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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인칭 크루 시점 Jul 08. 2019

매일 폐업하는 마케팅

시장 앞에 산다는 것은 정말 흥미로워



골목시장은 마케팅의 각축장이다.



세일해요 세일! 사과 한 바구니 오~천 원!


  이것이 무슨 소리일까. 주말 아침 9시면 들리는 내 알람 소리다. 내 핸드폰에서 울리는 것이 아니고, 밖에 있는 채소가게의 호객꾼들이 소리치는 소리이다.  아침 9시부터 시작해서 밤 9시 정도에야 끝나는 알람이다. 우리 집에 놀러오는 친구들은 이 집의 최대 단점이라고 하지만, 나름 매력적이고 생각한다. 주말 아침 눈 뜨자마자 사과 시세를 알 수 있다니. 이것이야말로 귀에 때려박는 마케팅이다.


  시장 앞에 집을 구해 자리 잡은지 벌써 1년이 됐다. 일반적으로 재래시장이라고 하면 다 죽어가는 허름한 모습을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곳은 어느 곳보다도 마케팅이 치열하다.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400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정육점이 3개, 옷가게가 4개, 규모 있는 채소가게 2개, 노점상인들 서너 명. 동종업자들이 좁은 시장가에 다닥다닥 붙어있으니.


말하자면 ‘마케팅의 각축장’이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아침 9시부터 밤 12까지 마케팅이 펼쳐진다. 게 사장들은 함께 모여 인근에 있는 대형 마트도 욕하고 거스름돈이 필요할 땐 돈을 바꿔주는 정다운 사이이지만, 지나가는 손님을 잡을 때만큼은 서로가 서로에게 위협적인 경쟁다. 그날의 마케팅은 그날의 매출이 된다.



*자라 이미지 주의



참고 이미지 : 출처 네이버 블로그 <뒤를 보는 거북이> https://m.blog.naver.com/kbinh/30144875254


  이곳의 주 소비층은 나이가  꽤 있는 분들이다. 그래서 여기 마케팅은 직관적이고 큼직큼직하다. 히 소리를 크게 내서 사람들을 모으는 호객 행위가 잘 먹히는 편이다. 말 아침 나를 잠에서 깨울 수 있는 정도의 목청이어야만 이 구역의 호객왕이 될 수 있다.


  판매하는 상품이 독특할 때도 있다. 한 번은 깔세 매장*에 보약 재료를 파는 상인이 왔었는데, 살아있는 자라와 대왕 장어를 대야에 넣어 거리에 두고 판매 했었다. 아스팔트 위에 자라가 목을 꾸물럭거리고 있어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깔세매장 : 보증금 없이 계약 기간의 월세를 한 번에 주고, 공간을 단기간 임대하여 만든 매장. 주로 땡처리 판매자들이 많이 들어온다.



매일 폐업하는 마케팅


참고 이미지 : 출처 여성신문 '완전폐업·점포정리의 속내'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070


  얼마 전에는 깔세 매장에 옷장사가 새로 들어왔다. 가격이 워낙 싸서 사람들이 꽤 몰려있었다. 겉에서 둘러보다가 나도 내일 양말을 몇 개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던 차였다. 매장에서 “여러분 오늘이 저희 마지막 날입니다~”라는 방송이 들려왔다. 참고로 이 날이 이 매장의 오픈 날이었다.


스피커에서는 늘어지는 말투로 다음과 같은 멘트가 반복되고 있었다.


내일 와야지 생각하시겠지만
내일 오시면 저희는 없습니다아.

오늘 밤 9시에
저희는 광진구를 떠납니다아.

그리고 두 번 다시는
광진구에 오지 않습니다아.


 

다시는 광진구에 오지 않습니다. 다시는 광진구에 오지 않습니다. 다시는 광진구에 오지 않습니다….


  아주 단호한 이 멘트가 내 충동심에 불을 질렀다. ‘어맛 이건 사야 해!’라는 유명한 짤이 머릿속을 장악했다.


 스피커에서는 다시는 광진구로 오지 않는다는 말을 아주 다양한 문장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 말을 어찌나 강조하는지, 누가 들으면 광진구에 척을 진 건가 싶을 정도였다. 양말을 살까 했지만 당시 나는 약속에 가는 중이었다. 잠시 고민을 하다 이내 마음을 접고 갈 길을 갔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난 지금, 나는 오늘 떠나서 다시는 오지 않겠다는 그 멘트를 일주일 내내 듣고 있는 중이다. 내가 '오늘은 꼭 운동을 하겠다'고 결심해놓고 실천은 못하는 것처럼 그 옷가게도 매일매일 '오늘 떠나서  다신 오지 않겠다'라고 엄포만 놓고 있다. 이제 그곳을 지나갈 때면 리쌍의 노래 ‘헤어지지 못하는 여자, 떠나가지 못하는 남자’를 듣고 싶어진다.


  가장 재밌는 점은 이거다. 매일매일 그 거짓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들을 때마다 물건을 사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어쩌면 내일은 정말 없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비단 나만 그런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매일 밤이면 그 멘트를 듣고 물건을 사가는 사람들이 수두룩해진다. 다신 오지 않겠다는 그 말은 정말 마의 멘트였다. 일생에 단 한 번 오는 기회처럼 느껴지지 않는가.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해서 물건을 샀는데 내일도 멀쩡히 있는 상점을 보면 무슨 기분이 들까.  항의하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을 법도 한데 말이다. (사실 법적으로는 허위 과장 광고에 해당된다고 한다.) 아무튼 나는 ‘오늘 떠난다’는  거짓말이 과연 참이 되는 날이 언제일까 궁금해서 그 옷가게를 매일 체크를 하게 되었다. 이 글을 쓰면서 지나가는 와중에도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다. 매일 폐업하는 마케팅. 다신 이곳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엄포.


매일 폐업하는 것은 '가격이 지나치게 싼 것에 대한 타당한 이유'가 되기도 하며, 충동구매를 자극하기에도 안성맞춤인 것 같다.


시장 앞에 산다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일이다.


2019.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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