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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rad재진 Feb 21. 2021

인간으로서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 관람기

독일어 Gewalt.


영어 Power와 같은 독일어로, 독일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이 단어는 세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1. 힘, 권력, 권능

2. 폭력, 강제력, 완력

3. 위력, 맹위, 격렬


힘이란 무엇인가. 힘은 권력을 의미하기도 하고,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폭력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그 폭력이라는 단어에는 '타인의 인격을 침해하거나 파괴하는 힘'이라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누군가의 권력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폭력이 되기도 하는 사회이다.


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노동 유연화, 정리해고, 비정규직 고용은 기업의 당연한 운영수단이 되었다. 사람을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힘, 권력이 된 것이다. 운영 효율성을 위해, 주주의 권익을 위해, 다수를 위해, 어쩔 수 없다는 결정이라고 하지만, 그로 인해 발생되는 문제들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지고 있는가. 아무도 없다. 자본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파괴하는 폭력들이 왜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야 하는 것인지.


사회적으로 정착된 권력의 폭력화는 이제 일상이 되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되거나 동조자가 되기도 한다. 옆에서 그것을 목격하면서도 그것은 폭력이 아니라 생각하며 넘어가기도 한다. 그러다가 자신이 폭력을 당하게 돼도 그저 순응하게 되고, 자신의 탓을 하기도 한다. 이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손가락질받는 이상한 사회.




 

'인간으로서'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언이자,

'인간으로서' 바로 서겠다는 의지


장성란 영화 저널리스트 평론 중에서.


벼르고 벼르던 영화를 관람했다. 독립영화라서 개봉관을 잡기조차 어려웠던 것인지, 전국에  12개 극장에서만 현재 상영하고 있다. (내가 사는 인천에도 딱 1개관에서 상영 중이다!) 이 영화는 미리 예고편을 보고 간 것이 아니라서 그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온몸이 찌릿찌릿했다. 울림이 너무나 컸다.




영화 첫 장면부터 강렬했다.

낡은 차를 운전해서 한 시골에 도착한 여주인공 정은. 캐리어를 질질 끌면서 팩우유 비슷한 것을 마시는데, 알고 보니 그 음료는 팩우유가 아니라 팩소주였다. 그녀에게는 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정은은 그다음 날 한 허름한 창고 같은 하청업체에 가서 소장님을 만난다. 정은은 전기회사 본사 여직원인데, 지방(군산) 하청업체에서 1년 간 같이 근무하도록 발령 난 것이다. 말이 발령이지, 귀양과 다름없다.


정은의 본사 근무 당시의 모습이 중간중간 나온다. 녀는 정리해고 대상이 되어, 책상이 화장실 쪽으로 옮겨진 상태였고, 업무도 배제되고, 인사팀장에게 온갖 협박과 무시를 당한다.


권고사직 협박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는 정은. 결국 1년 뒤 복귀를 약속받고 지방 발령을 받아 내려오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하청업체의 주요 업무는 송전탑 수리, 보수공사이다. 과연 그녀가 할 업무가 있을까?


1년 간 근무평점을 잘 받으면 본사 복귀될 수 있지만 실전 경험이 전무한 사무직 직원이자 여성인 주인공이 현장에서 성과 내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하청업체 소장은 원청(본사) 직원이 발령받아 온 것도 못마땅한데 본사에서 파견 근로자의 급여 및 관련 예산은 모두 하청업체에서 부담하라고 지시한다.


거기에 끊임없이 인사팀장의 협박 전화가 걸려온다. 저 직원 빨리 내보내라고, 다른 소장들은 잘만 내쫓는데, 소장님은 뭐 하고 있냐고. (여기까지만 생각해도 뒷목 잡게 된다.)


주인공 정은은 처음에는 원리원칙대로 필요한 서류들을 만들고, 매뉴얼대로 교육과 관리에 대한 근무 기준들을 수립하려 애쓰나 아무도 따르지 않는다. 모두 텃세를 부리고, 재수 없어하는 상황.

(저 부분에서 크게 공감되었다. 나와 선배들이 종종 현업에 실사 및 교육, 점검을 나가면 현업 담당자들이 처음에는 이러한 시선으로 우리를 바라보고는 했다. 그러다가 점점 서로 맞춰가며 이해하게 되면서 친해지고, 협업을 하게 된다.)


하루는 송전탑 일을 돕겠다고 따라나선 정은. 송전탑을 보자마자 머리가 아찔해진다. 퇴근 후 병원에 방문해서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평소 고소공포증을 갖고 있는 상태에, 극도의 스트레스까지 더해지다 보니 송전탑을 보면서 트라우마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정은은 약을 먹으며 버텨보지만, 건장한 남자들도 쉽게 오르기 힘든 송전탑을 고소공포증까지 갖고 있는 그녀가 오르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하청업체 소장과 직원 3명은 도저히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 본사 사무직원이고 충분히 능력도 좋은데, 왜 이런 고생을 하는 거냐고. 물론 살기에도 나쁘지 않고 물가도 싼 편이지만 그만큼 사람이 하는 일에 대해서도 싸게 생각하는 곳이라고 말들 한다.


영화 중간에 등장하는 친한 여자 동료와 정은의 대화를 통해 추론해 볼 수 있었다. 아마 정은의 친한 동료 언니도 이런 일을 겪었고, 그 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것 같다. 그리고 부당함에 대항하면서, 똑똑하게 업무를 처리하던 정은도 공채 남자 직원들과 관리자들에게 눈엣가시처럼 여겨지게 되어 정리해고 대상자가 된 것으로 추측된다.


직장생활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던 정은은, 퇴근 후에도 매일 교재를 보며 열심히 연습하지만 실전은 험난했다. 앞에 설 때마다 송전탑은 높은 곳에서 정은을 비웃듯이 내려다보는 것만 같다. 멀리서 볼 때면 그저 주변 풍경과 어우러져 하나의 자연스러운 배경 같았던 친숙한 송전탑. 하지만 실제로 그 앞에 가보면 육중하고 아찔한 실체를 드러내며 사람들에게 공포감을 준다.  


중 막내 직원이라 불리는(오정세) 막내는 하청업체 직원이면서, 대리운전, 편의점 알바 등 안 하는 게 없는 사람이다. 혼자 키우고 있는 딸 셋을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아빠이기 때문이다. 어느 날 정은이 유료 과외로 현장기술을 알려달라고 제안하고, 막내는 승낙하고 그녀를 개인지도하게 된다. 그러면서 서서히 정은은 하청업체 동료들의 삶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막내는 송전탑을 처음 오를 때 자신도 무서웠다고 한다. 그래서 송전탑. 저 위에는 자신이 지켜야 할 사람들이 있다는 마음으로 오른다고 말한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두 번 죽는 거 알아요? 한 번은 전기구이, 한 번은 낙하. 345,000 볼트에 한방에 가거든요. 근데 그런 거 하나도 안 무서워요. 우리가 무서운 거는...... 해고예요."


영화 후반부에는 동료 한 명이 죽게 되고 설상가상으로 악천후로 인해 송전탑에 문제가 발생되어 정전이 된 상황이 발생된다. 그렇게 뿌연 안개가 앞을 가로막고, 온통 깜깜하게 정전이 된 날들.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암담한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았다. 영화 내내 어떻게 보면 고구마 같은 캐릭터 같기도 한 주인공 정은이 가장 크게 폭발하는 장면은 동료의 장례식장에서 표현된다.


원청인 본사에서 동료의 큰 딸에게 보상을 통한 합의를 강요할 때, 정은이 합의서를 찢고 화를 낸다. 인사팀장과 몸싸움까지 하면서 격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죽지만 않게 해 달라고,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직접적인 죽음만큼 사람을 죽게 만들 수 있는 그 권력의 무기.....'해고'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 장비도 제대로 제공받지 못해도 아무 말할 수 없고, 열악한 환경에 내몰려져 노동자가 죽어가는 현실.


정전이 되어, 주변이 어둠으로 가득 찬 장례식장에서, 정은은 장비를 매고 나선다. 송전탑에 도착한 그녀는 올라가서 고치겠다고 무전을 한다. 이에 본사 감독관이 미쳤냐고 무전으로 협박하고, 소장도 급하게 전력공급이 필요한 큰 지역 송전탑부터 정비할 예정이니 제발 그만두라고 한다.


정은은 외친다. "섬사람은 사람 아닌가요? 소수라고 해도 저분들도 같은 사람이에요. 저분들도 전기가 필요한 사람들이라고요!"


정은은 외줄을 타고 몇십 미터를 넘어가 송전탑을 수리한다. 그녀의 용기 속에 어둠만이 자욱했던 섬에는 차츰 전기가 들어오고 불빛이 환하게 비치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앞선 글처럼,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제정되었다고 해도, 아직도 수많은 현장의 상태는 열악하기만 다. 마땅히 보호 받아야 할 생명 존중에 대한 정책을 표방했지만, 너무나 비현실적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일까? 바로 양극화를 조장하는 이 사회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인식의 개선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돈과 권력이 없는 사람들을 무능력자와 무식한 사람들로 치부하고 있고, 사회적인 책임감을 가져야 할 사람들은 위로 올라갈수록 더 위만 바라보고 있는 현실이다.


어느 순간 사람들은, 성공이건 실패건 모두 개인의 책임으로 치부해 버리는 사회 속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 성공하는 삶이란 무엇일까.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외적인 성공'에만 관심을 갖고 앞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 성공일까?


달콤한 말들로 "자, 나처럼 1%의 재능과 99%의 노력을 하면 위로 올라갈 수 있단다! 모든 건 너 하기 나름이니 네가 잘해야 한다!"라는 지극히 원론적인 말들만 하는 자기 계발서와 대기업 CEO가 되거나 막대한 부를 축적한 소위 '성공한 사람'들의 책과 에피소드가 많은 사람들에게 선택받고 있다.


누구든 노력하면 부와 명예를 언젠가는 가져갈 수 있을까? 자본주의는 아마 죽을 때까지 모든 사람들의 성공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무슨 정책이 나오건, 무슨 일이 벌어지건 양극화는 더 심화되게 되어있다. 사회문제를 다루고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말하는 책들보다, 부와 성공에 대한 자기 계발서가 몇 배는 더 잘 팔리는 출판계 현실이 안타깝다. 쏟아져 나오고 있는 위로와 치유에 대한 책들은 '자기 계발'과 '성공'에서 낙오된 이들을 위한 상술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태겸 감독의 인터뷰에 의하면 철탑(송전탑)우리의 삶과 닮았다고 다. '탑'은 물질적인 특성상 인간이 견디기 힘든 환경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송전탑 노동자들은 탑에 올라야 하는 사람들이다. 콘센트를 고, 스위치만 누르면 전기가 들어오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당연함과 편리함 뒤에는, 오늘도 목숨을 건 특수노동자들의 고생과 고통이 있다.


영화의 제목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는데, 영화 마지막에 정은의 내레이션이 알려준다. 극 중, 정은의 부모는 정은이 태어날 때 그녀를 해고(버림, 입양)했고, 사회가 그녀를 학벌로 해고(무시, 차별)하고 손가락질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겠다고.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니.

다시 한번 제목이 말해준다. 세상이 나를 밀어낼지라도, 스스로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고 말이다. 이 세상은 '나를 해고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를 믿음으로 지키고 응원하면서, 그 고립된 섬의 불빛을 밝힐 수 있음을 이야기해준다.


코로나 19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무너져갔다. 23년 전, IMF 외환위기 속에서 우리 아버지들이 정리해고 대상이 되고,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게 되었을 때처럼 오늘도 수많은 잣대들이 우리들의 삶을 '해고'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정부의 규제'라는 해고를, 학생들은 '부모의 재력과 사회적 위치'라는 기준에 의해 주어지는 기회의 해고를, 그리고 이 사회는 점점 심각해지는 '양극화'를 통해서 많은 사회적 약자들을 해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건 확실하다.

모두가 당신에게, 그리고 나에게 손가락질하더라도 나는 나를 해고하면 안 된다고. 또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사회문제와 차별에 대해서도 우리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고 계속 의견을 제시해야만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을.


부모님과 외출해서 같이 먹던 팥빙수 한 그릇에 행복했던 나, 친구들과 신나게 공을 차면서 뛰어다니고 땀 흘리면서 다같이 공부도 하던 나, 재미있는 책 한 권과 영화 한 편에 혼자 가슴을 부여잡고 감동받던 나. 힘들어도 친구들 전화 한 통에, 동네 단골 음식점 사장님 응원 한마디에 혼자 눈물 흘리고 다시 힘을 내는 나.


우리가 살아가며 서서히 잊고 지내던 것들, 잊어가던 것들, 그래도 꼭 기억해야 하는 것들. 누구보다 소중한 나의 진짜 모습들. 나는 진짜 내 모습을, 내 삶을 절대로 해고하지 않겠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세상에는 참 많은 열심히 사는 보통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을 보면 세상은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꿋꿋이 또 열심히 자기 일을 하는 많은 사람들, 그분들에게 똑같은 결과가 주어지는 건 또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망하거나 지치지 마시고, 포기하지 마시고 여러분들이 무엇을 하든 간에 그 일을 계속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자책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탓이 아닙니다.

.

.

힘든데 세상이 못 알아준다고 생각할 때, 속으로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곧 나만의 동백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요. 여러분들의 동백꽃이 곧 활짝 피기를"


[배우 오정세 님의 56회 백상예술대상에서 TV부문 남자조연상을 수상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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