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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슬기 Oct 26. 2019

나와 고양이들

고양이와 한 집에서 지낸 지가 벌써 15년도 더 지났다. 

이때까지 함께 했던 고양이의 수는 4마리. 

첫 번째 고양이는 잘 지내다가 언젠가 열어진 문틈으로 나가더니 되돌아오지 않았다. 

두 번째 고양이는 16년 정도를 살았었고, 세 번째 고양이는 두 번째 고양이와 함께 키워졌고 

지금 5년째 해를 맞이하고 있다. 

네 번째 고양이는 두 번째 고양이와 세 번째 고양이와 함께 지내고 있던 때에 집 앞까지 무작정 따라와서 

집으로 데려와 임시보호를 하게 되었던 새끼 고양이이다. 

우리 집은 대대로(?) 암컷 고양이와 인연이 있었는데 처음으로 수컷 고양이로서 우리 집에 발을 들인 것이다. 

두 번째 고양이는 그 당시에도 이미 나이가 지긋하던 때라 새끼 고양이에게는 관심이 없었고, 

세 번째 고양이와 매우 잘 어울려 지냈다.(체급 차이가 있는데도 서로의 머릿 털을 물어뜯고 잘 지냈다) 

그때 알았다. "고양이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구나" 

하지만 집안의 반대로 네 번째 고양이는 대대로 내려오는 암컷 고양이 집안에서 떠나보내게 되었다. 

네 번째 고양이는 어느 신혼부부의 첫째 고양이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네 번째 고양이는 이제까지 암컷 고양이만 키워왔던 나에게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새끼였지만 세 번째 고양이의 엉덩이를 과감하게 물었다가 패대기 쳐져도 다시 도전(?)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과연 수컷이군" 하는 감상에 빠져들어있기도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늘어난 고양이 수를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시간을 생각하니 집으로 돌아가 영문도 

모른 채 두 마리의 고양이가 되어버린 녀석들을 보기가 부끄러워졌다. 

네 번째 고양이를 신혼부부의 품에 안겨 보내주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두 마리의 고양이가 덩그러니 

거실에서 현관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두 개의 말풍선이 떠있었다. 

두 번째 고양이의 말풍선에는 "새끼 고양이 따위 잘됐군", 

세 번째 고양이의 말풍선에는 "형편없는 자식, 네 번째 고양이를 키울 능력도 안 된다는 말인가" 

꽤나 상반된 반응이긴 했지만 둘의 눈을 마주칠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내방으로 터덜터덜 걸어 들어갔다. 

임시보호를 마치고 좋은 가족을 찾아 보내준 것이 후련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프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모든 고양이와의 인연은 길에서 시작되었다. 

침대에 엎드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고양이의 각각 첫 만남을 생각하다가 

외출했던 차림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때 꿈을 꾸었는데 아주 선명한 꿈이었다. 

네 번째 고양이와 그의 가족인 신혼부부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어서 네 번째 고양이가 내쪽으로 걸어오더니 말풍선을 하나 띄웠다. 

"여기가 더 좋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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