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세 개의 질문을 드립니다. 아쉽게도 객관식이 아니고 주관식입니다. 잘 읽고 답해주시기 바랍니다.
① 뒤집힌 자라가 뜨거운 태양에 점점 말라서 죽어가는데 당신은 돕지 않는다, 왜인가?
② 생일날 누가 당신에게 가죽 지갑을 선물한다면?
③ 잡지를 보다가 여자의 누드 사진을 보게 된다면? 남편이 그 사진을 벽에 붙인다면?
정답이 있냐고요? 정답은 없습니다. 단지 이 질문이 말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당신의 감정이 어떨지 말씀해 주시면 됩니다. 당신이 죽어가는 자라를 도와주지 않는 이유는 뭔가요? 가죽 지갑을 선물 받으면 기분이 어떨까요? 남편이 여자 누드 사진을 벽에 붙인다면 화가 나나요, 나지 않나요? 이게 뭐냐고요?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서 인간인지, 복제인간 '리플리컨트(replicant)'인지를 가려내기 위해 던지는 질문입니다. 가상 상황에 대한 눈동자 홍채의 변화를 분석하면 인간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리플리컨트는 대답을 해내지 못한다는군요. 아, 당신도 대답을 잘 못 하겠다고요? 그렇다면 당신도 리플리∙∙∙∙∙∙.
위 내용은 책 '사람에 대한 예의'에 나오는 영화 <블레이드 러너> 인용 부분이다. 책을 읽다가 반가운 부분이라서 문득 다시 이 영화가 생각났기에, 글로 옮겨본다. 작가가 저 내용을 인용한 이유는 심플하다. 의미 있는 삶이 되려면 누구에게도,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는 자신만의 기억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자체도 말한다. 인간이 영혼을 가진 존재라면, 그 영혼은 기억에서 나온다는 것을.
포레스트 검프 / 타이타닉 / 트루먼 쇼 / 백 투 더 퓨쳐 / 블레이드 러너 / 캐스트 어웨이 / 이터널 선샤인 /
중경삼림 / 스타워즈 시리즈 / 토이스토리 3
나에게 인생 영화를 꼽으라고 하면 보통 10편 정도를 말하고는 한다. 그중에서 최고의 인생 영화를 3편을 추려내서 말하라고 하면, 보통 이렇게 대답한다. '블레이드 러너 / 캐스트 어웨이 / 포레스트 검프'
오늘은 그중 첫 번째로, <블레이드 러너>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
저주받은 걸작?
이 영화 <블레이드 러너>에게 붙는 수식어는 '저주받은 걸작'이다. 1982년 야심 차게 개봉하여, 상업적으론
야심 차게 흥행 실패했다. 이 영화가 개봉하였을 시기는 그 유명한 <E.T.>가 개봉한 시기였다. 6월 11일에 <E.T.>가 개봉하고, 2주 뒤에 <블레이드 러너>가 개봉했으니.....
흥행 실패 후, 오랫동안 흑역사 취급을 받다가 훗날 영화 2차 시장(비디오테이프)을 통해서 재평가를 받으며 화려하게 부활한다. 또한 리들리 스콧 감독님이 그 뒤로도 꾸준히 명작을 만들어내며, 명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장식하는 영화였으니 재평가받는 건 당연한 결과 같다.
아무튼 그 뒤로 저주받은 걸작이라는 말을 들으며, 많은 영화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 마니아들 중 한 명이 나이기도 하다. 저주받았다는 표현은 싫다. 그냥 진실이 언젠가 밝혀지듯, 명작이 드디어 제대로 평가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래를 다루는 영화에서 유토피아 vs 디스토피아의 대결이 생긴다면, 압도적으로 유토피아를 그린 영화들이 대중들에게 폭넓게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디스토피아 영화들을 보면 좀 더 지금의 현실과 비슷해서 개인적으로 더 끌린다. 막연히 "좋아질 거야"라는 내용도 좋지만 좀 더 현실성 있는 건 디스토피아 쪽이라는 생각에, 이 주제들을 좋아한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우울한 미래를 반영하는 영화나 소설들. 나열하다 보니 뭔가 암울하다.
'폐기'인가, '퇴역'인가.
영화가 개봉할 당시에는 (영화 속 배경이 되는) 2019년 정도면 저렇게 차가 날아다니고, 복제인간까지 나올 정도라고 생각했나 보다. 거기에 사막과 부의 도시인 LA는 어두컴컴하고 동양인과 히스패닉이 넘쳐나는 동네로 묘사된다. 저 당시에는 일본의 버블경제로 미친듯한 성장 때문에, 미국 내부에서는 그 문화를 좋아하면서도 견제하는 성향이 강했다. 아마 '제대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훗날 미국은 일본 등 동양에게 추월당하고 이렇게 암울한 세상을 열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려고 한 건가 싶다. 실제로 이런 식으로 평가하시는 영화 평론가들도 많다.
아직 둘 다 도래하지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말해야 하나.
기모노를 입은 분은 한국계 미국인 배우 알렉시스 리 여사님이다.
아무튼 인간의 삶을 돕기 위해 인간과 아주 똑같이 만들어진 리플리칸트들. 어느 정도의 사고능력까지 가지게 되자 당연하게도, 이들은 자신들의 처지와 수명에 대한 불만이 컸고, 이에 인간에게 저항하게 된다. 그래서 식민지 행성에서 폭동이 일어나게 되고 리플리칸트가 지구에 거주하는 것은 불법이 된다. 그중 6명의 리플리칸트들이 지구에 숨어 들어왔기에, 블레이드 러너라는 특수경찰팀이 TF가 되어 보이트-캄프 테스트라는 홍채인식 반응 테스트를 통해 리플리칸트들을 감별하게 된다.주인공 데커드(해리슨 포드)는 은퇴한 경찰이지만, 국장의 협박으로 다시 복귀하게 된다.
영화를 보고 나면 의문이 든다.
도대체 왜 인간은 리플리칸트들을 감별해서 죽여야 하는 걸까. 모든 리플리칸트들은 위험한 것인가. 애초에 수명 자체도 4년이다. 그리고 인간과 거의 비슷한 사고, 인지 능력을 가졌다. 영화 속에서 감별되어 적발된 리플리칸트들은 사살된다. 구금하거나 재판 없이 사살이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고 본다. 영어 대사에서도 처형 대신 폐기, 은퇴(퇴역)를 뜻하는 retirement라는 단어가 쓰인다. 번역에서도 갈린다. 처음에는 폐기로 번역되었다가, 나중에는 퇴역으로 번역되었다.
리플리칸트들은위험하다고,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죽인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리플리칸트를 발견해서 당연하다는 듯이 쫒아가서 총으로 죽이는 형사 데커드(해리슨 포드)와 동료가 죽는 것을 보고 분노해서 공격하는 리플리칸트. 이 둘 중 누가 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타 이렐사
저 시대의 신분 피라미드처럼, 건물도 피라미드 형태이다. 극 중, 반란군 리플리칸트 리더 격인 로이가 어떻게든 진입하고자 하는 곳이기도 하다. 블레이드 러너 데커드는 극 중반까지 타이렐사나 경찰, 그리고 권력층의 견고한 자본주의 신분 피라미드 질서를 무너뜨리는 로이 같은 리플리컨트를 구별하는 임무가 최우선이었다. 반란군 리플리칸트 로이와 리플리칸트를 제조해서 막대한 부를 축적하고 자본주의 최정점에 올라 선 타이렐 회장. 이둘 중에도 누가 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일까?
진짜 인간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일까, 아니면 인간 가치의 진실과 거짓을 따지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일까.
당신에게는 인간다운 자유가 있는가
사람은 무엇인가, 나는 무엇인가. <블레이드 러너>에 나오는 것처럼 나는 사람이 맞다. 그런데 지금 인간답게 살고 있는 것일까.
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자. 인간은 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 속에서 그저 구성품 중 하나로 보일 때가 많다. 사회와 국가가 과연 인간을 위해 존재하기나 할까. 뭐가 더 우선시되고 있는가. 인권인가 사회인가.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가끔씩, 아니 자주 '사회유지'라는 것이 인권보다 훨~씬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극 중 타이렐 회장이 말한다.
"복제인간의 문제는 감정의 경력이 없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쌓여온 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감정을 잘 조절할 수 있도록 기억을 만들어줘야 한다."
리플리칸트들은 모델에 따라 동일한 기억이 심어져 있다. 이들은 경험하고 천천히 쌓여온 과거가 없다. 리플리칸트로 의심받게 되어 테스트를 하게 되면 돌발적인 질문이나 지루하게 반복되는 질문을 받는다. 처음에는 당황하다가 결국 감정적으로 동요한다. 그리고 인간에게 순종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제거 대상이 된다.
어, 이거 뭔가 이상하다. 요즘 시대 인간의 모습과 뭐가 다른가 싶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비슷한 생활 패턴을 가지게 되고, 비슷한 것을 보고 비슷한 교육을 받는다. 각자의 생활환경에 따라 다양하게 갈려지지만, 시험을 보기 위해 반드시 똑같은 답을 내야 하고 회사에 가서는 순응해야 한다.
인적성 검사와 면접은 "얼마나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 동반성장할 수 있느냐" 보다는 "얼마나 우리 회사에 순응할 수 있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인정하자. 아무리 블라인드 면접을 본다고 하더라도 이미 서류에서, 혹은 입사 후 생활에서 순응을 강요받는다. 그리고 뉴스와 인터넷, 특정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글들을 여과 없이 받아들이고 순응하기만 한다면 우리가 리플리칸트들과 무엇이 다르다는 말인가.
영화를 보면서 여러 가지 포인트에 집중하는 편이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분위기, 해리슨 포드 그리고 미모의 숀 영, 데릴 한나, 독특한 분위기. 하지만, 무엇보다 영화를 보고 나면 늘 다시 깨닫게 된다.
'왜 우리가 자유와 개성이라는 것에 그리 집착하고,
반복되는 일상으로부터 떠나가는 여행을 동경하는지를'
묻고 싶다.
당신은 인간다운 자유가 있는가?
그 자유를 느끼고 있는가?
빗 속의 내 눈물처럼 (마치며.....)
사람의 신체 중에 '눈'은 매우 중요하다. 물론 중요하지 않은 신체가 어디 있겠냐만은, 사람의 사고방식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눈이다. 아기가 태어나 눈을 뜰 때야 말로, 비로소 이 세상을 스스로 보기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도 '눈'이 많이 나오고, 꽤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것으로 나온다. 리플리칸트들을 구별할 때도 홍채 반응을 통해서 찾게 되고, 리플리칸트들을 그저 부속품 정도로 여기는 타이렐 회장은 로이에게 눈이 파이면서 죽임을 당한다.
전에 SNS에도 한번 쓴 적이 있는데, 사람의 성정性情을 보여주는 것도 눈이다. 그때 적은 내용은 이랬다.
"사과를 닮았던 국어 선생님은 늘 말씀하셨다.
얘들아, 사람은 눈이 중요해, 눈은 사람의 마음과 인생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지. 너희들도 살면서 눈을 늘 맑게 유지하는 습관을 길렀으면 한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영화 속에서 리플리칸트들의 눈은 무척이나 슬퍼 보인다. 그리고 절실해 보인다. 과연 우리 인간들에게는 그런 절실함과 진실함이 있을까. 누가 인간이고 누가 복제인간일까.
이 영화에서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엔딩 부분을 최고로 좋아한다. 데커드와 로이의 마지막 사투. 홍콩 누아르 영화 같은 분위기도 난다. 로이를 제외한 모든 리플리칸트는 데커드에게 죽은 상황이다. 리플리칸트 반란군 리더 로이는 친구들의 복수를 위해 데커드를 쫒으며 죽이려 한다. 하지만 몸이 점점 굳어가는 것을 감지하며 자신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된다. 옥상에서 로이는 추락하기 직전의 데커드를 살려내고 그를 향해 자조 섞인 마지막 말들을 남기며 죽는다.
무섭지만 너무나 멋있었던 로이
I"ve seen things you people wouldn"t believe.
Attack ships on fire off the shoulder of Orion.
I watched c-beams glitter in the dark near Tanhauser Gate.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Time to die.
- 난 너희 인간들이 상상도 못 할 것들을 봤어.
오리온의 별자리에서 함선이 불타는 모습.
탄하우저 기지에서 암흑 속에서도 반짝이는 C-빔도 봤지.
하지만 이제 곧 그 모든 기억들이 사라지겠지.
빗속의 내 눈물처럼.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이야.
그가 알고자 한 건 우리와 같았다.
우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며
얼마 동안 존재할 수 있는가?
리플리칸트들이 그토록 원했던 삶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로이처럼 마지막 순간에 깨닫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지금도 깨닫고 바꿔나갈 수 있다.
마지막 순간이 아닌,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생生을 사랑하자.
자신의 생生만이 아니라, 모든 이의 생生까지도.
무수히 많은 빗물을 맞으며 떨어지는 눈물 같은 인생이 아닌, 여러 집단의 부품이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존재로서 살고자 했던 로이.
주인공 데커드보다 로이에게 감정이 더 이입되는 이유는 지금의 내가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되서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