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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Jun 25. 2023

'시대의 지성' 이어령 선생이 죽음에 대해 남긴 말

[리뷰] 김지수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5년 전 미국 캘리포니아에 잠시 거주했다. 긴장과 갈등의 연속인 타국의 일상에서 점점 피폐해지던 즈음 기운을 차리도록 도와준 책이 있었다. 바로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이다. 루게릭 병으로 생의 끝자락에 선 모리 교수가 남기는 삶과 죽음에 관한 통찰의 말들도 와닿았지만, 육체의 쇠함에 순응하는 모리 교수의 성숙하면서도 천진한 태도가 무엇보다 가슴을 울렸다.


나중엔 용변 뒤처리까지 타인의 손에 의지하게 되었지만 그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지 않았다. 오히려 유머로 승화시키며 가족과 친구들의 친밀함 속에서 온화하게 사그라들었다. 여리면서도 환한 그의 따뜻함이 내게도 스며들어 유한한 삶 속에 사랑만이 더없이 귀하다는 사실을 깨우치게 했다. 덕분에 일상을 소중히 여기려는 긍정의 마음이 돌아왔고, 모리 교수는 그렇게 고단한 시절의 고마운 '어른'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국내에도 이와 비슷한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이 2021년 10월에 출간되었다 하여 관심이 갔다. '인터스텔라'라는 세계 석학 인터뷰 시리즈로 잘 알려진 김지수 기자가 암투병 중인 이어령 교수와 16번에 걸친 대담을 기록한 책이다. 이어령 교수는 안타깝게도 2022년 2월에 암으로 작고하셨지만, 그가 후세에 그토록 전하길 원했던 삶과 죽음에 대한 지혜의 말들은 그의 바람대로 이 책을 통해 독자들 곁에 남겨지게 되었다.


대담 당시 이어령 교수는 암 선고를 받고 2번의 수술을 마친 후 전이가 계속되고 있었으나 더 이상의 치료를 중단한 상태였다고 한다. 평생 글을 써온 그로서는 암이 몸에 번지고 고통이 덮치는 순간마저 그저 묵인하기가 어려웠나 보다. 마지막까지 기록에 대한 갈증에 목말라하며 죽음을 관찰, 기록하고자 한 그의 도전 앞에 독자이자 한 인간으로서 겸허해진다.


김지수 기자와 이어령 교수는 죽음은 물론 사랑과 용서, 꿈과 돈, 고난과 고통, 예술과 종교, 인간이란 존재 등 경계를 정하지 않고 흐르는 대로 묻고 답했다. 과연 시대의 지성이라 불리던 이어령 교수답게 그가 전하는 말의 곳곳에 통섭적 박식함과 지적 비유가 물처럼 흐른다. 물론 그 말의 물꼬를 터서 이리저리 물길을 내고 정리해 내는 김지수 기자의 노련함과 유려한 글솜씨 또한 인상적이다.


다뤄진 여러 주제들 중에서도 죽음에 관한 노 학자의 여러 통찰이 단연 돋보인다. 그가 매일 밤 죽음과 팔씨름을 하며 깨친 죽음이란, 어린 시절 신나게 놀고 있는데 엄마가 그만 놀고 들어오라는 것과 같은 의미라고 한다. 어릴 때 엄마는 곧 밥이고 품이고 생명이기에 엄마 세계로 돌아간다는 건 결국 엄마 곁, 원래 있던 모태로의 귀환을 의미한다고. 죽음과 탄생을 한 줄로 꿰어 죽음을 절망의 끝이 아닌 생으로의 회귀로 본다니!


그의 비유와 해석이 시적이면서도 적절해서 오래 음미하게 된다. 어린 시절의 특별한 체험에서 죽음의 이미지를 그려낸 점 또한 인상 깊다. 별 빛 내리는 밤 와글와글 울어대던 개구리 가득한 논두렁에 돌멩이 하나 던지자 일시에 흐르던 정적. 운동회 날 운동장 가득한 축제의 소란스러움과 반대로 텅 빈 교실에서 느껴지는 공백.


생의 한가운데서 스치듯 지나가는 정적과 공백의 순간을 잡아채어 죽음으로 연상하는 노 교수의 감수성이 놀랍다. 죽음이 우리 곁에 언제나 깃들어 있음을 보여주는 깊은 통찰로 보인다. 그는 시시각각 죄어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드러냈다. 자신의 죽음과 맞붙는 것은 마치 철창을 나와 덤벼드는 호랑이와 상대하는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그 공포가 어느 정도인지 충분히 짐작케 한다.


죽음을 목전에 둔 그에겐 삶의 자세도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음이 분명하다. 무리 속에 안주하지 말고, 방황하고 탐험하며 기어이 '자기'를 살라고 거듭 당부하기 때문이다. 책 많이 읽고 쓴다고 창의성이 나오는 게 아니라며 제 머리로 읽고 쓰라고 강조한다. 고난을 통해서만 인간은 자기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니 용감하게 겪어내고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을 풍성하게 가지길 권한다.


그 외에도 그는 굵직한 주제들 사이를 거침없이 종횡무진한다. 노 학자의 지적 향연을 따라가기가 버겁다 느낄 때쯤 불쑥 나오는 삶에 대한 회고가 반갑다. 그 회고에서 다행히 그의 인간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질문 없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열렬히 지적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어 외로웠다는 그. 강의실은 늘 수백 명으로 꽉꽉 찼지만 스승의 날 꽃을 들고 찾아오는 이는 없어 섭섭하고 외로웠다는 그였다.


암 때문에 글을 쓰지 못해 고통스럽다는 고백도 애잔하다. 죽음에 직면하여 평소 얘기했던 '메멘토 모리'를 감각화 할 기막힌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모든 지식과 생각을 암이 지워버려 머릿속이 그저 대낮처럼 하얘졌다고 실토한다. 무심히 드러낸 평생의 외로움과 죽음 앞의 무력함을 표하는 노 교수의 이면이 쓸쓸하게 읽히는 지점이다.


김지수 기자는 프롤로그에서 이성복 시인의 말을 빌어 스승이란 생사를 건네주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어령 교수는 평소 그답게 생과 사에 관한 자신만의 답들을 자신만의 색깔로 전해주고 있었다. 앞서 읽은 모리 교수의 말은 언 땅을 녹이듯 온기로 자연스레 독자에게 스며든다면, 이어령 교수의 말은 시적이면서도 때론 단호하게 내려치는 죽비처럼 독자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다.


시대의 지성으로 한 시대를 구가한 이어령이란 학자의 마지막 말이 궁금한 분들에게 권한다. 고난 속에서 자신만의 질문과 답을 찾느라 치열하게 고민하는 분들에게도 권한다. 죽음과의 팔씨름이란 대가를 치르며 남긴 노 학자의 지적 통찰에서 필요한 영감과 위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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