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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주 Jul 16. 2022

논두렁 가수들 1

BGM. 아이 좋아라 (이혜리) 

바야흐로 2022년. 80~90년 대생들의 분더캄머이자 흑역사의 요람, 싸이월드가 복구되었다. 나 역시 20대를 지나며 싸이월드에 사사로운 기록을 꽤 많이 남겨둔 사람 중 한 명이었고, 싸이월드의 부침을 함께 해 온 세대 중 한 명이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 싸이월드가 복구되며 과거의 사진첩이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되었다.   


아직 복구가 안정적으로 끝난 게 아니었는지, 사진첩을 여는데 로딩이 유난히 길었다. 그러면서도 젊은 시절의 내 모습이 신기하고 기특해 사진마다 눈도장을 찍었다. 여러 개의 폴더 중 인상적인 것은 '테레비와 라디오'. 그러니까, 방송국에서 일하며 만난 인연과 있었던 일들이 기록되어 있는 폴더였다. 지금도 죽 때리며 만나는 동지들부터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까지, 그들과 어울려 놀던 철없던 시절의 내 모습을 보며 웃다가, 가수들의 모습에 눈이 멈췄다. 


2007년, 내가 몸 담고 있던 TV 프로그램은 농촌으로 찾아가 경로잔치를 열어드리는 콘셉트였다. 더없이 친근한 두 명의 진행자가 마을 어르신들의 대소사를 뉴스처럼 전하기도 하고(마을 해치를 언제 다녀왔다든가, 누구네 아들 딸이 어디로 발령을 받았다든가, 누구네 소가 송아지를 낳았다든가 등등), 방물장수가 무작위 선물을 드리기도 하고, 지역 미용실과 연계해 무료로 파마와 커트를 해드리기도 하고, 마사지도 해드리고, 식사도 대접하고, 아무튼 찧고 까불며 어르신들에게 활력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인 프로그램이었으니, 그 판에 노래가 빠질 수 없었다. 


내가 작가로 투입되었을 때 이미 '우리 동네 명가수'라는 코너가 있어 언제나 노래는 넘쳐났다.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당연하게도) 트로트를 불렀고, 그때 귀동냥으로 새로 알게 된 노래도 많았다. 어르신들의 노래 사랑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해서, "'우리 동네 명가수' 코너에 사전 명단을 올리지 않은 분들에게는 마이크를 못 드린다, 나중에 촬영 끝나면 노래하시라"라고 말하면 "그런 게 어딨노!" 하면서 무대에 난입하거나, "거 1분도 안 걸리는데 좀 해주지" 하면서 우리를 설득하거나, "느뜰끼리 다 해무라!" 하면서 현장을 박차고 떠나거나, 아무튼 다이내믹한 상황이 펼쳐지곤 했다.  


그리고 내가 투입된 뒤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진짜 트로트 가수를 마을에 초청하는 것이었다. 'TV 프로그램에서 가수를 부른다'는 말은 너무 당연해서 무슨 진리처럼 들리기도 하지만, 당시 촬영이 이뤄지던 현장을 생각해보면 조금 뜨악해지는 부분이 있다. 당시 프로그램은 수확을 마친 논두렁이나 마을회관, 마을 당산나무 아래 등 바닥에 새파란 방수천막, 일명 '갑바'를 깔고 촬영이 진행되었으니 그야말로 '쌩바닥'이었다. 그러니까, 가수가 설 만한 무대가 없었다는 뜻이다. 좋게 말하면 어르신들과 똑같은 눈높이에서 노래한다는 뜻이고, 나쁘게 말하면 가수 대접이라고는 없는 막무가내 방송이었다는 뜻이다. 


출연료도 문제였다. 지금은 더욱 그렇지만, 지역 방송국은 제작비가 넉넉하지 않다. 살림을 쪼개고 쪼개어도 가수들에게 줄 수 있는 출연료는 '진짜? 진짜 이거밖에 안 준다고?' 누구나 되물을 만큼 턱없이 짰다. 대부분의 가수가 서울 수도권에서 출발해 온다고 생각하면 차비는 고사하고 도로비도...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그러니 섭외를 맡은 막내작가는 때마다 어떻게든 프로그램의 취지를 잘 포장해 설명하거나 때론 읍소하는 방법 밖에 없었다. "저어, 저희가 마을 어르신들한테 경로잔치를 열어드리는 콘셉트의 프로그램이거든요. 그러니까 봉사활동 온다 생각하시고..."  


제대로 된 무대도 없고, 출연료도 없다시피 한, 서울 기준 편도 5시간의 머나먼 남쪽 지역 방송국에서 펼쳐지는 녹화. 가수들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미리 말하자면, 강진, 김용임, 박상철, 우연이, 이혜리 등 많은 트로트 가수들이 논두렁을 다녀갔다. 무대는커녕 단상도 없는 논두렁에서 마이크를 쥐고 서야 했던 가수들은 어떤 표정이었을까.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노래를 했을까. 또 한번 미리 말하자면, 그들은 예술가였다. 노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행복해하던 '논두렁 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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