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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주 Nov 25. 2019

일시 폐경

생식기 04.

일도 건강해야 할 수 있다


이야기를 계속 쓰려고 했는데, 그 사이 너무나 바빴다. 일이 들어오면 늘 짧은 고민을 하다 통장 잔고를 생각하며 늘 ‘네, 알겠습니다!’로 마무리한다. 프리랜서란 그런 것이다.


그러나 바쁜 것도 몸이 허락해 주어야 가능한 일이다. 26일 주기로 칼 같이 생리를 할 때는 절대 불가능했을 스케줄을 요즘 소화하고 있는데,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내가 지금 생리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생리통 때문에 주변에 얼마나 못할 짓을 많이 했는지. 우박처럼 후두둑 떨어지는 생리혈과, 깊고 찌르는 듯한 생리통에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나 오늘 못 나가겠어…” 나가기 한 시간 전에 약속을 취소한 일이 부지기수다. 마감 시한을 못 지킨 것도 여러 번, 상대로서는 상당히 어이가 없었겠지만, 그 때 나는 정말 생사를 오가고 있었다. 그랬던 내가, 생리를 쉬면서 인간성을 회복해가고 있다.


수술 후, 이제는 자궁을 '지금 모양 그대로 관리'하는 것이 유일한 치료 방법이다. 생리를 하게 되면 여성호르몬이 분비되며 다시 자궁을 자극하고, 이 경우 다시 선근종 병변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참, 자궁선근증은 불치병이다.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세계의 엘리트들이 제발 좀 도전하고 연구해줬으면 싶지만, 아무래도 이쪽은 돈이 되지 않는 모양이다. 내가 한 수술은 생리통을 다소 덜어주는 조치일 뿐, 완벽한 치료법이라고는 볼 수 없다. (그래서 많은 경우, 수술을 망설이거나 하지 않기도 한다. 생각해보라. 전신마취에 배까지 갈라가며 수술을 했는데, 또 발병한다니! 그럼에도 내가 수술을 한 이유는 매달 겪는 생리통이 너무나도 극심했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와, 자궁을 지금 모양 그대로 관리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는, 생리를 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생리라는 터널을 주기적으로 지나야 하는 30대 중후반의 여성. 이 경우 억지로 생리를 억제하는 수밖에 없다.  

    

또 하나의 방법은 출산을 하는 것이다. ‘출산’이라는 역할을 수행하고 난 뒤에는 자궁이란 이제 더이상 필요 없는 장기이므로, 깔끔하게 적출해 내는 것이 의사들이 생각하는 ‘베스트’이다.


"생리 휴가 중입니다. 아니 그 휴가 말고요."  


내가 선택한 방법은 (당연히) 생리를 억제하는 것이었다. 수술 후 넉 달 동안은 주사요법을 썼다. 흔히 ‘데포주사’라고 불리는 ‘로렐린 데포’ 주사를 맞는 것이다. 비슷한 것으로 '루피어 데포'도 있다. 주사는 한 달, 정확히는 28일에 한 번 맞는데, 엉덩이가 아닌 배에 맞는다. 한 번은 오른쪽 배에, 한 번은 왼쪽 배에 맞는데,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양쪽 난소가 매달 번갈아가며 난포를 배출하기에 그 쪽에 직접적으로 영향이 있으려나 짐작해볼 뿐이다.


주사는 상당히 아팠다. 맞은 뒤 이틀 정도는 누르면 근육이 뭉친 듯한 통증이 느껴졌고, 실제로 그 주변 피부가 딱딱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옷이 닿으면 쓰라린 느낌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주사가 가져다주는 부작용에 비하면… 이틀 간의 통증은 견딜만한 것이었다. 로렐린데포는 최대 6회 까지만 맞을 수 있다고 했다. 독하기도 하고, 부작용도 심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주사는 네 번으로 마무리하고, 지금은 약물요법을 쓰고 있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매일매일 약을 챙겨먹는 것이다. 내가 먹는 약은 ‘비잔’으로, TV에서 피임약이라 광고하는 ‘머시론’과 그 기능이 같다. 비잔은 매일 비슷한 시간에 복용하는 것이 좋은데, 역시 호르몬 분비와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내 새끼손톱보다 조금 작은 분홍색 알약을 매일 같은 시간 하루 한 번 먹는 것으로, 나는 잠시 생리와 이별하고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문제는 비잔 역시 부작용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30대에 맞은 폐경기

  

결국, 지금 나는 잠정적으로 생리를 하지 않는 ‘폐경기’ 상태다. 생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여성의 몸에 상당히 큰 변화를 가져오는데, 생리통이 사라졌다는 것만 제외하면 그 변화가 썩 좋은 변화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이제는 '폐경'이 아닌 '완경'이라는 단어를 쓰자고 많은 사람들이 외치고 있지만, 솔직히 말하면 단어는 아무래도 좋다. 실제 많은 ‘폐경기’ 여성들이 최대한 폐경을 미루기 위해 여성호르몬을 처방 받아 먹는다는 현실이 더욱 신경이 쓰일 뿐이다.


생리통으로 지옥과 지옥을 오가던 사람들 말고는, 폐경이란 그리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1차적으로는 폐경과 동시에 몸이 아프기 때문이고, 2차적으로는 심리적인 변화가 일기 때문이다. 주사를 통해, 약물을 통해 억지로 여성호르몬 분비를 억누른지 이제 5개월. 일시 폐경을 맞은 내 몸은 생전 겪어본 적 없는 다양한 증상을 경험해보고 있는 중이다. '생리'라는 생리적 루틴을 벗어나는 일. 그것은 내 몸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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