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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슬기 Oct 08. 2019

내 어깨에 블랙홀

외출을 할 때면 목적에 맞는 짐을 챙기게 됩니다.

고대하던 친구와 술을 마시기 위해, 집에 있는 것이 지루해 근처 카페를 찾아 나설 때, 

잔뜩 사놓은 화장솜이 괜히 맘에 안 들어 드럭스토어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등등 

외출을 이유와 목적은 매우 다양합니다.

외출을 할 때면 상황에 걸맞은 소지품을 챙겨 나가기 마련이지요.

이때 중요한 것이 가방입니다.

의상 못지않게 사람의 무드를 크게 좌지우지하는 것이 가방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제가 주로 사용하는 가방은 힙색입니다. 

무드라는 단어까지 꺼내놓고는 저의 가방은 힙색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뭔가 이율배반적이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만, 

한 가지 변명을 하자면 힙색의 본래 착용법인 허리춤에 매달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끈을 짧게 조절하여 어깨에 매거나 크로스 백처럼 매고 다닙니다.

과연 이 정도로 변명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저의 외출 목적은 거의 대부분 카페를 향하는 일입니다. 

커피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책을 읽던가 글을 써야 할 때에는 집에서 집중을 못하는, 

그야말로 공부 못하는 학생의 전형적인 핑계를 성인이 되어서도 그대로 계승해왔지요. 

최초에는 자그마한 힙색에 포켓 노트, 책 한 권, 볼펜, 열쇠, 지갑 정도였습니다.

카페 생활 같은 게 잦아지고 카페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니 묘하게 외출 시에 챙겨 드는 짐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한 권 가져갔다가 뭔가 읽히지 않아서 다른 책이 읽고 싶어 졌을 때를 대비해서 

책이 두 권, 포켓 노트와 함께 해야 하는 볼펜. 

쓰다 보면 싫증이 나기도 하니까 하나 더 추가, 볼펜은 가벼우니까 혹시 모르니까 하나 더 가져가자. 

그리고 볼펜의 언제 잉크가 다 닳아 버릴지 모르니까, 이렇게 볼펜이 총 3개.

핸드폰이 오래되어서 배터리 타임이 짧기도 하고 카페에 긴 시간 있으려면 핸드폰 충전기가 필수가 되었지요. 

콘센트가 없는 자리에 앉게 될지도 모르니까 보조배터리를 챙깁니다. 

작은 용량은 불안하죠. 무겁지만 대용량으로 챙깁니다. 

안경 없이 생활이 안 될 정도는 아니지만 안경을 가져갑니다. 

당연히 안경 케이스도 따라오죠. 

기존에 챙겨 다니던 포켓 노트는 오로지 일기만 씁니다. 

필사, 아이디어 기록, 글쓰기 초안을 쓰기 위해서는 다른 노트가 필요죠.(매우 중요합니다.)

 a4크기의 노트는 너무 크다. 

광화문 교보문고 핫트랙스에서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b5크기의 노트, 사양은 스프링 노트. 

평범한 좌철 스프링 노트는 거들떠도 보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필기 시에 오른손에 걸리적거리는 스프링을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이쯤 되면 내가 나를 용서하지 않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스프링 노트는 상철 스프링 노트입니다. 

그렇다면 이 정도 양의 짐들이 앞서 말한 힙색에 들어가느냐? 

이미 책이 두 권이 됐을 때부터 힙색이 찢어질 듯 울부짖었습니다.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매직 아이템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에코백입니다.

에코백의 실용성은 사용해보신 분이라면 공감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렴한 가격에 가방 자체도 가볍고 보기보다 무척이나 많은 짐을 소화해 냅니다. 

앞서 늘어놓은 짐들이 전부 들어갑니다. 

문제는 에코백의 살인적인 어깨끈입니다.

짐이 가벼울 때에는 에코백의 어깨끈은 그야말로 쾌적합니다만 이게 무게가 늘어나면 고통이 심각해집니다.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어 가며 목적지에 도착하기만 하면 그만인 일이라 아직은 견딜만합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에코백 최대 어려움을 몰랐지요.

마을버스에 올라 타 교통카드를 찾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집 앞에서 타는 마을버스는 지하철 역까지 5분 정도면 도착합니다.

집에서도 정류장에서도 존재를 확인했던 교통카드가 마을버스에 올라타니 감쪽같이 사라져서 도통 보이질 않는 겁니다. 흡사 다람쥐 통과 같은 승차감의 마을버스 안에서 한 손으로는 에코백을 벌리고 나머지 한 손으로는 교통카드를 찾는 모습은 마치 역대 최고의 취업 난 속에서 대기업 면접을 보러 가는 청춘 드라마 속 주인공의 

그것과 같았으리라.

 

그림. 홍슬기

결국 사투 끝에 하차 지점에 다 와서 교통카드를 찍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하차를 해야 한다. 

승차 직후 하차는 찍히지 않는단다. 

어쩔 수 없이 그냥 내렸습니다. 

교통카드가 에코백에 들어가면서 집 앞에서 타는 마을버스가 

이 정도로 지옥이 될 수 있구나를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왜 교통카드를 에코백에 넣었는가"

"나는 어째서 이리도 많은 짐을 에코백에 쳐 넣었는가"

"에코백에 넣은 짐이 적었더라면 교통카드를 쉽게 찾았을까?

아니, 애초에 짐이 적었으면 에코백을 선택하지도 않았다."

"마을버스는 왜 저리 요동을 치면서 가야만 하는가"

등등

마을 버스정류장에서 내린 나는 한참을 속으로 불평불만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리고 내 어깨에 힘겹게 매달려 있는 에코백이 원망스러워지더니 

끝내는 블랙홀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빨려 들어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그런 존재.

순간 스마트 폰을 꺼내 들어 검색창에 '스티븐 호킹 블랙홀'이라는 검색어를 넣어 검색했습니다.

검색 결과 중에 단연 눈에 들어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스티븐 호킹 "블랙홀에도 출구 있다.">

저는 어떠한 생각도 멈추어 주길 바라며 카페 가기를 포기하고 발걸음을 집으로 돌려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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