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수 Aug 04. 2023

뭐, 새벽 2시까지 햄버거 하나로 버텼다고?

"뭐? 이 시간까지 고작 햄버거 하나 먹었다고? 아니, 그 사람들은 밥도 안 먹고 일한다든??"


며칠 전 아침 7시에 일을 나갔던 큰 애가, 꼬박 19시간이 지난 다음 날 새벽 2시에 들어오면서 하루종일 거의 굶었다는 말에 기겁했다. 군대를 앞두고 휴학 중인 큰 애는 입대 전까지 이런저런 단기계약 일을 하는데, 영화연출 전공이라 영화나 방송제작 관련 일에 종종 급하게 불려 나갈 때가 있다. 이 날도 한 광고 촬영장에서 일하는 동기의 연락을 받고 다녀왔던 터였다.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근무라고 했다. 그런데 막상 나가보니 일이 많아서, 점심 식사는 커녕 저녁 늦게야 햄버거 한 개를 먹을 짬이 겨우 났단다. 일도 지연되어 새벽 1시에야 끝났지만 초과근무에 대한 비용은 기대할 수도 없단다. 내 입에선 '밥도 안 주고 사람을 부려먹는 악덕 고용주'라는 욕이 절로 나왔다. 그런 현장은 다시는 가지 말라고 당부하는데, 듣자 하니 그 현장에서 여러 달 일하고 있다는 큰 애의 동기는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는 3개월 계약으로 일을 시작했는데, 회계업무부터 데이터 매니저, 촬영총괄 등 여러 명이 나눠서 할 일을 홀로 다 맡고 있다고 한다. SOS를 쳐 우리 큰 애를 부른 것도 '혼자서 더 버티다간 죽을 것만 같아서'였다고 하니, 아이 친구가 얼마나 혹사당하고 있는지 짐작이 갔다. 그가 프로젝트 전체 예산의 흐름을 파악하고 보니, 소위 말하는 '비용 절감'이란 명분은 결국 고용주의 이윤 극대화를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돼 비참하다고 했단다.


큰 애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직도 제 때 쉬기는커녕 끼니도 제대로 챙기기 어려운 일들이 도처에 널렸구나 싶어 참 씁쓸해졌다. 30여년 전 나의 젊은 시절보다 근로계약서 작성이 상대적으로 수월해진 점이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하지만 비용절감, 원가절감이라는 명분으로 직원들을 숨 쉴 틈 없이 몰아대어 결국엔 목숨마저 위태롭게 만드는 상황은 아직도 여전한 것 같아 답답해진다.


최근 경기도 하남의 코스트코 매장에서 폭염 속에서 주차장 카트를 정리하다 온열질환으로 숨진 청년노동자 또한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는 이 살인적인 땡볕 아래서 무거운 카트를 끌며 하루에 4만 3천 보(대략 20km가 넘는)를 걸었다고 한다. 그냥 걸어 다녀도 어지러운 판에, 카트를 끌면서 탈진하지 않고 그 긴 작업시간을 버텨낼 재간이 누군에겐들 있을까. 추가 인력을 투입해 업무를 분담하거나 폭염에 대응할 적절한 대비책도 없었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해당 업체는 위험한 상황에 노출된 직원의 안전을 전혀 중시하지 않았던 것 같다. 라디오 인터뷰에 응한 그의 아버지에 따르면, 업체는 그가 사망한 후에야 층마다 아이스박스를 구비하고 공기순환장치를 틈틈이 가동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늘 그렇듯 소 잃고 마지못해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이제라도 직원들의 고충을 듣고 필요한 대응책을 마련하면 다행일 텐데, 후속 보도를 접하고 보니 이마저도 장담키 어려워 보였다.


해당 사건 관련한 고용노동부의 수사 과정 ,  업체는 고인의 동료 직원들 참고인 조사를   사측의 변호사를 입회하게 했다니 말이다. 고인의 동료들이 변호사의 입회 혹은 감시 탓에 열악한 노동환경을 솔직히 진술하기 어려운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동료 직원들에게 압력을 넣어 어떻게서든 책임을 회피하려는 듯한 수법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업체의 알량한 대처 태도가 불쾌하다 못해 화가 날 지경이었다.


사고는 언제나 안타깝지만, 폭염 등 열악한 노동환경 탓에 사회에 이제 막 진입하는 청년들이 사망하는 소식을 들으면 유독 마음이 아프다. 사회의 가장 위험한 허드렛일이 아래로 넘겨지고 넘겨져 결국 사회 초년생들이 당하는 게 아닌가 싶어 말이다. 2016년 구의역에서 홀로 스크린 도어를 고치다 열차에 친 19세 청년 '구의역 김군', 2018년 발전소 기계에 끼여 삶을 마감한 24세 김용균씨, 2022년 가을 SPC 계열사 빵 공장에서 소스를 배합하다 상반신이 끼어 사고로 사망한 23세의 여성노동자를 나는 여전히 가슴 아프게 기억한다.


김 군도 분초를 다투며 지하철 역을 뛰어다니느라 밥 먹을 틈도 없었는지, 당시 남겨진 그의 가방에선 컵라면이 발견되었다. SPC 여직원도 2인 1조 안전규정이 지켜지지 않은 채 홀로 12시간 연속근무를 하다 봉변을 당했다고 했다. 열악한 작업환경과 관리 소홀이 원인인 이런 비통한 사고들을 우리 사회는 언제까지 겪어야 할까? 더 심각한 건 이런 사고들 후에도 유사한 사건들이 현재에도 여전히 어딘가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한민국은 정말 이렇게 각자도생의 시대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청년 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기록한 <전태일 평전>이 출간된 지 수십 년이 지났건만, 왜 이리 인간다운 노동환경은 멀기만 한지, 얼마나 더 죄 없는 청년들과 노동자들이 목숨값을 치러야만 이런 상황이 바뀔지. '노동환경 개선'이 허울 좋은 권고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회사크기에 상관없이 반드시 실행하고 아니면 벌금을 내도록 명시적으로 강제하는 강력한 법 조항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끔 '젊은 시절엔 힘든 일도 인생의 경험이니 즐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본다. 이런 류의 말은 그러나 그렇잖아도 불합리한 노동환경에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젊은이들에게는 비수를 꽂는 말이다. 당장 생계가 급해 알바나 단기계약에 뼈를 갈아 넣을 수밖에 없는 청년들에게는 분노마저 조장할 것이다. 하기 좋은 말로 사탕발림할 게 아니라 청년들이 안심하고 사회에 발 디딜 수 있는 현실인지 먼저 꼼꼼히 살피는 게 기성세대의 몫일 테다.


덧붙여 불합리한 작업환경과 직장의 폭력적 상황에 노출되어 괴로워하는 청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제발 그 일(직업)을 과감하게 때려치우라는 말이다. 아무리 현재 몸담은 일이 중요하게 느껴져도 자신의 몸과 마음의 안전을 위태롭게 한다면 그곳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그래도 살 수 있고, 그래야 살 수 있다. 세상의 일은 생각보다 다양하니 안전한 곳에서 마음에 드는 일을 찾아 새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믿으라는 말을 꼭 전해주고 싶었다.


2014년 CJ제일제당 현장실습생으로 생을 마감한 김동준군의 어머니도 아들의 사망 후 비슷한 생각을 절절히 하셨나 보다. 젊은 청년들의 소리 없는 죽음을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엮은 은유 작가의 책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2019년, 돌베게)>에 어머니의 생각이 담긴 구절이 있어 그대로 인용해 본다.


"그런데 너나없이 몸이 부서져라 일하는 삶이 과연 누구에게 이득이었을까. 지금에야 그는 질문을 던진다. 아들을 잃고 묻는다. 묻고 또 물으면서 알게 됐다. 자기 일에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자기를 돌보고 지키는 사람이 되는 게 더 중요하다. 힘들면 회사는 가지 않아도 된다. 나를 지키는 게 먼저다. 교과서에도 안 나오고 근로계약서에도 없지만 꼭 명심하라고 다른 동준이들 한 명 한 명에게 붙잡고 말해주고 싶은 마음이다."(21쪽)

작가의 이전글 키오스크 이용하다 당황한 적 있으시다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