아야 할 것이다. 오늘도 그는 밤 9시에 테라스에 나와 박수를 쳐댔다.
언젠가 딸아이가 아빠에게 “닥쳐”라고 말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