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에서도 카드만 있으면 된다
7월 말, 드디어 쿠바에서 달러 상점을 처음으로 이용해봤다. 달러 상점이 생겼다는 소식은 얼마 전에 들었는데 어디에 어느 상점이 달러 사용이 가능한지 몰랐다. 그러다 지인이 보내준 달러 상점 목록을 보고 한 번 가보기로 했다. 비자나 마스터 카드만 들고 가면 되겠지 싶어 가볍게 카드를 챙겨 나왔다.
집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거리에 달러 상점이 있었다. 사람이 많이 몰리지 않는 곳이라 그나마 사람이 적을 것이라 생각하고 갔더니 이게 웬걸?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듣자 하니 맥주가 들어왔단다. 언제나 쿠바에서 줄을 설 때 하는 말, 울티모(마지막)를 외쳤다. 그럼 누군가 자기가 울티모라고 표시해준다. 아무도 안 알려주면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누가 울티모냐고 물어야 한다. 쿠바에서 그나마 질서가 유지되는 유일한 시스템이 아닐지.
**울티모 페르소나(마지막 사람) 또는
**울티모 둘 다 무관
울티모! (마지막!)
달러 사용이 가능한 카드를 가지고 있는 쿠바인이 이렇게나 많아?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아서 놀랐다. 대부분 해외에서 가족이나 친지들이 돈을 부쳐줬겠지? 난 도대체 이 쿠바라는 나라의 시스템을 이해할 수가 없다. 해외의 가족이나 친척들이 금전적으로 도와준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나라, 쿠바인에게 타인이 주는 도움이란 너무 당연시 여기는 경향이 크다. 외국인은 돈을 쉽게 번다고 생각하는 이상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 뭐든 쿠바와 비교하면 그 말은 맞다. 쿠바인의 월급은 30달러 남짓, 직종에 따라 다르고 노동시간도 천차만별이지만 생활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같은 시간 동안 노동을 해도 니들은 큰돈을 벌지만 자기들은 아무것도 아닌 돈을 번다는 생각.
생각 외로 달러 계좌를 보유하고 있는 쿠바인들이 많았고 그들이 많이 기다리고 있었기에 나의 대기시간도 길어졌다. 그나마 이 상점이 다른 상점에 비해 덜 알려졌기에 사람이 적은 편. 그렇게 한 시간 반을 기다려 쿠바의 달러 상점에 입성했다. 예전에도 왔었던 곳이었지만 그때는 달러 상점으로 탈바꿈하기 전, 사실 달러 상점이라고 해서 뭔가 특이하거나 많은 물건을 보유하고 있거나 그런 것이 아니다. 비싸고 꼭 필요는 없지만 있으면 좋은 것들 위주로 판다. 예를 들면 쿠바인들이 4시간 넘게 기다려서 사는 닭은 없고 비싼 냉동 소고기만 판다.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난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쇼핑을 했다. 한국에서도 마트에 가면 필요한 것만 소량씩 샀기에 카트를 끌 필요도 없었는데 쿠바에서 카트를 끌고 다니며 물건을 마구 담았다. 잠깐 미쳤던 것 같다. 일 년 넘게 쿠바에서 따까냐(구두쇠 여자)로 살아왔건만, 코로나 이전에도 외국인들 많이 가는 레스토랑도 되도록 안 갔던 나인데 이 날은 마음껏 카트에 담았다. 어디서든 카트에 물건을 담을 때마다 계산하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것조차도 하지 않았다. 결제금액을 생각하지 않고 이것저것 담아 카트를 가득 채웠고 과감하게 결제했다. 핸드폰에 사진으로 저장된 여권을 보여주니 이것저것 체크하고 모든 과정이 끝났다. 집으로 갈 때는 자전거 택시를 탔다. 다 들고 갈 수가 없었기에.
“달러 현금 사용은 가능한가요?”
“아니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내가 달러 현금을 낸다 한들 그들이 나에게 줄 달러 거스름돈이 없을게다. 거스름돈을 현지 화폐로 받는 방법 외에 다른 수가 없고 위폐인지 아닌지도 모를뿐더러 고액 화폐를 받고 모든 잔돈을 다 거슬러주기도 애매하니 카드 결제만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보름 후, 한 번 더 같은 달러 상점에 갔다. 그리고 생전 처음 치즈를 구매했다. 그것도 한국 돈으로 약 3만 원어치를. 지인 말로는 저렴한 편이라고 했는데 인터넷 가격을 알아보니 용량 대비 저렴한 편이었다. 쿠바의 달러 상점에서 판매하는 식료품들은 꼭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있으면 좋은 것들 위주다. 그래서 돈을 더 쓰게 된다. 현지인들이 많이 가는 작은 구멍가게 같은 곳에서 그들이 만들어 파는 주스보다 두 배 이상 비싼 주스를 여러 개 사고 굳이 꼭 필요하진 않지만 칵테일 만들 때 넣으면 좋은 토닉 워터를 샀다. 달러 상점은 달러가 부족한 쿠바 정부가 달러 소비를 촉진시키는 데는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했다.
대중교통이 다시 통제되기 전, 8월 중순쯤 가장 큰 달러 상점에 합승택시를 타고 갔다. 합승택시도 코로나 이후로 처음 타봤으니 5개월 만이었다. 이 상점은 대형 마트 수준의 달러 상점으로 아바나 시내에서는 먼 곳이었지만 뭔가 대단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큰 맘먹고 갔다. 게다가 A의 집과도 가까워서 겸사겸사.
30-40분 전에 도착하는 걸로 시간 계산을 하고 왔는데 문 여는 시간을 착각해서 거의 영업시간 시작 15분 전에 도착했다. 아바나 시내에서 공항 가는 길 중간쯤의 큰 도로변에 있는 상점이라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았는데 역시나 여기도 사람이 많았다. 단지 아바나 시내와 다른 점은 대부분 자기 차나 오토바이를 이용해 왔다는 점. 얼마나 기다릴지 걱정이 앞섰지만 생각 외로 빨리 매장 내부로 입장할 수 있었다.
어느 마트라도 의료진은 줄을 서지 않고 입장이 가능하다. 그래서 우리 앞에도 매장으로 들어갈 때쯤 의료진이 자연스럽게 함께 들어갔다. 매장은 생각보다 엄청 컸다. 매장이 커서 한 번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다른 일반 달러 상점에 비해 많아 줄은 길어도 금방 들어갈 거라고 A가 장담했던 이유가 바로 이거였다.
쿠바에 이렇게 큰 마트는 처음이야!
정말 규모가 엄청났다. 물건도 다양했다. 염색약도 종류별로 진열되어 있었다. 그렇게 찾아다녔던 스시쌀(둥근 쌀)도 어마어마한 양에 종류별로 있었다. 문제는 샴푸의 경우 코로나 이전에 쿠바에서 가장 사기 쉬웠던 세달Sedal(약 3,600원)은 없고 두배 이상의 값인 로레알만 있었다. 한국 돈으로 거의 9천 원이나 하는 이 샴푸를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쿠바 사람들은 두 개 이상씩 사더라.
도대체 이 사람들은 얼마나 부자인 거지?
본인이 부자인 건가? 아니면 해외에서 돈 부쳐주는 가족이 돈을 많이 부쳐주는 건가?
땀 흘려 번 돈이 아니라 쉽게 쓰는 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다 생각하고 큰 맘먹고 샴푸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또 맥주를 한 박스 샀다. 다른 것보다 스시쌀을 사서 너무 기분이 좋았고 고민 끝에 냉동 조개도 샀다. 나중에 집에 와서 몇 번 요리를 해 먹고 조개를 더 사 올걸 하는 후회를 했더라는.
쿠바에 달러 상점을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1/10도 안된다고 들었다. 하지만 달러 상점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집 주변의 상점 중 절반은 달러 상점으로 바뀌고 있었다. 달러 상점을 이용할 수 없는 쿠바인들은 일반 상점에서 장시간 줄을 서야 한다. 물론 달러 상점도 줄은 마찬가지다. 여전히 그들은 고된 시간과의 싸움을 하고 있다. 사회주의 국가라 할지언정, 빈익부 부익빈은 존재하고 그 격차는 점점 더 심해질 것이라는 씁쓸한 현실이 안타까웠다.
코로나로 더 힘들어지고 있는 쿠바, 곧 국경이 열리고 다시 관광객을 받을 예정이라는데 과연 그들이 코로나를 잘 통제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