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년을 버티고 쿠바를 탈출하다
쿠바에서 3월 말부터 9월까지, 반년을 코로나가 시작된 쿠바 아바나에서 살았다. 대부분 집에서 시간을 보냈고 시장이나 마트 갈 때만 밖에 나갔다. 여름에는 말레꼰에서 일몰을 세 번 봤던 적도 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6-7월에 다 쿠바를 탈출했고 나는 조금 더 있다가 8월쯤 한국에 가려고 했지만 항공권 확인을 늦게하는 바람에 더 미뤄졌다.
문제는 8월 중순 이후로 쿠바에서 멕시코 가는 특별기가 칸쿤 경유 미국 마이애미행으로 바뀌었다는 것. 미국에서 쿠바발 마이애미행 항공편을 금지시키는 바람에 쿠바-칸쿤-마이애미의 우회 항공편이 생겼다. 그래서 쿠바에서 칸쿤까지 260달러에 판매되던 특별기가 쿠바-칸쿤-마이애미까지 540불을 내야 했다. 내가 칸쿤에서 내린다고 하여도 모든 금액을 내야 했기에 고작 40분 정도 걸리는 쿠바-칸쿤 항공편을 60만 원 넘는 금액을 낼 수가 없어 다른 경로로 나갈 방법을 생각해야 했다.
8월 중순 이후부터는 유럽행을 알아봤다. 당시만 해도 유럽에 코로나 확진자가 몇만 명에서 몇천 명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였고 유럽만 들어가면 한국행 항공권은 쉽게 구할 수 있었기에 괜찮은 선택지였다. 우연히 9월 초에 있는 파리행 항공권을 발견했고 연결 편이 아니기 때문에 프랑스 입국이 가능한지 알아봐야 했다. 프랑스에 있는 한국 대사관에 문의하였으나 답변은 애매했고 쿠바에 있는 프랑스 대사관에 문의해보는 것이 정확하다고 조언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쿠바의 프랑스 대사관에 연락했더니 쿠바발 프랑스 파리행은 의료진 및 인도주의적인 목적 외에는 입국이 안 된다고 했다. 그렇게 프랑스행 좌절.
아바나 공항의 출도착 편을 검색해보면 이탈리아에서 출발하거나 이탈리아로 가는 항공편이 꽤 많았다. 이탈리아에 있는 대한민국 대사관에 연락해본 결과, 입국은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하지만, 항공사 홈페이지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항공권이라 쿠바에 있는 이탈리아 대사관에 문의하여 우여곡절 끝에 블루 파노라마 항공사 특별기 예약을 관리하던 곳과 연결이 되었다. 문제는 당장은 예약이 어렵고 대기를 걸어놓으면 9월 말쯤 예약이 가능하단다. 단, 출발 전 PCR테스트 음성 확인서가 꼭 있어야 한다고 했다. 우선은 대기를 걸어놓고 다른 유럽행 항공권을 찾아보고 있었다.
마지막은 스페인, 마드리드로 가는 항공권을 9월 중순쯤 발견했고 바로 스페인에 있는 대한민국 대사관에 연락을 했다. 입국에 아직 별다른 제한은 없다는 답변을 받았지만 당시 유럽에서 코로나 확진자가 가장 많은 나라여서 망설이던 찰나였다. 마음먹고 항공편 결제 전까지 갔으나 갑자기 항공권 가격이 엄청나게 올라 포기하고 말았다. 그 후로도 마드리드로 가는 항공편은 있었다. 하지만 그 후의 항공편을 결제하기 전, 들은 소식은 출국 전 PCR테스트 음성 확인서가 필요하다는 답변이었다.
쿠바는 수치상으로는 매일 50명 내외의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었으나 다른 국가에서 그 수치를 믿지 않는 것인지 무슨 이유에서인지 나름의 코로나를 잘 극복하고 있는 쿠바라는 나라에서 출발하는 여행객을 쉽게 입국시키지 않고 있었다.
9월 말에 대기를 걸어뒀던 이탈리아행 항공사에 연락을 했다. 10일은 더 기다려봐야 좌석이 생길지 안 생길지 안다는 황당한 답변을 접한 후, 이탈리아행은 접기로 했다. 그렇게 망연자실한 상태로 항공권을 검색하다가 우연히 코파항공의 쿠바 아바나-파나마-멕시코시티 320달러짜리 항공권을 발견했다. 그리고 바로 파나마에 있는 대한민국 대사관에 연락을 했고 늦은 밤인데도 불구하고 바로 답변을 받을 수 있었다. 게다가 코파항공에 직접 문의하는 것이 정확하다는 조언을 듣고 연락을 시도했지만 실패, 대사관측에서 직접 코파항공에 연락을 해주신다고 했지만 거기서도 실패, 결국 파나마의 보건부에 연락해서 9시간 이하 경유는 PCR테스트가 필요 없다는 답변을 전달해주셨다. 어찌나 감사하던지.
PCR테스트를 당시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A가 병원을 급하게 알아봐 줬다. 쿠바에서 쉽게 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PCR테스트받으려고 대기 중인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10일이나 걸린단다. 아무래도 쿠바인에게는 의료비가 무료이니 코로나 테스트를 받고 싶으면 부담 없이 병원에 가면 그만 일게다. 그럼 지금 코로나 확진자로 나오는 인원도 실시간으로 반영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전혀 몰랐던 사실이었다. 세계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수치상으로 코로나 확진자보다 진짜 코로나에 걸린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 의사 수가 많은 나라인 쿠바에서도 수요 대비 공급이 부족하면 이렇게 되는 법. 다행히 PCR테스트를 받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월요일에 항공권을 확인하고 화요일에 결제하고 수요일과 목요일에 짐을 싸고 금요일에 출국했다. 대사관이며 PCR테스트며 이것저것 알아보느라 결제를 하루 미루는 바람에 가장 저렴한 등급의 항공권이 잠시 매진된 사이에 그다음 등급의 항공권으로 결제할 수밖에 없었다. (결제하자마자 다시 저렴한 등급 좌석 생김;;)
그렇게 난 숨쉴틈도 없이 그리고 A와의 헤어짐에 슬퍼할 겨를도 없이 쿠바를 탈출했다.
곧 쿠바 공항이 열리고 관광객을 다시 받는다고 한다. 입국 시 50달러를 내고 코로나 테스트를 무조건 받아야 한다고. 정말 달러가 부족한가 보다. 어떻게 해서든 달러를 벌어야 하는 쿠바. 미국 대통령으로 바이든이 선출되고 트럼프 시대보다 조금 더 살만해질지 아닐지는 두고 봐야 할 듯.
쿠바 경제가 어려워져 국경을 열긴 열어야 하는 상황인 데다 한 달 전만 해도 PCR테스트받는데 10일이나 걸렸으니 지금 발표되는 코로나 확진자 수도 믿을 수 없다는 의견을 종종 듣는다. 쿠바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 뭐든 철석같이 믿고 쿠바는 안전해요 라고 말하며 이 시국에 쿠바 여행이 안전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쿠바를 잘 안다고 할지라도 너무 포장하지 말고 좀 솔직해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