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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작가야 Jan 10. 2024

하늘엔 자살자를 위한 병원이 있었으면 좋겠다

모두가 편안함에 이르길 바라며 


전부터 '자살한 사람들은 지옥에 간다'라는 이야길 들었던 것 같다. 다른 나라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에선 특히나 자살한 사람들은 사후세계에서도 벌을 받는다는 말이 많은 것 같다. 나는 무교가 아닌 모태신앙을 가지고 있지만  (무교나 마찬가지처럼 살고 있지만) 정말 사후세계가 있다고 한다면 그곳에는 부디 자살자들을 위한 지옥이 아닌 병원이 있었으면 좋겠다. 

 

걸그룹 출신 여배우가 죽고 난 뒤 한참이 지났을 때였다. 그 가수에 대해 '예쁘다'라는 생각과 여러 논란을 보며 '안타깝다'라는 생각은 가졌지만 그다지 관심은 없는 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내 꿈에 그 가수가 나타났다. 




어느 텅 빈 사무실. 창밖을 바라보지는 않았지만 짐작건대 아마 3층 이상은 되는 높이였을 것이다. 시멘트 바닥에 하얀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는 벽면. 네모난 텅 빈 공간에 드라마 속 취조실에서 쓸 것 같은 하얀지 회색인지 알 수 없는 철제 테이블. 그리고 나는 그녀를 보고 앉아있었고 내 왼편에는 정장을 입은 남자 한 명이 앉아있었다. 나는 꿈속에서 뭔가 열심히 설득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없다는 이야기와 함께. 그러나 그 설득은 통하지 않은 모양이다. 곧이어 그녀는 일어나더니 그 공간에 있던 유일한 철제문을 열었다. 그리고 잠시 뒤돌아 나를 쳐다보곤 tv에서 보던 무척이나 예쁘고 환했던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렇게 빛 너머로 떠나버렸다. 나는 그 미소를 보곤 꿈속에서 한참을 울었다. 


꿈속에서 깨어난 나는 한참을 의아해했다. 무슨 오지랖일까? 좋아했던 연예인도 아니면서 왜 난 꿈속에서 그렇게나 붙잡으려 했을까. 그리 열심히 죽는 걸 막고 싶어 했을까. 왜 설득하지 못한 나를 탓하며 한참을 울었을까. 무의식 속에서 어린 그녀가 죽은 것이 많이 안타까웠나 보다. 


때론 유명인들이 죽을 베르테르 효과와 같은 모방자살이 일어난다고 한다. 그들은 우릴 알지 못하지만 우린 그들이 마치 아는 사람처럼 친숙하다 착각하여 감정에 동요가 생기는 거겠지. 그러나 난 단순히 그녀가 유명인이기에 안타까워한 같진 않다. 


이십 대 초반. 나 역시 자살을 생각했었으니까. 





'옥탑방의 문제아들'을 보는데 개그맨 양세형이 나왔다. 최근 그의 시집을 선물 받아 읽고 있었기에 재미있게 방송을 보고 있는데 한때 너무 힘이 들어 떨어져 죽을 생각을 했었다고 했다. 그런데 창틀에 팔이 긁혀 무척이나 아파하는 자신을 보며 이런 작은 아픔도 못 견디면서 무슨 죽음을 생각하나 싶어 얼른 정신을 차리고 청소를 했다고 한다. 그 이야길 듣다 문득 내 과거가 떠올랐다. 


지금은 주변인들도 모두 아는 이야기이기에 할 수 있는 나의 삶에 대한 생각을 바꿔준 계기이기도 하다. 

하고 싶은 일이 아닌 현실에 쫓기며 내 꿈과는 전혀 상관없는 병원에서 일을 하다 우울증이 찾아왔다. 그 당시 상황도 좋지 않았고 돈을 벌어도 모이지 않는 현실이 막막했다. 출근길 버스에 앉아 창밖을 보고 있으면 그냥 눈물이 났고 희망도 없었다. '그냥 다 놔버리면 편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이 자꾸 나를 잠식했다. 

내가 일하던 피부과에는 마취주사가 있었기 때문에 저걸 놓으면 좀 더 덜 아프게 떠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했다. (죽을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픈 건 엄청 따졌다) 어느 날은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도저히 안될 것 같아 일을 그만두었고 돈이 안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 영화 연출부 막내로 들어갔다. 그리고 다행히도 차츰차츰 정신과 마음의 회복이 되었다.  


시간이 지나서야 그때 내가 우울증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왜 말하지 않았냐며 지인들은 뭐라 뭐라 했지만 그 당시 털어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그냥 다 싫었기 때문이다. 말한다고 해서 해결될 일들도 아니고 지금 내 심적인 고통만 사라져 버렸으면 하는 생각.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부정적인 생각들. 그것들은 내가 하고 싶지 않아도 내 안에 머무는 생각과 기운이었다. 


그 일을 계기로 나는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이 또한 지난 간다'라는 생각을 품고 살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힘들면 힘들다 주변에 말을 하게 되었고 이야기가 하기 싫을 땐 글을 쓰기도 하고 스트레스가 받을 땐 나만의 취미생활로 풀기 시작했다. 또 한 가지는 예술을 통해 사람들이 행복해지길 바라며 지금의 일을 하게 되었다.  





그래. 자살은 스스로를 죽이는 살인일 수는 있으나 자살을 떠올리는 사람들은 현재 삶이 지옥이다. 그 시간만 무사히 버티고 지나가면 내일이 온다는 걸 깨달을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울 땐 그 힘든 시간들이 가장 느리게 간다고 한다. 그래서 정신적 고통이 더 큰 거라 전문가들은 말한다. 그 힘듦으로 인해 '내 삶만 포기하면 괜찮아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조금 더 참고 견뎌주었으면 싶고 어떨 땐 어리석다 싶을 정도로 안타까운 죽음도 있지만 타인의 고통을 우리가 당사자도 아니면서 알 수가 있을까? 


그래서 신이 있고 사후세계가 있는 거라면 그곳엔 그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마지막까지 살면서 힘들었던 게 있다면 부디 그곳에선 치료받고 마음의 평화를 가졌으면 좋겠다. 



우울증은 감기와도 같은 병이라 누구나에게 찾아올 수 있다. 그리고 살면서 한 번쯤 정말 힘든 순간도 찾아온다. 그때마다 모두가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꽤 많은 사람들이 그 시간들을 겪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중엔 자신만의 방법으로 힘듦을 견디고 이겨내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이겨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끔은 하늘에서 잘못 안 탓일까?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을 주기도 하니까. 





얼마 전 유명인의 기사를 읽고 또 한 번 안타까웠다. 유명인이기에 그 행실에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잘못된 절차로 삶까지 빼앗는 고통까지 주어선 안되었다. 그리고 오지랖일 수는 있겠지만 부디 그의 가족들이 버텨내고 역시 어느 배우의 말처럼 편안함에 이르렀길 바랐다. 


올해 처음으로 새해 일출을 보며 '올 한 해 열심히 살아야지!' 하고 다짐을 하며 시작했는데 올해 한층 더 단단해지는 사람이 되어보는 걸 추가해야 할 것 같다. 그래고 올해는 많은 사람들이 힘든 현실 속에서도 끝끝내 잘 버티고 그 시간을 이겨내 안타깝고 슬픈 뉴스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모두가 편안함에 이르는 2023년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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