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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묘미 Jun 18. 2023

숲과 흐르는 섬

알지 못해 가능했던 감정의 기억

수풀 림林 자가 들어간 이름을 가진 아이가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소림’. 작은 숲이라는 뜻이라고 했다. 입시 학원 강의실에서 그녀는 같은 고등학교 친구들 무리에 섞여 그렇게 말했고, 나는 멀찍이 혼자 앉아 들었다. 


각양각색의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으로 가득 찬 강의실에는 다양한 무리가 있었다. 그 속에서 소소한 이야기들이 라디오처럼 흘렀다. 학교가 달랐기 때문에 그녀와 나는 남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는 항상 교단 앞에 바짝 붙어 앉아 열심히 수업을 들었다. 학원과 거리가 먼 학교에 다녔던 나와 친구들은 수업 중 들어가 맨 뒷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쉬는 시간이면 무리를 이끄는 장군처럼 호쾌하게 웃으며 수다를 떨었다. 밝은 기운은 주변의 무엇이든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고 느꼈다.


여름 방학에 진행되는 학원 수업시간에도 그녀는 친구들과 함께였다. 나는 맨 뒷자리에 앉아 멀리서 속삭이는 작은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름 탓에 소림사라는 별명으로 장난을 치는 남자아이들에게 그녀는 호쾌하게 웃으며 <소림축구>를 재밌게 봤다고 말했다. 당시 케이블 TV에서 영화 <소림축구>를 자주 틀어줬는데 나 또한 그 영화가 재밌어서 수 십 번 봤었다. 그녀의 친구들은 <소림축구>라는 영화는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소림축구>가 얼마나 웃긴 영화이며, 주성치라는 배우가 얼마나 매력적인지 장황하게 설명했다.


그 후 주성치는 나의 우상이 됐다. 주성치처럼 유머 있고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고, 무술도 잘하고 싶었다. 홍콩 액션영화에 푹 빠져 살다가 영화 <동방삼협>을 보고 매염방, 양자경, 장만옥이 연기한 멋진 여성의 모습에 매혹됐다. 학원에서 마주치는 그녀의 모습과 영화 속 캐릭터와 배우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학년이 올라가며 학원의 반배치가 변경되는 일이 잦았다. 그녀와 나는 어느 시내 건물 6층에 위치한 학원 안에서 섬처럼 흐르며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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